하고 싶었던 게 뭐였을까

악녀에 대하여 悪女について (1978)
아리요시 사와코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2017년 02월 15일
한사람이 죽고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이 그 사람을 말하면 많이 다를까. 꼭 그렇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만나는 사람에 따라 대하는 게 조금 달라도 본성이라고 하는 건 다르지 않을 거다. 아니 좀 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한테 고약하게 굴었지만 힘없고 가난한 사람한테는 다정했다는 사람도 있다. 그건 그 사람이 숨긴 부분이니 아름다운 이야기로 여기겠다. 그 반대도 있겠구나. 겉으로는 좋은 사람인 척하고 뒤에서는 아주 나쁜 짓을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어선지 겉으로 좋게 보여도 그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마음이라는 건 겉으로 드러나기도 하겠지만 자신을 실제와는 다르게 보이려는 사람도 있다. 그게 누군가한테 해를 끼치는 게 아니고 그저 자신을 지키려는 것이라면 괜찮겠구나.
여러 사업으로 잘된 여자 도미노코지 기미코는 자신의 빌딩 7층에서 떨어져서 죽었다. 기미코가 스스로 죽은 건지 누군가한테 죽임 당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기미코가 죽고 기미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았던가 보다. 그게 잡지에 실리고 기미코는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돌았다. 이 소설은 어떤 소설가가 기미코를 아는 스물일곱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다. 스물일곱 사람이 적은 것 같지만 많은 거다. 나를 생각하면 그렇다. 이런 소설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죽지 않고 남한테 나쁜 짓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도미노코지 기미코하고는 좀 다르지만. 여러 사람 말을 들어도 기미코를 다 알기는 어렵다. 기미코는 여러 사람한테 다르게 말했다. 여러 사람도 기미코를 조금씩 다르게 말했다. 여러 사람이 한사람을 조금 다르게 말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겠구나. 기미코가 여러 사람한테 다른 말을 한 건 거짓말이라 보면 된다. 기미코가 한 말에 진심은 어느 정도나 있었을까.
그때 일본사회는 귀족이 사라졌지만 귀족이나 왕족이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기미코는 자신도 귀족이 되고 싶었던 걸까. 친아버지 친어머니를 자기 친부모가 아니다 말하다니. 어렸을 때, 초등학생 때부터 기미코는 거짓말을 했다. 어릴 때 자기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다 생각하는 건 그럴 수 있다손치더라도 언제까지고 그러다니. 그 말 보고 나도 정말 기미코가 업둥인가 했다. 기미코 부모는 채소 가게를 했고 가까운 곳에 귀족 집안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가 차에 치여 죽고 기미코와 기미코 어머니는 그 집에 살면서 집안 일을 했다. 그 집에는 아들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기미코를 그 집 아들이 건드렸다는 식으로 말하고 돈을 받고 집을 나왔다. 기미코는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한 건지, 돈 때문에 다가간 건지. 나중에 다시 만나고 아이를 낳고 오랫동안 만난 걸 보면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 있었을지도. 귀족 집안이라는 것도 생각했겠지.
첫번째 남편은 기미코가 몰래 혼인 신고를 한 사람으로 다른 사람 아이를 그 사람 아이라 했다. 그것도 둘이나. 그 사람한테서는 위자료를 엄청 받아냈다. 기미코는 돈 많은 사람을 만났다. 집안과 돈을 다 봤던가. 두번째로 결혼했을 때도 다 계획한 것 같다. 두번째 남편은 기미코가 착하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다니. 자신이 속은 것을 몰라서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아들 둘도 말이 엇갈린다. 첫째는 어머니 기미코를 싫어했는데 둘째는 좋아했다. 첫째는 기미코가 자신과 동생을 차별한다고 여겼는데, 둘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차별은 자신이 느껴야 하는 것인데. 첫째는 기미코를 안 좋게 여겨서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기미코가 안 좋은 일을 하기도 했다. 첫째 여자친구 집에 가서 안 좋은 말을 하고 여자친구가 아이를 가졌을 때는 아이를 떼라고 말했다. 기미코는 왜 그랬을까, 첫째한테 바라는 거라도 있었을까. 이건 기미코가 말해야 알 수 있는 거구나.
여성이 일을 잘하지 않을 때 기미코는 이런저런 일을 해서 부자가 되었다. 그런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기미코가 바란 게 무얼까 싶기도 하다. 돈을 많이 버는 거였는지, 귀족이 되는 거였는지. 기미코는 정말 잠을 잘 못 잤을까. 어쩐지 난 그것도 거짓 같다. 동정심을 이끌어내려는. 병원 사람에는 안 좋은 일 당한 사람이 없으니 아주 거짓은 아니었을지도. 기미코는 머리도 좋고 감도 좋았다. 그것을 나쁜 일에 써 먹은 게 아쉽다. 기미코가 정직하게 일을 했다 해도 잘됐을 거다. 돈 같은 물질은 아무리 많아도 죽으면 쓸데없다. 소설에서 돈을 많이 벌려고 남을 속이는 사람을 보면, 저렇게 하면 뭐가 좋을까 한다. 텅 빈 마음을 그렇게라도 채우려는 건지도. 기미코도 그랬을까. 기미코 마음은 알 수 없겠다. 기미코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게 좋은 걸까. 세상에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만 있지 않다.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다 알고 제대로 보아야 한다. 자신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려고 남한테 나쁜 짓을 하면 안 되겠지. 기미코한테는 죄책감이 없었을까. 자꾸 알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구나. 기미코 자신한테 모자란 게 있어서 자꾸 채워넣으려한 게 아닐까 싶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지만 그것을 놓으면 편할 거다. 꽉 찬 것보다 비어 있는 것도 괜찮다. 내가 그것을 느낀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다. 무엇을 하든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좋겠다.


짧은 꿈, 긴 삶
싫은 여자 嫌な女 (2010)
가쓰라 노조미 김효진 옮김
북펌 2017년 03월 28일
사람은 자신한테 힘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때 잠깐 하는 말일지라도. 남이 듣기에 좋은 말 하는 것도 어쩌면 재주일지도 모르겠다. 사람, 그것도 남자한테 사기치고 사는 고타니 나쓰코를 먼 친척이라는 것 때문에 돕는 변호사 이시다 데쓰코도 나쓰코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그 마음 여전히 난 잘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할까 한다. 데쓰코는 나쓰코가 자신이 하지 못하는 걸 해서 나쓰코를 조금 좋게 본 걸까. 아, 생각났다. 나쓰코는 사기치는 남자 돈을 빼앗는 것만 하지 않고 한때나마 남자를 꿈꾸게 했다. 그건 가깝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기 식구한테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말 마음을 터놓아야 하는 사람은 가까운 사람인데. 이렇게 말해도 나도 그러지 못하는구나. 난 딱히 할 말 없고 하고 싶지 않기도 해서다. 말하지 않는 게 버릇이 되었다.
앞에서 1978년 4월 7일이라고 해서 조금 놀랐다. 다 읽어보고 왜 그때부터 시작했는지 알았다. 나쓰코와 데쓰코가 20대에서 70대가 될 때까지 나온다. 마지막에 데쓰코는 일흔한살이었는데 계산하면 지금보다 몇해 뒤다. 1970년대에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여성이 변호사를 하기에 좋지는 않았다. 데쓰코는 변호사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먼 친척 고타니 나쓰코한테서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게 시작으로 그 뒤 띄엄띄엄 나쓰코는 데쓰코한테 도와달라고 한다. 처음에 데쓰코는 나쓰코를 잘 몰랐다. 열일곱해 전 할머니 집에서 만나고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남자는 나쓰코를 좋게 말했지만 여자는 그렇게 좋게 말하지 않았다. 나쓰코가 일부러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대했다기보다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자신한테 이로움을 줄 사람을 본능으로 안다고 할까. 똑똑한 어린이는 그런 걸 바로 알아보던가. 난 똑똑한 어린이가 아니었구나. 지금도 다르지 않다. 아니 나도 눈치가 빠르지만 나쓰코처럼 남의 마음에 들려고 하지 않는다.
책을 보다보니 나쓰코한테 빠져드는 사람 공통점이 있었다. 지금 일어나는 일에서 달아나려는 사람이었다. 그건 마음의 빈틈이 되기도 한다. 자기 식구와 잘 지내는 사람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좋아할까. 나쓰코가 마음먹고 좋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거, 이것만은 인정하겠다(일부러 다른 사람 기분을 좋게 한 건 아니다는 거다). 그건 잠시일 뿐이다. 그 사람한테 볼 일이 없으면 나쓰코는 바로 떠나겠지. 처음 결혼하려다 그만둔 사람은 맨션을 가로채려다 잘 되지 않아서 나쓰코가 고소당했다. 남자가 바라는 건 돈이 아니고 나쓰코와 다시 시작하는 거였다.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나쓰코는 한사람과 평범하게 살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 나쓰코가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때는 미용사와 함께 짜고 일부러 차 사고를 내는 보험사기를 쳤다. 돈은 한번에 엄청나게 벌기 어렵다. 그런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지만, 하루하루 일하고 버는 게 가장 좋다. 그런 돈은 더 소중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함께 고생한 아내를 다시 생각하는 사람, 식구를 위해 돈을 버는 거다 하고 일만 했다는 걸 알게 되는 사람, 아주 잘산 건 아니지만 자신한테도 즐거운 일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 사람, 나쓰코는 사람들이 잊어버린 것을 생각하게 했다. 사기 당했다 해도 중요한 걸 알게 돼서 다행일까. 그런 건 나쓰코 때문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나쓰코가 정말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남한테 힘을 주려 했다면 좋았을 텐데 했다. 데쓰코도 나쓰코 때문에 알게 되는 게 있다. 나쓰코 일 때문에 병원에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유언장 일을 맡는다. 데쓰코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삶에 헛헛함을 느끼는 게 자신만이 아니다는 걸 깨닫는다. 혼자만 쓸쓸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그렇다면 위로가 될까. 사람이 죽을 때는 다 혼자다. 그 사람 삶을 남이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은 괜찮다. 데쓰코가 변호사라는 일을 말하는 것도 괜찮게 들린다. 일에서 보람을 느끼려 하기보다 그 일을 최선을 다해 한다는 말. 이건 변호사 일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좋겠지.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인 사람도 있다(나도 다르지 않구나). 나쓰코는 일흔이 되어서도 사기를 쳤다. 전에는 남자한테 속기도 했는데. 나쓰코가 속았을 때 데쓰코는 남자한테 나쓰코를 이용하지 마라 한다. 데쓰코와 나쓰코뿐 아니라 여러 사람 삶을 엿볼 수 있다. 사람은 저마다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혼자라는 것도 잘 견디면 그렇게 나쁘지 않다. 잠깐 꾸는 꿈은 그것으로 끝내야 한다. 삶은 꿈보다 길다. 나도 그렇게 잘 사는 건 아니구나. 나쓰코 같은 사람은 여자만 있을까. 난 그런 남자도 있을 것 같다.
희선
☆―
“사람은 누구나 혼자예요. 크건 작건 누구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 외로움까지도 잘 다스리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돈으로 외로움을 채울 순 없어요. 그보다 외로움을 즐기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외로움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거든요.” (3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