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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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만나고 친구가 되는 소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 소설 때문일지 몰라도 헤세 소설이 떠오른다. 《데미안》에서는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만나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만난다. 아마 《수레바퀴 아래서》에도 두 사람이 나올 거다. 헤세가 그린 두 사람은 친한 친구기도 하지만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소설 《동급생》에 나오는 두 사람 한스 슈바르츠와 콘라딘 폰 호엔펠스가 아주 다른 건 아닐 거다. 헤세 소설 말고 니시 가나코 소설 《사라바》에도 두 사람 아유무와 야곱이 나온다. 둘은 다른 나라 사람인데도 말이 통했다. 어렸기에 그랬겠지. 어린시절은 언젠가 끝난다. 아유무와 야곱은 짧은 시간 만나고 헤어진다. 헤세 소설에 나오는 두 사람은 어땠을까. 거기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니 빨강머리 앤과 다이아나가 생각난다. 둘은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지만, 앤이 퀸 학원에 가려고 공부를 시작하려 할 때 다이아나는 두 사람이 이제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말한다.

 

 유대인인 한스 슈바르츠와 독일 귀족 콘라딘 폰 호엔펠스는 1932년에 만났다. 콘라딘이 한스가 다니는 카를 알렉산더 김나지움에 전학왔다. 한스가 이야기를 이끌어서 콘라딘이 한스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건 알 수 없지만 콘라딘도 한스한테 관심을 가졌겠지. 한스가 콘라딘한테 잘 보이려고 공부시간에 말을 하고 체육시간에 운동을 해서였는지, 한스가 학교에 가지고 온 그리스 동전 때문이었는지, 그걸 보니 나도 예전에 그런 적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어서 그 아이가 관심 가질 말한 노랫말을 연습장에 적었다. 그 아이가 그걸 봤지만 그때 잠깐 말하고 말았다. 그 아이한테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었다. 한스가 어떤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는지 그 마음 잘 안다. 그건 어렸을 때만 가지는 마음일까. 지금도 난 그런데. 마음이 잘 맞는 친구라고 해야 할까, 영혼으로 이어진 친구라고 해야 할까. 아직도 난 그런 친구를 찾는 것 같기도 하다. 그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친구를 찾기보다 나랑 잘 지내봐야겠다.

 

 앞에서 말했듯 한스는 유대인이고 콘라딘은 독일 귀족이다. 1932년 독일은 그리 평화롭지 못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였구나. 유대인과 독일 귀족이 친구가 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세상이 그것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한스는 콘라딘을 자기 집에 부르고 부모님한테도 소개했다. 한스 아버지는 한스를 좀 힘들게 만들었다. 콘라딘이 그 일을 잘 넘겼다. 콘라딘도 한스를 집에 데리고 갔지만 늘 부모님이 없을 때였다. 한스는 콘라딘이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건가 했다. 콘라딘 어머니는 폴란드 귀족으로 유대인을 싫어했다. 본 적도 없는데 그랬다니. 콘라딘은 어머니와 싸우고 싶지 않았겠지. 폴란드에 유대인이 많았던 걸로 아는데 모두 유대인은 아니었나 보다. 시간이 갈수록 독일에서는 유대인을 몰아내려 했다. 한스 어머니와 아버지는 독일에 남고 한스는 미국 친척집에 가게 되었다. 한스 아버지는 자신을 독일 사람이라 여겼는데, 독일 사람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겠지.

 

 두 사람 한스와 콘라딘이 친구로 지낸 시간은 한해쯤이다. 짧다 해도 두 사람한테는 긴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둘이 함께 여기저기 다니고 책과 시 이야기를 하고 서로가 모은 동전을 보여주었다. 둘이 만나기 전에는 둘 다 친구가 없었다. 겨우 만난 단짝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멀어질 수도 있었지만, 둘은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다. 그때 마음 아팠을 것 같다. 오랫동안 한스는 콘라딘을 잘못 알았다. 그건 한스가 떠날 때 받은 편지 때문이지만. 한스는 독일을 떠나 미국에 가서 목숨을 건졌지만, 많은 유대인이 죽임 당하고 부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소식은 한스를 슬프게 만들었겠다. 한스는 독일말로 쓰인 책은 읽지 않고 독일말도 하지 않았다. 서른해 뒤에야 한스는 친구 소식을 알게 된다. 그때 한스 마음은 어땠을까. 그제야 그걸 알아서 미안했을지. 미안한 마음도 있었겠지만, 콘라딘을 처음 본 그때가 그리웠을 것 같다. 어쩌면 한스 마음은 그때로 돌아갔을지도. 그렇게 끝나는 영화도 괜찮겠다.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이고 전쟁이나 무서운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 배경이 어떤지 알기에 말하지 않은 걸 아는 건지도. 좋은 때는 그리 길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잘 모르고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좋았다는 걸 알겠지. 아니 한스는 콘라딘과 만났을 때가 좋았다는 것을 알았겠다. 한스가 콘라딘과 안 좋게 헤어졌다 해도 한스는 미국에서 콘라딘 같은 친구는 다시 만나지 못했을 것 같다. 친한 친구가 헤어지게 된 것도 시대가 만든 슬픈 일이겠지. 그런 시대가 다시 오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인류가 서로를 안됐다 여기고 서로 돕고 살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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