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미터 문학과지성 시인선 478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경 북회귀선 툰드라 캄차카 반도 일각고래 북해 인도양 날짜변경선. 난 이런 말을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여기에는 내가 모르는 말이 더 있을지도 모를 텐데 다 적지 못했다. 난 어딘가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국경을 넘을 일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겠다. 국경을 넘는다고 크게 바뀌는 건 없겠지만. 선 하나로 나라가 바뀌는 건 신기할 것 같다. 그 선은 보이지 않겠구나. 어딘가에서는 그것을 쉽게 넘을 수 있겠지만, 어딘가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할 거다. 시에 저런 말을 쓴 건 허연이 그런 곳에 갔다 와서겠지. 어딘가에 다녀온 일과 자기 삶을 이어서 쓰는 건 어려울 것 같은데 시인은 그런 걸 잘할지도 모르겠다. 시인만 그런 건 아니구나. 소설가도 다른 나라에 다녀오거나 어딘가에 다녀오면 그 경험을 소설로 쓴다. 경험한 대로는 아니지만. 바로 쓰는 사람도 있고 시간이 흐른 뒤에 다른 것과 함께 떠올라서 쓰는 사람도 있겠지. 별일 없는 일상도 시나 소설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난 그것을 잘 보지 못하고 그냥 흘려 보내는구나.

 

 어딘가에 꼭 갔다 와야 좋은 건 아닐 거다. 그래도 많은 사람은 생각하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낫다고 하겠다. 본다 해도 그것을 말로 나타내기는 어려울 거다. 어딘가에 가는 이야기가 많은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다. 난 좋아하는 것도 많지 않고 하고 싶은 것도 얼마 없고 친구도 별로 없고……, 별로 없는 것만 말하다니. 뭐든 많다고 좋은 건 아니다. 내가 가진 게 얼마 없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친구가 많으면 모두한테 마음 쓰기 힘들지 않을까. 하고 싶은 게 많아도 다할 시간이 없어, 할 거다. 내가 게을러서 그렇구나. 부지런한 사람은 사람도 부지런히 만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시간을 쪼개서 즐겁게 하겠다. 그렇게 해도 괜찮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쉽게 지치는 사람도 있다. 몸보다 마음이. 어느 하나만 좋은 건 아니다. 이건 다들 아는 거구나. 자신한테 맞는 걸 알고 그렇게 살면 되겠지. 자신과 다른 사람도 있다는 걸 잊지 않으면 더 좋겠다. 내가 잊어버려서 이런 말을 했나보다.

 

 

 

 위대한 건 기다림이다. 북극곰은 늙은 바다코끼리가 뭍에 올라와 숨을 거둘 때까지 사흘 밤낮을 기다린다. 파도가 오고 파도가 가고, 밤이 오고 밤이 가고. 그는 한생이 끊어져가는 지루한 의식을 지켜보며 시간을 잊는다.

 

 그는 기대가 어긋나도 흥분하지 않는다. 늙은 바다코끼리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먼바다로 나아갈 때. 그는 실패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다시 살아난 바다코끼리도, 사흘 밤낮을 기다린 그도, 배를 곯고 있는 새끼들도, 모든 걸 지켜본 일각고래도 이곳에서는 하나의 ‘자세’일 뿐이다.

 

 기다림의 자세에서 극을 본다.

 

 근육과 눈빛과 하얀 입김.

 백야의 시간은

 자세들로 채워진다.

 

 -<자세>, 23쪽

 

 

 

 처음 이 시를 보았을 때는 ‘기다림’이라는 말이 먼저 보였다. 지금은 북극곰과 늙은 바다코끼리가 보인다. <동물의 왕국>에 나올 것 같은 이야기다. 갑자기 그런 거 찍으려면 시간 많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북극곰이 늙은 바다코끼리가 죽기를 기다리는 영상 있을까. 사흘 밤낮을 기다려도 죽지 않는 것도 있다니. 그 뒤에 북극곰은 무엇을 먹었을까. 새끼도 있는데. 지는 것도 받아들이기, 이건 배워야 하는 자세다. 늘 지기만 하는 사람은 마음 안 좋겠다. 아니 삶은 이기고 지는 것과 상관없다. 자신의 삶을 살아내면 괜찮겠지.

 

 

 

 살고 싶을 때 바다에 갔고, 죽고 싶을 때도 바다에 갔다. 사라질세라 바다를 가방에 담아 왔지만 돌아와 가방을 열면 언제나 바다는 없었다  (<조개 무덤>에서, 66쪽)

 

 

 

 바다를 어디에 담아오면 사라지지 않을까.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들을 수 없지만 사진으로 담으면 사라지지 않겠다. 실제 보는 바다와는 다르겠지만. 동영상으로 담으면 파도소리는 들을 수 있겠다. 살고 싶을 때와 죽고 싶을 때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지,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지. 아니 둘 다를 좋아하겠다. 바다는 바다대로 좋고 산은 산대로 좋다.

 

 시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이건 늘 그렇구나. 평소에 보기 어려운 일 같기도 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허연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잘 모르는 것뿐이다. 알듯말듯한 그런 느낌이다. 누군가를 그리는 마음도 있는 것 같고 남보다 빨리 기대를 버린 것 같기도 하다. 시에는 아픈 마음을 더 쓰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를 만난 기쁨을 쓰기도 하지만, 누군가와 헤어지거나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난 일을 쓰기도 한다. 자신의 아픔을 시로 쓰면 그게 덜할까. 조금은 낫기도 하겠지. 시를 생각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 “밤이 깊어 간다. 여린 짐승들의 머리 위로 꿈들이 떠다니고, 그 꿈들은 언젠가 달렸을 그 국도를 찾아 헤맨다. 왜 길들을 잃었을까. 여린 짐승들은 원래 길을 잃게끔 되어 있었던 것일까. 여린 짐승들을 위한 표지판은 따로 없었던 것일까. 여린 짐승 몇이 잠들어 있는 밤이다.  (<안개 도로>에서, 24~25쪽)” 여린 짐승은 힘없는 짐승이기도 하겠지만, 사람 같은 느낌도 든다. 허연은 사람을 여린 짐승이라 생각하는 건 아닐지. 아픔 슬픔 죽음 같은 것은 자신한테 닥치치 않으면 잘 생각하지 않는다. 시인은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시로 적겠다. 어떤 일을 썼는지 내가 다 알아보는 건 아니고 감정만 느낄 뿐이다. 그거라도 느끼면 다행일지도. 한사람이 겪은 일이라고 해서 그 사람만의 일은 아니다. 똑같지 않다 해도 사람은 비슷한 일을 겪는다. 시를 보고 여러 감정에 공감하는 것도 괜찮겠다.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