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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안경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이덴슬리벨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평범하다는 것이 곧 행복.
특별한 일이 없다는 것만으로 기적. (395쪽)
아침이면 해가 뜨고 어스름이 내리면 해가 지는 거지. 이렇게 말하는 건 지구를 중심으로 보는 거다 하더군. 해가 뜨고 지는 게 아니고 지구가 돌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잖아. 지구는 하루에 한번 돌고 한해 동안 해 둘레를 돌지. 그건 누가 하라고 했을까. 지구가 생겼을 때부터 그렇게 했겠지. 오랜만에 이런 생각을 하니 정말 우주는 신비롭군. 지구가 스스로 돌지 않고 해 둘레를 돌지 않으면 지구에서 생명체는 살 수 없어. 이런 걸 안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 지구가 멈춘다고 무슨 큰일이 있을까 한 적도 있어. 그건 지구가 돌아서 세상이 돌아간다는 걸 몰라서였어. 하루가 시작하고 하루가 끝나는 건 지구가 잘 돈다는 증거야. 그걸 잊지 않아야 할 텐데. ‘지구야 고마워. 쉬지 않고 늘 네 할 일을 해서.’ 쉬지 않고 자기 할 일 하는 건 몸도 마찬가지야. 자연도 그렇고.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고 움직이지 않을 때도 사람 몸속 세포는 쉬지 않고 움직여. 살아있는 건 무엇이든 그렇겠어. 우주, 지구도 살아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거리를 지키고 도는 것은 과학으로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좀 별난 말로 시작했어. 하루하루 사는 게 기적인 건 지구가 돌고 있어서잖아.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드는군. 지구가 생기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이렇게 살지 않을 텐데 하는. 이건 좀 안 좋은 거군. 자신이 나고 지금까지 산 것을 기쁘게 여기는 사람도 많을 텐데, 저건 나만 생각하는 거잖아. 어릴 때는 누구나 세상을 좋아하고 꿈이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텐데, 아니 그런 것을 빼앗기고 사는 사람도 있겠군. 다른 사람 자유를 빼앗는 일이 없으면 좋을 텐데 세상 곳곳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은 그 안에서 희망을 갖고 살기를 바라야겠어. 또 멀리까지 갔군. 평소에는 그런 건 생각도 하지 않고 내 생각에 빠지고 울적해하곤 해. 그게 꼭 나 때문에 그런 건 아니야. 이 말은 그만해야겠어. 다시 안 좋은 생각에 빠질 것 같아서. 무슨 큰일이 있는 건 아니야, 별일 없어. 아무 일 없는 일상이 나쁜 건 아니야. 살다보면 삶이 잔잔하기만 하지 않다는 걸 알기도 하지.
“삶을 꽃에 비유한다면. ‘행운’은 화려한 장미고 ‘불운’은 수수한 안개꽃이야. 둘을 같이 묶은 꽃다발이 얼마나 예쁜지 알지? 안개꽃이 장미를 돋보이게 하잖아.“
“…….”
“어머나, 자기,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바보네. ‘불행’도 삶의 소중한 요소라는 뜻, 이, 야.” (186쪽)
누군가는 식구 때문에 누군가는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마음 아프기도 하지. 사람은 거의 사람 때문에 마음 아프고 기쁘기도 한 것 같아. 자신이 하는 일이 잘 돼서 기뻐할 때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다치바나 아케미는 기르던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고 죽음을 생각하다 헌책방에서 《죽음을 빛나게 하는 삶》이라는 책을 사. 그 안에서 오타키 아카네라는 사람 명함을 보고는 용기를 내서 아카네한테 전자편지를 써. 오타키 아카네는 자신이 잘못해서 그 책을 팔았다면서 돌려달라고 부탁해. 그렇게 아케미와 아카네는 만나. 두 사람이 만나고 잘되었다가 되면 싱거울까. 지금 생각하니 그럴 것도 같군.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고 두 사람이 가까워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흘러가지 않아. 아케미는 아카네를 만나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도 마음에 들어해. 아케미와 마음이 잘 맞았거든. 삶에는 늘 장애물이 나타나지. 아카네한테는 남자친구가 있고, 그 남자친구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아카네는 밝아 보이는데 마음속은 밝지 않을지도. 아니 아카네는 남자친구 유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는 그때부터 반짝반짝 안경을 썼어. 그건 아카네가 보는 건 무엇이든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는 안경이야. 사람이 그렇게 처음부터 긍정스러울 수 있을까. 사람은 시련이나 아픔을 겪은 다음에야 긍정스럽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카네가 반짝반짝 안경을 쓰게 된 것도 유지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야. 유지가 세상에 있는 동안 아카네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고 애썼어. 그게 애쓴다고 할 수 있을지. 그러고 보니 아카네가 처음에는 힘들었다고 했군. 아케미는 그런 마음을 아카네가 유지와 같은 마음으로 살려 했다고 생각했어. 이 말 맞는 것 같기도 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세상을 원망하고 어둡게 지내는 것보다 남은 날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는 게 더 좋잖아. 이렇게 말해도 난 그런 마음 잘 몰라. 유지뿐 아니라 아카네 마음도. 두 사람 사이에 아케미가 나타난 건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어. 이건 누구 마음에서 바라보는 걸까. 유지는 아주 잠깐 나오는데 자주 나오는 것 같기도 해. 참 신기해.
한 사람 더 있는데 그 사람 이야기는 별로 못했군. 아케미를 좋아하는 회사 선배 마쓰바라 야요이야. 야요이는 아케미를 좋아하는데 좋아한다고 확실하게 말하지 않고 아케미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만 떠봐. 아케미는 야요이 마음을 알면서 모르는 척해. 야요이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그런 거군. 그게 더 안 좋을 것 같아. 여러 사람이 나오기는 해도 아케미와 아카네가 중심이야. 아니 아케미 마음속에 있는 상처가 낫는 건가. 어린시절 겪은 아픔은 자라도 쉽게 낫지 않기도 해. 아케미가 어린시절에 힘들어서 지금은 남의 마음에 마음을 많이 써. 난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아픔이라는 게 그렇게 안 좋은 건 아닌 듯해. 다른 사람 마음을 생각하고 조심하잖아. 그게 아주 심하면 안 좋을까. 아니 그런 것도 좋게 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괜찮겠군.
참아야 하는 일이 있을 때만 반짝반짝 안경을 쓰기보다 자주 그걸 쓰면 더 낫겠어. 그러면 어떤 것에서든 좋은 걸 볼 수 있을 테지. 그게 아니더라도 평범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면 좋겠어. 우리는 모두 언젠가 세상을 떠나잖아.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좀더 즐겁게 기쁘게 살면 좋잖아.
희선
☆―
바다는 정말 대단한 거야. 바다는 강에서 흘러오는 물을 절대 거부하지 않아. 바다는 언제나 모든 걸 받아들인단다. 묵묵히 받아들이고 어느새 자신의 한 부분으로 삼지. 사람도 마찬가지야. 모두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에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단다. (1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