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화서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2015년 09월 09일

 

 

 

 

 

 

 

 

 

 

 

 

 

 

 

 

 이 책은 이성복 시인이 시 창작 시간에 말한 내용을 아포리즘(간접 체험으로 얻은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형식으로 정리한 거예요. 아포리즘은 간접 체험으로 안 것을 말하는 것이라니, 이성복은 시인으로 오랫동안 시를 썼어요. 그러니 간접 체험뿐 아니라 자신이 시를 써 보고 알게 된 것을 말한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시론’이라는 말 때문에 어려울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 아주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여기 실린 말을 다 알아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알쏭달쏭 알듯말듯한 말도 있습니다. 이것을 본다고 바로 무언가를 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요.

 

 

 45

 

 시 쓰기를 겁내지 마세요. 자기 자신에게, 옆 사람에게 속삭이듯 얘기하면 돼요. 다만, 말은 말이 반이고 침묵이 반이라는 것, 그리고 어떤 얘기를 하려면 다른 얘기를 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26쪽)

 

 

 

 129

 

 세상에서 뜻 없는 건 하나도 없어요. 모든 미친 것들에게, 미치지 않으면 안 될 사연 하나씩 찾아주는 게 시예요.  (56쪽)

 

 

 

 278

 

 다친 새끼발가락, 이것이 시예요.  (108쪽)

 

 

 307

 

 시는 알고 쓰는 게 아니고, 쓰는 가운데 알게 되는 거예요.  (120쪽)

 

 

 

 380

 

 시 쓰기는 자기성장의 과정이에요. 시로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돼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우리가 쓰는 시 안에 다 있어요.  (145쪽)

 

 

 조금만 쓰고 그것을 말할까 하다가 이렇게 많이 옮겨 두었네요. 시 쓰기를 겁내지 마라 하지만, 어디 말이 쉽게 나옵니까.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도 없고, 무엇을 숨겨야 할까 싶기도 하고, 숨겨도 그것을 알까 하는 걱정도 하지요. 그건 그렇게 걱정할 게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시, 글은 쓰는 사람 것이라기보다 읽는 사람 것이라고도 하잖아요. 알듯 모를 듯하게 써야 하는군요. 그런 건 어떻게 쓰는 걸까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런 건 생각하고 하는 게 아니고 하다보면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시뿐 아니라 소설도 아픈 것을 드러내요. 사람이 살면서 자기 아픔을 잘 들여다 볼까요. 그러지 않을 때가 많을 거예요. 때론 그 아픔에 묻히기도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척하겠지요. 그렇게 잊으려고 하는 것을 시나 소설을 보고 알기도 할 거예요. 그때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흘릴 것 같습니다. 울기와 웃기는 사람한테 중요한 거예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마음껏 울고 웃으면 마음속이 시원하기도 하잖아요. 울 때 더 그럴까요. 마음속에 남은 감정 찌꺼기를 눈물에 흘려보내는 것이겠습니다.

 

 

 268

 

 칠판을 다 지워도 그 밑에 글자 흔적이 남듯이, 우리 기억이 사라져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어요. 시는 남아있는 그 흔적을 옮겨 놓는 거예요.  (105쪽)

 

 

 

 384

 

 우리가 시를 쓰는 건 잊지 않으려고예요. 돌아가시기 전날 아버지 눈빛이 어떠했는지…… 꽃매미 날개를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것도 내 삶이 무척 덧없기 때문이에요. 시는 이제는 기억도 못 하는 숱한 상처의 기록이에요. 그 속에는 내가 받은 상처뿐 아니라, 내가 준 상처도 들어가 있어요. 길바닥을 기어가는 개미를 보고 조심하지만, 벌써 내 구둣발 밑에 으깨어진 개미는 보이지도 않았을 테니……  (147쪽)

 

 

 시를 말하지만 시만 말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글이든 칠판을 지운 흔적을 쓰고, 잊지 않으려고 쓰지요. 이건 역사와도 다르지 않군요. 역사는 써두지 않으면 잊어버리잖아요. 인류는 오래전부터 기록했습니다. 문자가 없을 때는 그림으로. 그림과 시는 닮았습니다. 그림에는 전체보다 부분만 담잖아요. 시도 그렇습니다. 시를 보고 여러 가지를 상상하기도 하는군요. 시에서 깊은 뜻을 알지 못한다 해도 상상하면 괜찮겠습니다. 그게 시를 쉽게 편하게 만나게 하겠지요. 시 쓰기에서 시 만나기가 되었군요. 시 쓰기와 시 만나기에서 어떤 것이 먼저일까요. 어쨌든 시를 만나다보면 쓰고 싶기도 할 거예요. 그런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할지, 말이 나오는 대로 써야 할지. 이성복은 여기에서 말이 나오는 대로 쓰라고 했군요. 생각은 나중에 하라고 합니다.

 

 시 쓰기와 시 만나기는 아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어디에나 있어요. 그것을 알아보아야 할 텐데요. 시 쓰기 시 만나기 둘 다 즐겁게 하면 삶도 즐거울까요.

 

 

 

 

 

 

 

 

 

 

 

 

시시한 것에서

중요한 것을 찾고

시시한 말로 시작해도,

끝은 시시하지 않다

 

작고 보잘것없는 게

더 크고 소중하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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