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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人 (新潮文庫) (改版, 文庫)
가와바타 야스나리 / 新潮社 / 1962년 9월
평점 :
품절

어느새 지난해가 된 2016년에 바둑기사 이세돌(몇단인지 잘 모른다)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바둑을 두었다. 그런 일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인터넷에서 그 소식을 보고, 라디오 방송에서도 잠깐 나와서 들었다. 내가 그때 바둑에 관심을 가지고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명인》을 보려 한 건 아니다. 그래도 그것 때문에 책을 알게 되고 한번 볼까 생각했다. 책이 얇아서 조금 빨리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마음은 그랬지만, 책이 얇아도 쉽게 펴볼 수 없었다. 책을 보지 않고도 어떤 기운을 느낀 걸까. 이 책을 읽지 않으면 다른 책, 그러니까 일본말로 쓰인 소설 보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마음먹고 읽었다. 한번 읽기는 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은 처음이다. 한국 사람이 많이 본 건 《설국》일 텐데, 그것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언젠가 보고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을까.
내가 바둑에 관심을 가진 건 <히카루의 바둑>(한국에서는 <고스트 바둑왕>으로 했다)을 보고서다. 그것을 봤을 때는 바둑이 참 재미있게 보였는데 그 뒤 바둑은 배우지 못했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바둑 대국을 봐도 뭐가 뭔지 몰랐다. <히카루의 바둑>을 보고 내가 좋게 여긴 건 바둑이라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거 하나에 빠져서 그것을 즐겁게 열심히 하는 거였던가보다. <치하야후루>를 봤을 때는 카루타가 재미있게 보였으니 말이다. 카루타는 백인일수(百人一首)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것도 잠깐. 난 좋아해도 끝까지 가지 못한다. 책만은 여전히 읽는 걸 보면 이것은 그만두지 않겠다. 읽는 시간이 늘면 좀 잘 보기도 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기도 해서 아쉽다. 그것도 애써야 하는 거겠지. 바둑 이야기하다 다른 말로 빠졌다. <히카루의 바둑>에서는 신의 한 수를 두려는 헤이안 시대 바둑기사 후지와라노 사이가 지금 시대에서 바둑을 둔다. 실제 바둑을 두는 건 히카루다. 사이가 히카루 몸을 빌린다고 해야겠다. 히카루는 사이가 두는 바둑을 보다가 바둑에 관심을 가지고 평생의 좋은 맞수(호적수)도 만난다. 히카루가 히카루의 바둑을 두는 동안 사이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사이는 신의 한 수를 두지 못하고 사라진다(이거 지금 생각해도 조금 슬프다). 그렇다고 사이 바둑이 사라진 건 아니다. 히카루가 사이 바둑을 이어받고 히카루가 신의 한 수를 두려 한다. 옛 세대에서 새로운 세대로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건 사람 삶이기도 하다.
이 소설 《명인》과 <히카루의 바둑>이 상관없지 않다. 만화를 그린 사람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명인》 봤을까. 알았을 것 같기는 하다. 만화를 그리려고 자료를 많이 찾았을 테니까. 사이가 지금 시대에 나타나기 전에 에도시대에 자기 대신 바둑을 두게 한 건 혼인보 슈사쿠(본래 이름은 구와바라 토라지로)다. 혼인보는 일본에서 대대로 바둑을 둔 집안이다. 지금은 ‘명인’과 함께 바둑기사 타이틀이다(타이틀을 뭐라 말하면 좋을지). 여기 나오는 명인은 혼인보 슈사이다. 슈사이 명인은 예순다섯살에 마지막으로 은퇴 바둑을 둔다. 슈사이 명인과 바둑을 두는 건 오타케 7단이다. 혼인보 슈사이 명인은 실제 있었던 사람으로 그때 바둑을 둔 사람은 기타니 미노루 7단이라 한다. 이름을 바꾼 사람도 있고 그대로 쓴 사람도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소설에서 글을 쓴 사람처럼 슈사이 명인과 기타니 7단이 한 대국을 보고 글을 썼다. 그것을 가까이에서 보고 글을 써서 이 소설을 쓴 거겠지.
슈사이 명인과 오타니 7단은 1938년 6월 26일에서 12월 4일까지 바둑을 두었다. 바둑 한판을 여섯달이나 걸려서 두다니 하겠다. 여섯달에서 석달은 슈사이 명인이 병원에 있어야 해서 쉬었다. 그렇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른 바둑과 달리 40시간을 제한시간으로 정했다. 40시간도 길다. 시간을 다 쓰면 초읽기로 들어가고 1분에 한 수를 둬야 할 거다. 슈사이 명인보다 오타니 7단이 시간을 더 많이 썼다. 한 수 두는 데 몇시간 걸리기도 했다. 하루에 몇 수 못 두기도 했다. 그런 바둑을 몇달 동안 두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거다. 소설 속 작가는 마지막 바둑이 슈사이 명인 목숨을 빼앗아갔다고도 한다. 본래 심장이 좋지 않았는데 바둑을 두다보니 더 안 좋아졌다. 슈사이 명인은 바둑을 두면서도 이것을 끝내면 괜찮을 텐데 하거나 그만두고 싶다고도 한다. 그래도 바둑을 끝낸다. 슈사이 명인뿐 아니라 오타니 7단도 힘들었다. 아픈 사람과 바둑을 두려니 부담스럽고, 많은 사람의 기대를 받은 것도 부담스러웠다. 오타니 7단이 한 수 한 수에 시간을 들일 법하다.
은퇴 바둑을 두고 한해가 조금 지난 1940년 1월 8일에 혼인보 슈사이 명인은 세상을 떠난다. 소설에는 이게 맨 앞에 나온다. 잘 모르는데 명인은 그 시대 최고 기사가 받는 종신 명예였는데, 슈사이 명인을 끝으로 바뀌었다. 누구나 명인이 될 수 있게 된 거다.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찾아왔다. 그 대국이 그때 꽤 중요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거였겠다. 바둑도 예술처럼 둘 수 있는가보다. 슈사이 명인은 기술보다 예술에 가까운 바둑을 두려 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그런 바둑기사가 슈사이 명인이 마지막이다 여겼다.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바둑을 멋지게 두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또 히카루가 생각나는데, 히카루는 안 좋은 수로 보인 것을 좋은 수로 바꾸는 바둑을 두었다. 그것을 본 사람은 그것을 꽤 훌륭하게 여겼다. 바둑은 한번 잘못하면 모두 무너질 수도 있지만, 잘못한 것을 좋게 바꿀 수도 있다. 늘 그런 건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자신이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살 길이 없으면 어렵겠지. 잘 보이지 않아도 살 길을 찾으려 하는 게 바둑과 삶이 닮은 걸까.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