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억누르기보다 드러내기
잔혹한 그림 왕국 The Grimm Conclusion (2013)
애덤 기드비츠 유수아 옮김
미래엔아이세움 2016년 05월 25일
야콥 그림과 빌헬름 그림은 독일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모아서 《그림 형제 동화집》을 만들었다. 여기에 실린 동화는 많을 텐데 책으로 제대로 본 적은 없다. 그래도 그것을 조금 안다니 신기하다. 아마 텔레비전 만화영화로 봤겠지.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를 먹고 그림 동화가 잔인하다는 걸 알았다. 동화라고 해서 어린이만 보는 건 아닐 거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화라는 말이 어린이책을 나타내는 말이 된 것일지도. 그림 동화가 잔인해서 그것을 아이한테 그대로 보게 할 수 없다고 여긴 어른이 내용을 많이 바꾸었다. 그런 일 지금이라고 없을까. 어린이는 밝고 예쁜 것만 보아야 할까. 어릴 때부터 어두운 이야기를 보고 삶이 덧없구나 생각하는 건 안 되겠지만. 어려도 사람한테는 안 좋은 감정이 있다는 것과 세상이 밝고 예쁘지만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런 생각 조금 엄한 건지도. 내가 어렸을 때는 그런 걸 알았던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좋은 것만 있지 않다는 건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게 아니어서겠지.
동화에서 아이는 모두 집을 떠날까. 파랑새를 찾으려고 떠나는 건 생각난다. 그 아이들은 왜 파랑새를 찾으려고 했을까. 부모가 행복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드는데. 아이는 부모 눈치를 많이 본다. 내가 그런 것을 경험했던가. 하나 있다, 다른 사람이 아파도 잘 참는다고 엄마가 말하는 걸 듣고 그 뒤로 나는 아파도 아무 말 안 했다. 돈도 아끼고. 지금 생각하니 어렸을 때 난 그게 착한 거다 생각한 건지도. 그때 버릇은 지금도 여전하다. 아파도 참고 돈도 잘 안 쓴다. 어릴 때 든 버릇은 쉽게 고칠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집을 떠나는 이야기를 하다 이런 말을 했구나. 집을 떠난 아이는 이런저런 경험을 한다. 경험을 하고 아이는 자신을 좋아하게 되는 걸까. 어쩐지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요린다와 요링겔은 쌍둥이로 둘이 태어났을 때 아빠는 무척 기뻐하다가 죽었다. 그렇게 죽다니. 엄마는 요린다와 요링겔이 태어나서 기뻤지만 아빠가 죽은 슬픔에 빠져서 아이를 잘 돌보지 않았다. 아이가 혼자가 아니고 둘인 게 다행이구나. 둘은 서로를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엄마가 다시 결혼하고 새아빠와 두 딸이 오고 집은 안 좋아졌다. 엄마는 정말 요린다와 요링겔을 생각하고 다시 결혼한 걸까. 누군가 아이를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을지도. 요린다와 요링겔은 어쩌다 보니 집을 떠난다. 엄마가 아이들한테 사랑을 주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둘은 괴롭고 아픈 것을 피하듯이 집을 떠난 거다.
부모한테 맞는 아이는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안 좋은 일은 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 요린다와 요링겔도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가 슬픔에 빠지지 않았을 텐데 하고, 엄마는 요린다와 요링겔한테 감정을 삼키라 한다. 자신이 아프고 괴로운 일에서 피하면서 아이들한테도 그렇게 하라고 하다니. 둘은 감정을 참고 참아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만약 요린다와 요링겔이 그대로 어른이 되었다면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린다와 요링겔이 지옥에서 악마네 할머니를 만나 자기들 이야기를 해서 다행이다. 사람은 즐겁고 기쁠 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울고 화날 때는 화내야지, 그런 것을 억누르면 안 된다. 화라고 해서 별거 아닌 일에 욱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이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참지 않고 그것을 말하는 거다. 자기 감정을 억누르다 보면 다른 사람이 어떤지 모를 거다. 요린다가 여왕이 됐을 때 그랬다. 백성이 어떤지 잘 살펴보지 않았다. 요링겔은 아이를 때리는 부모를 엄하게 다스렸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넓게 보아야 하는데.
아이한테 어두운 현실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잔인한 건 별로다. 좀 잔인한 게 나온다. <신데렐라>에서 의붓언니가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자르는 건 많이 알려졌을지도. 엄마가 현실에 맞서지 않고 달아나서 요린다와 요링겔도 그렇게 했다. 부모를 따라 아이도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할 텐데. 요린다와 요링겔은 엄마한테 자신들 마음을 털어놓아야 했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걸 나중에 알았구나. 요린다와 요링겔이 죄책감과 자신들한테 마음을 쓰지 않는 엄마 때문에 집을 떠났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고 집에 돌아와서 알게 된다. 엄마도 괴롭고 두려웠다는 걸. 엄마는 요린다와 요링겔을 사랑했지만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다. 아내가 죽고 아이한테 마음 쓰지 않고 일에 빠지는 아빠가 생각나는구나. 어른이라고 해서 마음이 단단한 건 아니다. 그때는 아이가 고생하겠다. 자신이 아픔이나 괴로움을 피한다고 해서 아이한테도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으면 좋겠다. 아이가 하는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겉으로 드러내는 게 좋겠지. 말할 사람이 없으면 글로 나타내는 건 어떨까. 그러면 마음이 조금 나아질 거다.







책은 썼으니 더 말하지 않아도 괜찮겠다.
단풍을 보려고 어딘가에 가 본 적은 없다. 거의 볼 일 있을 때 나가서 길에서 본다. 사진은 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공원이다. 저기를 작은 공원이라 해도 괜찮겠지. 운동기구도 조금 있고 사람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정자도 있다. 공연하는 곳도 만들어뒀지만 거기에서 한번이라도 공연했을까. 했지만 내가 한번도 못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단풍을 봐서 좋았다. 도서관에 여러 사람이 와서 강연도 하는 것 같은데 그런 것은 한번도 못 봤다. 그런 걸 잘 이용하는 사람도 있겠지. 나는 거의 책만 빌린다. 그것만 해도 괜찮기는 하다.
십일월에는 씰(실seal이라 써야 하겠지만 저기에도 씰이라 쓰여 있으니)이 나온다. 며칠에 나오는지 잘 모르는데, 이달 첫째주에 동네 우체국에 갔을 때 물어보니 7일에 나온다고 했다. 그날 갔더니 거기에서는 팔지 않는다는 거다. 멀리 시내까지 나가야 해서 며칠 지나서 가기로 했다. 며칠 지나면 다 팔리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하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는 어쩔 수 없이 샀던 것 같기도 하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는 사지 않다가 우연히 우체국에 가서 성탄절 씰을 보고 예뻐서 샀다. 그때는 우표와 다르지 않았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는 스티커로 나왔다. 그게 언제부턴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스티커로 나온다. 올해는 독립운동가 열사람이다. 뜻깊게 보인다.
나라를 되찾으려고 애쓴 사람에는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다. 어쩌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있기에 나라가 있는 거겠지.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