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ㅣ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평점 :

자신이 사는 곳곳을 걸어본 사람이 있을까요. 아주 없지 않겠지만, 볼 게 없어서 걷지 않거나 늘 다니는 곳만 다닐 것 같습니다. 이건 제가 그러네요. 제가 늘 걸어다니기는 해도 아주 멀리까지 걸어 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사는 곳 구석구석을 걸어다니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합니다. 하루로는 모자랄 듯합니다. 제주도에 사는 사람도 제주도를 다 아는 건 아니겠지요.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건물이나 문화재 같은 게 있는 곳은 가끔 걸어다녀도 좋을 듯싶네요. 가장 먼저 경주가 떠오르는 건 왜인지. 제가 사는 곳에도 뭔가 있을지 모를 텐데 아쉽게도 제가 잘 모릅니다. 그런 곳은 집에서 먼 곳이어서 걸어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아니 지금은 많이 달라진 배 타는 곳에는 가 볼 수 있겠네요. 일제강점기 때 배나 화물차가 다닌 곳도 있을 텐데. 오래전부터 쓰지 않은 철길 본 적 있어요. 그런 게 남아있다니.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듯한 건물도 있고, 지금도 그런 게 남아있는지 모르겠네요. 중학교 때 친구집이 그랬던 것 같은데, 그쪽에 안 가 본 지 오래됐군요. 예전 시청도 참 오래된 곳일 텐데. 저는 달라진 게 별로 없는데, 세상은 참 많이도 바뀌었네요. 이건 어디나 그렇겠군요.
제가 달라진 게 별로 없다고 했는데, 저는 잘 느끼지 못하는 거고 저도 달라졌겠지요. 다른 곳에 가고 싶다 생각한 적도 있어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사는 것을. 잠시 생각만 하고 그걸 해내지 못했네요. 지금은 어딘가에 가는 것을 아예 좋아하지 않습니다. 떠나는 것은 돌아올 곳이 있어서다는 말이 있기도 하지요. 누군가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나고 나라까지 떠나기도 합니다. 떠나고 싶어서 떠난 사람도 있을 테고,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한 사람도 있고, 떠나고 그곳에 눌러앉은 사람도 있겠지요. 어떤 까닭으로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든 시간이 흐르면 자신이 나고 자란 곳 말과 사람과 추억이 있는 곳이 떠오르겠습니다. 허수경은 경남 진주에서 나고 자라고 대학을 나온 뒤 서울에서 일하다 1992년에 독일로 공부하러 갔습니다. 어떤 일로 그곳에 눌러앉게 됐는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공부하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나봅니다. 살다보면 뜻밖에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독일에 가서 공부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겠지요. 갑자기 집 안이 아닌 밖으로 나가야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고 한 말이 생각나는군요. 저는 별일 일어나지 않거든요.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허수경한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면서 좋은 일이 있었겠지 하는 것 같네요.
독일에 공부하러 갔을 때는 쓸쓸했겠지요.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 갔으니. 그럴 때는 걸으면 좋을까요. 걸어서 그곳을 알아보는 거죠. 이사해도 그런 거 할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이사 별로 안 해 봐서 그런 일 없었군요. 어릴 때는 ‘이사하는구나’ 했을 뿐이고. 이사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게 많네요. 제가 사는 곳도 잘 모르고 허수경이 걸은 독일 뮌스터도 모릅니다. 이곳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있답니다. 세계사 시간엔가 한번쯤 들은 베스트팔렌 조약이 생각나는군요. 그게 30년 전쟁 뒤에 한 건가. 아니면 어쩌려고 이런 말을. 예전에 독일을 소개한 사람이 있지요. 전혜린. 슈바빙인가가 생각나는군요. 허수경이 걸은 뮌스터도 좀 알려지겠습니다. 걷기만 한 건 아니고 스무해를 살았답니다. 그 정도 살면 거의 고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제가 별말을 다했네요. 어디든 고향이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서요. 저도 지금 사는 곳 고향은 아니예요. 고향이다 생각 안 하고 사는 것 같기도 하네요. 고향이 자신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호적에 쓰인 곳이기도 하지요. 그게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달라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사는 것도 다르지 않고. 고향을 생각하는 애틋함을 잘 모릅니다.
앞에서 어디 가는 거 안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선지 어딘가에 갔다 오고 쓴 책도 잘 안 봐요. 이 책을 보기로 한 건 ‘걸어본다’ 는 말 때문입니다. 제가 걷는 건 좋아하니까요. 실제 뮌스터를 걷는 건 아니지만, 책으로 걸어보는 경험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 상상을 하고 책을 봤다면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를 텐데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읽으면서 이거 대체 무슨 이야긴가 했습니다. 얼마전에 만난 책에서도 프랑스 역사를 말해서 어리둥절했는데. 어디든 지난날이 있지요. 그것을 알고 어딘가에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아주 다를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고 가면 지금밖에 볼 수 없지만, 알고 가면 지난날도 볼 듯합니다. 뮌스터는 독일에 있는 한 도시예요. 학생이 아주 많아서 학생 도시라고 한답니다. 독일 하면 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요. 유대인 학살, 나치는 동성애자와 장애인을 거세하고 죽였더군요. 제2차 세계전쟁 때는 뮌스터도 폭격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건물이 부서졌다고 합니다. 부서진 건 되살리기도 했습니다. 독일은 전쟁이 끝나고 잘못한 것을 잊지 않으려 했다지요. 그렇기는 해도 다 정리하지 못한 것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소설이 있어서 한 말입니다.
시작은 독일 시인 시로 합니다. 허수경은 독일말을 배우고 열해가 지나고 독일 시를 읽었다고 하네요. 소설은 어떻게든 봐도 시는 본래 말로 보기 어렵겠지요. 독일말로 쓴 시를 한국말로 옮겨도 그걸 그대로 느끼기 어려운데. 제2차 세계전쟁 때 쓰인 글로 《안네의 일기》가 잘 알려져 있잖아요. 안네와 비슷한 나이에 시를 쓴 사람도 있더군요. 젤마 메르바움 아이징어는 열다섯 때부터 시를 쓰고 열여덟에 강제 수용소에서 병으로 죽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쓴 시는 친구들이 지켰습니다. 이 이야기 윤동주 생각나게 하는군요. 윤동주가 묶은 시집도 친구가 지켰잖아요. 뮌스터 길 바닥에는 ‘걸림돌’이라는 경고문이 있다고 합니다. 그건 전쟁 때 끌려간 사람 이름이 쓰인 황동판입니다. 그런 사람 아주 많을 텐데. 그렇게 해서라도 잊지 않으려고 하는군요. 한국에도 많은 피해자가 있는데, 그건 일본에서 해야 하는 것이지만. 피해자라고 해서 그걸 잊어야 하는 건 아니죠. 황동판을 보니 일본 위안부로 끌려간 분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느새 한국을 되찾은 지 일흔한해째입니다. 이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아야 하는 일이고 그런 일 많군요.

여기에 살았다.
(이름)
(태어난 해)
(죽은 해)
(끌려간 곳)
거의 모르는 뮌스터여서 허수경을 잘 따라가려 했는데, 어쩐지 가끔 놓친 듯합니다. 저는 모르는 곳에서도 잘 걷습니다. 칠기박물관 성당 도서관 책방 뮌스터아 강. 여기저기 다니려면 하루로는 안 되겠군요. 푸른반지처럼 보이는 산책길을 걸으면 기분 좋을 듯합니다. 거기에는 자전거길도 있어요. 깜박했는데 뮌스터에서는 자전거 많이 탄답니다. 도시기는 해도 한국처럼 빠르게 돌아가지 않는 듯해요. 한국에도 그런 곳 있을지도 모를 텐데. 한국은 오래되면 부수고 다시 짓기 많이 했는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을까요. 독일을 다 돌아본 건 아니어도 괜찮군요. 여러 곳이 아닌 한 곳이어서 더 좋습니다.
희선
☆―
경고한다. 우리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과거에 무엇이었는지. (85쪽)
좋은 일을 기억하는 것은 따뜻하지만 나쁜 일을 기억하는 것은 새록새록 아프다. 그 아픔을 견뎌내어야만 하는 것도 기억의 일이다. 기억하지 않고 묻어버린 공동체 과거는 언젠가는 그 공동체에게 비수를 들이댄다. (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