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
오다 마사쿠니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 제목을 우연히 봤을 때는 산문인가 했습니다. 제목만 슬쩍 보고 무슨 책인지 안 찾아봤습니다. 나중에 소설인지 알았습니다. 어쩐지 요새는 다는 아니지만 새로 나오는 책을 빨리 아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된 지 몇해 되었군요. 이 말은 제가 여기저기 본다는 뜻이군요. 잘 모르던 때는 마음 편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로. 새로 나오는 책 빨리 알아서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안 좋습니다. 책을 바로 볼 수 없으니까요. 그러면 여기저기 안 보면 될 텐데 말입니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한번 알면 다시 안 보기 어렵기도 하죠. 아니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못할 것 없기는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자주 안 보도록 해야겠습니다. 연이 있으면 만나는 책이 있는 거겠죠. 이 책은 저와 연이 닿은 걸까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가끔 이런 생각하는데 왜 다시 다른 생각을 하는 건지(보려고 마음먹으면 볼 수 있다는 건지, 쓸 때는 무슨 생각을 했을 텐데 뭔지 모르겠네요). 사람 마음은 왜 그대로가 아닐까요. 바람 같은 마음은 남의 마음만 말하는 게 아닌가봐요. 자기 마음도 다루기 어려운 바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이 책이 산문이라 생각했을 때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에 암컷과 수컷이 있다는 건 어느 날 자신이 산지도 모르는 책이 나타나서일까 했어요(이건 제 생각인지 다른 글을 봐서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겠군요. 저는 책을 아주 많이 사지 않아서 그런 적은 별로 없습니다. 사고 시간이 많이 지나면 잊기도 하지만. 지난해에 어떤 책을 보고 ‘내가 이런 책도 샀구나’ 했어요. 어떤 책은 거기에 있을 텐데 하고 찾아보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다른 데 옮긴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겠죠. 책이 저절로 움직인 건 아닐 거예요. 아주 가끔 모습을 감추는 책도 있군요. 이건 책뿐 아니라 물건도 그러네요. 저는 아주 늦게 자기 때문에 방 안이 어두운 시간이 길지 않아요. 그래서 제 방에 있는 물건은 쉽게 움직이지 않겠죠(제가 잘 때 움직일지도). 집 바로 앞에 가로등이 있어서 불을 꺼도 방 안은 어둡지 않아요. 그 가로등은 아침이 될 때쯤 꺼집니다. 이것을 아는 건 제가 그때까지 깨어있었던 적이 있는 거군요. 맞습니다. 지금은 소리뿐 아니라 빛 또한 공해예요.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렀네요.

 

앞에서 저런 말해서 밤에 책이 움직이는가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움직이는군요. 집 안에서 달각달각, 딸각딸각, 파닥파닥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답니다. 저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 동화 같은 거 보면 어두운 밤에 집 안 물건이 움직이기도 하잖아요. 이 책이 그런 환상이냐 하면 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제대로 현실도 있습니다(동화도 그렇군요). 책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니까요. 그리고 둘레 사람, 둘레에 있는 건 식구겠죠. 아내를 시작해 부모 형제 아이들. 이 이야기는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손자가 자기 아들한테 들려주는 거예요. 어쩐지 복잡하죠. 책 앞부분 읽을 때 집중이 잘 안 됐습니다. 그래서 좀 놓치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태어났는지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지 모르겠군요. 언젠가 태어나고 자라면 이 책을 보겠죠. 외증조할아버지처럼 환서를 모으고 장서인을 찍고 언젠가 라니나헤라 환상 도서관 사서가 되겠죠. 죽어서 환상 도서관 사서가 되는 거 멋질 듯합니다. 나, 도이 히로시는 외할아버지 후카이 요지로가 환서를 모으고 환상 도서관 사서가 되는 이야기를 해요. 요지로만 그렇게 된 게 아니예요. 외할머니 미키도 환상 도서관 사서가 되게 했습니다. 요지로가 그만큼 미키를 좋아한다는 거죠. 다시 태어나도 같은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사람도 있잖아요. 요지로도 그런 마음이었군요.

 

요지로가 아내 미키만 생각한 건 아닙니다. 아이와 손자에 증손자까지 생각했습니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앞날을 알면 사람은 그것을 바꾸고 싶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지로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아도 바꾸지 않았습니다(저는 알고 그랬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손자와 증손자를 위해서. 그러고 보니 언젠가 달에 갔다 온 아버지가 자신한테 사고가 일어날 것을 알고도 어딘가에 가는 걸 보았군요. 《궁극의 아이》(장용민)에 나오는 신가야도 좋아하는 사람과 딸을 위해 죽었네요. 이런 일이 진짜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래전에 무엇인가 하나라도 잘못됐다면 지금 자신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러면 역사는 벌써 씌어있고 우리는 그것에 따라 살아가는 것인가 할 수도 있겠군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은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기를 바라고 한 말일 거예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앞날을 아느냐면, 책과 책이 낳은 환서 때문이에요. 쓸데없는 책도 나오지만, 아직 쓰이지 않은 책도 나오거든요. 그것은 언젠가 쓰일 책이기도 합니다(일어날 일이군요). 히틀러는 그 책 때문에 죽을 위기를 많이 넘겼다고 했습니다. 이건 믿거나 말거나죠.

 

히로시가 자신이 초등학생 때 할아버지 요지로가 사고로 죽었다고 했을 때는 그렇구나 했는데, 그 이야기를 자세하게 할 때는 어쩐지 슬펐습니다. 그 뒤에 또 다른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것은 환상에 가깝지만 요지로한테 실제 있었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책 읽기 힘들어하던 미키한테 요지로가 책을 소리 내 읽어준 거예요. 미키는 난독증 같은 것으로 읽고 쓰기를 잘 못해요. 그래도 요지로가 편지 썼을 때는 가끔 답장을 썼습니다. 미키가 읽고 쓰기는 잘 못해도 그림은 잘 그려서 화가가 됐습니다. 요지로가 죽고 몇해가 흐르고 미키가 쓰러졌다 일어난 다음에는 책을 읽을 수 있게 됐어요. 요지로는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에요. 형은 전쟁에 나갔다 오고 좀 이상해지고 동생은 해군에 자원해서 죽었습니다. 요지로도 죽을 뻔했는데 살아돌아옵니다. 이런 이야기도 조금 있다구요. 볼 것이 많은 때지만 아직 책을 보는 사람은 많다는 말도 하더군요. 사람이 죽으면 책이 된다고 했네요. 여기에는 말장난이 많이 나옵니다. 요지로가 미키를 생각하면서 그 마음을 바로 나타내지 않고 발음이 비슷하거나 글자가 비슷한 말을 씁니다(그것은 일본말이에요). 우리말로 한다면 바로 사랑이라 하지 않고, ‘사탕’ ‘사과’ ‘사기’ 같은 말을 꺼낼까요. 생각나는 건 이것뿐이네요. 일본말로는 고이(恋)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이 책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을 작가가 여기에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 식구 그런 이야기뿐 아니라. 한 집안 이야기로 봐도 괜찮고 신기한 책 이야기로 봐도 괜찮겠네요.

 

 

 

희선

 

 

 

 

☆―

 

사람이 사람한테 줄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돈도 아니고 지혜도 아니고 시간이다.         (84쪽)

 

 

“어이, 히로봉, 책이란 말이지.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게 늘어나는 거야.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 자기 뇌를 살찌우겠다고 지식을 먹지만, 사실은 책 쪽이 사람 뇌를 먹는 거다. 아니 뇌만이 아니지. 혼까지 같이 먹어. 그렇긴 해도 나처럼 여기까지 오면 이제 읽는 걸 그만둘 수 없단 말이지. (……)”  (22쪽)

 

 

“히로봉,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벌 써 다 읽었단다……. 책은 참 재미있어. 책을 영영 못 읽었으면 세상이 절반뿐이었을거야. 아아, 저세상에 가기 전까지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까.”  (369쪽)

 

 

책이란 본래 끝없이 입이 무겁다. 누가 들어펴기 전까지는, 그리고 읽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입을 꽉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책은 나이 먹어가는 것이고, 또 그렇기에 목숨이 다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450~4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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