草枕 (小學館文庫 な 14-1) (文庫)
나쓰메 소세키 / 小學館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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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몇해 전에 《신의 카르테》(나쓰카와 소스케)를 읽고 그 안에 나온 나쓰메 소세키 소설 《풀베개》를 알았다. 거기에서 이 책을 즐겨읽은 사람은 내과의사 구리하라 이치토다. 책을 언제나 가지고 다니고 외우기도 했다. ‘신의 카르테’에서는 죽음과 삶을 이야기한다. 삶, 죽음은 많은 책에서 말하는 주제다. ‘신의 카르테’에는 삶보다 죽음이 더 많이 나온다. 죽는 사람이 나와서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어쩌면 그건 죽음보다 삶을 이야기하는 건지도. 병에 걸려도 그 병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있지만, 죽음을 맞는 이야기도 많다. 이치토가 일하는 병원에는 대학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 말기암 환자가 찾아온다. 이치토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잠시 아픔을 가시게 할 뿐이다. 환자를 보낼 때마다 이치토는 힘들어한다. 그래도 그곳에서 이치토를 만난 사람은 그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이치토는 아픈 사람 마음을 생각하는 의사다. 대학병원은 환자를 제대로 안 보고 나을 수 있는 사람만 받기도 한다. 환자를 제대로 보지 않는다는 건 진찰 시간이 짧다는 거다. 사람이 많이 가서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좀더 마음을 쓰면 좋을 텐데. 나는 병원에도 잘 가지 않는데 이런 말을 했다. 병원은 할 수 있는 한 안 가고 싶다.

 

이치토가 늘 가지고 다니고 즐겨읽는 모습을 보니, 나도 언젠가 《풀베개》를 봐야겠다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나보다. ‘신의 카르테’를 보고 ‘풀베개’를 읽어보겠다고 작가한테 말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나쓰카와 소스케는 여기에 해설을 썼다. (이것은 다른 이야긴데 나쓰카와 소스케가 쓴 《신의 카르테 3》 뒤에는 강상중이 글을 썼다. 그 책을 읽으려고 사두었는데 아직 못 보았다. 강상중은 이름만 알고 잘 모른다.) 나쓰카와 소스케는 소세키 소설에서 ‘풀베개’를 가장 먼저 보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말했다. 소세키 소설 이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 책을 본 뒤 그 말을 보고 ‘맞아, 맞아’ 했다. 나쓰카와 소스케 이름은 지은 거다(소세키도 본래 이름이 아니구나). 나는 나쓰메 소세키하고 관계있는 이름으로만 생각했는데 여러 곳에서 가져온 거였다. 나쓰메 소세키에서 한 글자 ‘나쓰夏’, 풀베개에서 한 글자 ‘소草’, 가와바타 야스나리에서 한 글자 ‘카와川’,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서 한 글자 ‘스케介’를 써서 나쓰카와 소스케(夏川草介)가 되었다. 이름을 이렇게도 짓다니. 소세키는 이름뿐 아니라 소설 제목에서도 가져왔다. 소설을 쓴 것도 이 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소세키 글을 보고 글을 쓴 사람은 나쓰카와 소스케만은 아니겠지.

 

 

산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정을 따르면 자신을 잃는다. 자기 뜻만 내세우면 답답하다. 어쨌든 사람 세상은 살기 힘들다.  (7쪽)

 

 

이 소설 시작하는 부분이다. 두번째 문단에서 이지(理智)는 지(智)만 쓰여 있다.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나온 책에는 이지라고 쓰여 있어서 나도 그렇게 썼다. 알고 써야 하는데. 십이국기 시리즈를 여러권 이어서 봤으니 ‘풀베개’도 읽어보면 괜찮지 않을까 했다. 어떻게든 끝까지 읽었지만, 아직 만날 때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 이름이 ‘요’라는 것도 조금 읽은 다음에 알았다. 앞에도 이름이 나오는데 그것을 이름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 무슨 뜻으로 생각하고 본 건지. 예전에 소세키가 만든 말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 이 책을 보면서 그렇구나 했다. 《풀베개》는 소세키 자신도 이것을 쓰기 전에 쓴 소설과 다르다고 했다고 한다. 이 소설 우리말로 만났다 해도 잘 몰랐을 것 같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본 다음에 쓸까 하다가 그만뒀다. 잘 모르면 모르는 대로 쓰려고. 앞에서 다른 말을 한 건 그래서다.

 

그림 그리는 요는 사람 사는 세상과 떨어진 시골 온천여관에 간다. 요는 그곳에서 그림은 그리지 않고 시만 쓴다(쓴다기보다 생각하는 건가). 그림보다 시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는 결혼했다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여관집 딸 나미를 만나고 이발소에도 가고 절에 가서 스님을 만나기도 한다. 예술을 말하고 서양 작가 이름도 많이 나온다. 요가 가장 많이 말하는 것은 요가 만나는 자연이다. 봄풍경이라고 해야겠다. 산벚꽃, 동백, 목련, 명자나무. 요는 명자나무가 되고 싶다고도 한다. 다른 것도 말했을 텐데 적어두지 않았다. 요는 온천여관에 가기 전에 꾀꼬리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는데. 요는 양갱을 보고 서양 먹을거리는 색이 좋은 게 없다고 한다. 양갱은 일본에서 만든 과자일까. 일본에서는 차와 단 과자를 함께 먹기도 한다. 양갱을 내놓을 때가 많고 물양갱이라는 것도 있다. 이런 말을 늘어놓다니. 책 제대로 본 거 맞아 할지도.

 

해설을 쓴 나쓰카와 소스케는 《풀베개》에서 봐야 하는 것은 말이라고 했다. 이런 말 안다고 내가 잘 보는 것도 아닌데. 책을 다 본 다음에 본 말이고. 나는 말을 어떻게 쓰면 좋은지 잘 모른다. 앞으로도 잘 모를 것 같은데. 요가 책을 보고 있으니 나미가 공부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요는 책상 위에 책이 있어서 아무데나 펼쳐서 본다고 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하는 법은 없다고. 이 말 봤을 때 이것은 이 책을 그렇게 보라는 건가 했다. 나는 그런 적 별로 없지만, 어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고 아무데나 펼쳐봐도 괜찮다. 혼자 시골 여관에 가서 누군가를 만나면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없다. 이 소설은 그림이나 시 같은 것인지도. 소세키 다른 소설을 본 다음에 이 책을 봤다면 더 나았을까, 일본말을 더 안 다음이었다면, 한번 더 읽어봤다면. 언젠가 다시 이 책을 볼 날이 올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때는 말을 잘 볼 수 있다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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