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나눠서 읽고 잘 못 썼지만, 여기에 잘못 쓰인 게 있어서. 이 말은 예전에도 했던 거다. 그때는 다른 책이었는데, 여기에 또 나올지 몰랐다.

 

 

 

 

거미줄로 들어가다

 

  무당거미의 이치 상   絡新婦の理 (1996)

  교고쿠 나쓰히코   김소연 옮김

  손안의책  2014년 08월 25일

 

 

 

 

 

 

 

 

 

 

 

교고쿠 나쓰히코 책 본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또 보게 되었다. 이것보다 앞에 것 《철서의 우리》도 세권이었는데, 이 《무당거미의 이치》도 세권이다. 얼마전에 ‘백귀야행’ 두권을 다 보았는데, 거기에서 본 사람이 여기에도 나와서 그렇구나 했다. 거기에서 제대로 끝나지 않은 이야기 뒤가 이것인가 싶기도 하다. 병풍 위에서 사람을 엿보는 요괴를 본 다다 마키, 결혼을 앞두고 웃는 연습을 하다 누군가한테 죽임 당한 여자는 여기에서 피해자로 나온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 남자는 가까이에 사는 열아홉살 처녀를 죽이고 말았다. 그 사람이 여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범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일을 하는 여자를 싫어하는 형사도 나온다. 아내 기모노에서 손이 나와서 집을 뛰쳐나간 스기우라 다카오 아내 스기우라 미에는 남편을 찾았다. ‘백귀야행’이 생각나서 이 책을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그것은 그거고 이것은 이것이다 해야 하는데, 아주 상관없지 않기도 하다. 다다 마키는 여기에서는 아주 짧게 나와서 별로 안 좋게 보일지 모르겠지만(허가 받지 않고 사람한테 방을 빌려주었다. 몸을 파는 사람한테), ‘백귀야행’을 봤다면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이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구나. 그것을 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백귀야행’은 교고쿠도 시리즈에서 크게 다루지 않은 사람 이야기다.

 

처음 시작은 여자가 누군가한테 죽임 당한 일이다(그전에 다른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이게 네번째였다. 무엇보다 죽은 여자 모습이 비슷했다. 두 눈이 뽑힌 거다. 그래서 경찰은 한 사람이 네 여자를 죽였다고 여겼다. 앞에 죽임 당한 세 여자는 품행방정(이 말을 그대로 쓰다니)한 열아홉살 처녀, 물장사하는 서른다섯살 여자, 근엄하고 성실한 서른살 여교사다. 네번째는 정통있는 포목점 안주인이다. 네 사람한테 공통점은 없다. 이것은 정말 연쇄살인일까. 처음 범인으로 보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보았다는 말을 형사 기바 슈타로가 듣는다. 기바 슈타로는 가와시마 신조를 알아서 검은 안경을 주웠는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때를 놓쳤다. 마음속으로는 그 사람이 여자를 죽이지 않았을 거다 생각한 건지도. 아직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다. 네 사람을 같은 사람이 죽인 건지, 다른 사건인지. 처음에 죽은 여자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세 여자는 연관 있을지도. 기바가 가와시마 사무실에 갔을 때 그곳에서 달아나는 가와시마를 만났다. 가와시마는 기바한테 아직 붙잡힐 수 없다 하고, ‘여자한테, 거미한테 물어봐’ 하는 말을 남겼다.

 

첫째 권에서는 세가지 이야기가 얽혀간다. 첫번째밖에 말하지 않았는데, 두번째는 성 베르나르 여학교에서 저주를 걸어서 사람이 죽은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학교 선생이 목이 졸려 죽임 당한다. 그 선생은 학생한테 나쁜 짓을 했다. 그 학생은 저주해서라도 선생을 죽이고 싶어했다. 이 학교 선생이었던 여자도 학생이 저주해서 죽었다고 한다. 앞에서 말한 세번째 여자다. 세번째는 이 학교를 지은 오리사쿠 집안 이야기다. 당주라고 할 수 있는 오리사쿠 유노스케가 죽었다. 이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선녀와 나무꾼이다. 뒤는 조금 다르지만 이 이야기는 그저 비슷한 것일 뿐일까. 은혜 갚은 학은. 부잣집은 언제나 재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난다. 이 집에서는 재산보다 누가 오리사쿠 가문을 이을까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이것도 다르지 않은 건가). 오리사쿠 집안에는 딸만 태어나서 데릴사위를 얻었다. 죽은 유노스케한테도 딸이 넷이었다. 첫째는 죽고, 둘째는 결혼했는데 남편이 별로였다. 셋째는 결혼하지 않겠다 하고, 넷째는 아직 중학생이다. 괜찮지 않다 해도 집안을 이을 사람은 둘째딸 남편밖에 없다. 그런데 오리사쿠 유노스케 장례식 다음날 그 사람도 죽임 당한다. 어쩐지 죽는 사람이 많다. 여자만 죽는 게 아니고 남자도 죽는다. 여자와 남자를 죽이는 것은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맨 앞에서 스기우라 미에가 사라진 남편 스기우라 다카오를 찾는다고 했는데, 미에는 탐정 에노키즈 레이지로한테 남편을 찾아달라고 한다. 남편과 헤어지기 위해서다. 미에는 여성 운동을 하는 듯하다. 사람들과 모여서 공부하는데 그곳에서 오리사쿠 집안 셋째딸 오리사쿠 아오이를 만났다. 남편 스기우라 다카오는 죽임 당한 술집 여자와 함께 있었다고 한다. 성 베르나르 여학교 이사장은 그곳에 퍼져 있는 이상한 일을 거두어 달라는 일을 에노키즈 레이지로한테 부탁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교고쿠도 추젠지 아키히코다. 정리하는 것도 복잡하구나. 추젠지 아키히코는 우연히 일어난 일처럼 보이는 일을 누군가 일이 그렇게 일어나게 이끌었다고 한다. 지금 관심을 갖게 한 사람은 스기우라 다카오다. 스기우라 다카오는 죽임 당한 여자와 있었고, 선생이 죽임 당한 학교에 있었다. 이 사람이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관계있을까. 그것보다 이용당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죽일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사람은 겉보기와 다를지도 모르겠다.

 

이 책 한권을 보고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제목에 무당거미가 들어가서 누군가 거미줄을 쳤다고 말한 건지도. 오리사쿠 집도 거미집처럼 말하기도 했다. 베를 짜는 기계 역직기를 만들어서 부자가 되었다고. 이름에도 짠다는 말이 들어간다. 일본말로 직녀를 오리히메라고 한다. 견우와 직녀도 일본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긴데. 저주로 사람을 죽인다는 일을 푸는 게 먼저구나. ‘검은 성모’ ‘거미의 종(거미를 따르는 하인일까)’ 사람은 저주로 죽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 걸 거다. 남은 두권을 보면 왜 그랬는지 알 수 있겠지. 여성 운동도 관계있을까.

 

 

 

 

☆―

 

마스다가 생각하기에 추젠지는 수수께끼를 해명하지 않는다. 추젠지는 수수께끼에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수수께끼 쪽을 일반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해체하는 것이다. 수수께끼가 수수께끼가 된 배경을 흔들어, 수수께끼 자체가 효과 없는 모습을 비슷하게 만들어 낼 뿐이다. 다시 말해서 현실을 일단 못 쓰게 만들어 버리고 속임수든 궤변이든, 수수께끼가 수수께끼가 될 수 없는 또 하나의 현실을 겉으로 드러내는 게 추젠지 방식이다.  (358쪽)

 

 

 

 

 

 

 

책을 다 읽었지만

 

  무당거미의 이치 중 · 하  

  絡新婦の理 (1996)

  교고쿠 나쓰히코   김소연 옮김

  손안의책  2014년 08월 25일

 

 

 

 

 

 

 

 

 

 

“당신은 무질서하게 행동하는 인자들에 일부러 자극을 주어서 사건을 산출하는 네트워크, 그 망상조직을 재생산하여 사건이 이뤄지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냈어요. 개개의 인자나 그 행동은 계획 자체에는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계획의 움직임──사건은 인과 작용에는 반응하지 않고, 그저 사건 자체를 되풀이해서 산출해 나갔지요. 당신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움직이는 것 자체가 시스템, 곧 체계를 규정하는 계획을 생각, 발동시키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저는.”

 

“──이 경우 주체와 객체, 능동과 수동이라는 이원으로 쌍을 이루는 인식론 도식은 효과가 없어지지요. 그렇게 되면 깨달음 없는 관찰자는 일을 잘못 볼 뿐입니다. 관찰자는 당사자가 파악한 현실을 객관성을 갖고 궤도를 고칠 수 있는 처지에는 더 이상 있지 않게 되고, 알 수 없는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관찰은 그저 현실을 숨길 뿐인 행위가 되지요. 움직여버린 계획은 그저 끊임없이 사건의 되풀이, 재생산을 되풀이합니다. 그래서──그리고 당신 바람은 이루어졌어요. 하지만 당신은 반면, 많은 것을 잃었지요.”  (상권, 21쪽)

 

 

마지막까지 읽었는데 제대로 안 건 반쯤 될까. 알 것 같기도 하지만 정리해서 말하기 어렵다. 교고쿠 나쓰히코 책은 거의 그런 식으로 본 듯하다. 예전에는 추리소설을 본 지 얼마 안 되었다는 말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알쏭달쏭한 느낌은 비슷하다. 무엇인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잘 몰라도 그런 것을 재미있게 느끼는 것인지. 두번보다 세번쯤 보면 반 이상 알 수 있을까. 게으른 나는 그렇게까지 읽지 못한다. 이번에는 예전 이야기가 나오기도 해서 더 복잡하다(다른 데도 앞에 이야기가 조금씩 나온다). 사람 관계가 복잡하다. 여기에서 떠오르는 말은 ‘세상은 넓은 듯하지만 좁기도 하다’다. 《우부메의 여름》 《망량의 상자》 《광골의 꿈》 《철서의 우리》에서 세 가지는 어렴풋이 생각나는데 ‘광골의 꿈’은……, 그때 나온 사람이 여기에 나온 것인가. 《백귀야행》에 나온 것도 조금 이해했다. 다는 아니고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여긴 사람(히라노 유키치)만 알았다. 아내 기모노에서 손이 나왔다고 여긴 사람(스기우라 다카오)도. 그리고 계획은 벌써 그때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무섭다. 작가가 처음부터 생각하고 쓴 것인지, 쓰면서 그렇게 엮은 것인지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시대 때문에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는 일본에서 내려오는 문화가 있고, 서구문화가 들어왔다. 가부장제가 서구문화라고만 할 수 없겠지만. 이것은 우리나라도 비슷했을 것 같지만, 아니 우리나라 조선은 유교 사회였기 때문에 일본보다 더 오랫동안 가부장 사회였다. 불교도 비슷했을까. 우리의 가부장 사회는 더 오래됐을 거다. 조선 초기에는 조금 달랐다고 하지만. 일본에는 모계 사회였던 때가 있고, 무사시대가 되면서 가부장 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서양문화 또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에 모계 사회 풍습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뒤 남성은 그것을 다르게 바꾸어버렸다. 여자 쪽에서 보면 보통인 게 남자 쪽에서 보면 그것은 매춘이었다. 여기 나온 이야기는 모계 사회와 가부장 사회가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그 싸움에 여러 사람이 휘말리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그 일을 꾸민 사람도 거기에 걸려든 건지도 모르겠다. 한 집안에서 일어난 핏줄 싸움이 있었고, 나중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한 싸움이 더해졌다고 해야겠다.

 

오리사쿠 집안은 모계 집안이다. 대대로 데릴사위를 들이고 첫째딸이 집안을 이었다. 딸이 낳은 아이라고 해야겠다. 그런데 한사람이 바깥에서 딸을 낳아와서 집을 잇게 했다. 아내가 가만히 있었을까. 자신의 핏줄(오리사쿠)을 끊기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희생당한 것은 여성이다. 딸이라고 해야겠다. 시대는 창부, 곧 몸 파는 여자를 차별하고 여성도 차별했다. 모계 사회 풍습은 아이 아버지가 누구든 상관없다. 어머니가 낳은 아이면 되었다. 마치 이것은 창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조금 다르다.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쟁이 끝난 뒤 그런 것을 끌어내린 게 바로 남성이다. 남성은 자기 핏줄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가(다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모계 집안에 반발한 사람이 나올 법도 하다. 사람들이 죽은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얽혀서 죽었다. 누군가는 저주했고, 다른 한쪽은 자기 어머니를 죽게 했다고 여겼다. 두쪽 다 진짜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눈알 살인마를 조종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주 아닌 건 아닌가.

 

여러 사람이 죽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일을 숨기고 자신이 있을 곳이 생기는 건가. 어떤 일은 바라지 않았을 텐데,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일은 멈추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죽고서야 멈추었다. 자신도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자기 손은 더럽히지 않고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는 사람은 정말 싫다.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여성 차별이 심한 때여서일까. 그 사람 마음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도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남자가 전쟁에 나가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단다. 듣고 보니 맞는 듯했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말이 맞을까. 사람에 따라 여성스러운 남자도 있고, 남성스러운 여자도 있다. 자신이 가진 성향을 죽이고 사회에서 말하는 것에 따라야 할까. 지금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그것 때문에 괴로운 사람 많았을 거다. 여성이 여성 인권을 위해 운동한다고 해도 가부장제에서 자유로울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은 듯하다. 어딘가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건 쉽지 않다. 자신한테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 없는지 늘 확인해보아야 한다. ‘백귀야행’을 보고 스기우라 다카오가 자기 아내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아내 또한 스기우라를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

 

종교 이야기도 꽤 나온다. 일본 민간 신앙도. 그런 것은 그런가보다 하면서 보았다. 사람이 책을 보고 안 것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의 차이도 알아야 하는구나. 성 베르나르 여학교는 기독교와는 관계없었다. 그렇게 보였는데 아무 상관이 없었다니. 그것 때문에 해를 입은 아이도 있다. 오리사쿠 집안 딸은 다 안됐다. 하나 아쉬운 것은 신라에서 왜로 건너간 하타씨가 중국 진시황 후손이라 한 거다(여기에는 하타씨를 쓸 수밖에 없었다). 《항설백물어》에도 그런 식으로 나왔는데. 그때는 작가도 그렇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그렇게 알고 있었던가 보다. 이 책이 나온 1996년에는 일본 역사책에 그런 말이 더 많았을지도(지금은 제대로 됐을까. 절에 있는 비석 글씨는 고쳤다고 한 것 같은데). 내가 이런 변명을 하다니. 나는 작가가 일부러 그렇게 쓴 건 아니다 생각한다. 잘못 쓰인 역사책을 봤기 때문일 거다. 나도 역사 잘 모르는데 이런 말을 했다. 쇼토쿠 태자의 총애를 받은 하타노 가와카쓰(진하승)는 신라에서 왜로 간 사람이다. 전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에서 본 말이 나오기도 한다. 누에 신사, 오사케 신사, 샘 그리고 우즈마사 광륭사에 있는 미륵반가사유상.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이 일본에도 나온다니, 이 부분을 일본 사람이 잘 봤으면 좋겠다.

 

 

 

희선

 

 

 

 

☆―

 

“넌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는 놈이야. 세상은 변태라고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것 없어!”  (하권, 104쪽)

 

 

“인간은 누구나 남성성과 여성성 둘 다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래요. 이건 균형 문제고, 그 가운데 어느 쪽 비율이 높은지, 어느 쪽이 겉으로 드러나는지, 거기에서 개인차가 생기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여성성이 큰 남성이 열등한 것도 아니고, 남자니까 남자다워야 한다는 것도 어리석은 차별이고 근거 없는 편견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어느 특정한 곳과 시간 문화속에서만 뜻을 가질 뿐이에요.”  (하권, 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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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16: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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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2 0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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