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북클럽
박현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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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은 우리한테 크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모임은 한달에 한번이고, 꼭 참석해야 한다는 것, 꼭,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책을 읽어오라는 것.  (15쪽)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 넷은 한해동안 수요 북클럽 프로그램에 참가해야 했다. 그것을 ‘수북형’이라고 하다니. 학교를 쉬라거나 봉사활동이 아닌 책 읽기 모임에 다니라고 하는 건 아주 좋은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하자고 한 사람은 누굴까. 책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이 겨우 넷밖에 없을까 하는. 아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를 생각하니 학교 틀에서 빠져 나가려고 한 아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어쩐지 넷은 적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대표라고 생각하자. 정영주는 1학년이 끝나갈 때쯤 2학년과 싸우고 다쳤다. 1학년에서는 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학년한테 지고 나서 자존심이 많이 상한 듯하다. 정영주는 왜 짱이 된 걸까. 김의영은 화가 나서 식판을 엎었다고 한다.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한테. 김의영은 자신이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잘 보이려고 꾸미고 다녔다. 예쁜 언니들 때문에 그런 콤플렉스가 생긴 건 아닐까. 전교 2등인 윤정환은 스트레스 때문에 2학기 기말시험 답안지에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축구 천재였던 박민석은 다치고 축구를 할 수 없게 되어 지금 학교로 옮겼는데, 그런 것을 비웃는 듯한 아이 배로 축구공을 날렸다.

 

넷 가운데서 가장 큰일은 싸움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모두 1학년이 끝날 때쯤 문제를 일으켜서 2학년이 되고도 그대로 학교에 다니는 조건으로 수요 책 읽기 모임 나가야 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좋은 벌이 아닌가 싶다. 벌도 아니구나. 하지만 아이들 처지에서 생각하면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책 별로 읽지도 않았는데 책을 읽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 해도 책은 한달에 한권 읽고 감상문 같은 건 쓰지 않아도 된다. 책을 읽고 해야 하는 건 마음에 드는 구절에 밑줄 쳐 오기다. 이 말을 그냥 썼는데, 나는 책에 밑줄 치는 거 안 좋아한다(교과서에 밑줄 치는 건 괜찮다). 카페 숨ː 주인장은 책에 밑줄 치는 거 좋아하는가보다. 네 아이 가운데는 책에 밑줄 치기 싫어하는 사람 없었다. 내가 그 안에 있었다면, 마음에 드는 구절 따로 쓰거나 쪽수를 썼겠다. 책을 어떻게 보건 다 자기 마음 아닌가. 책에 밑줄 치고 이것저것 적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깨끗하게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정영주는 카페 숨ː을 창고 같다고 했다. 카페는 크지 않고 한쪽 벽에는 책이 가득했다. 주인은 짧은 머리에 안경 낀 여자였다. 아이들 이름은 나오지만 주인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건가. 아이들이 주체기 때문이겠지. 거의 끝날 때쯤에야 주인 이야기가 조금 나온다. 자신이 가진 상처를 아이들한테 조금 보여준다. 상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 마음은 알기 어려울 거다. 이제는 영영 알 수 없는 사람 마음 때문에 주인은 책을 보았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알 수 없을 텐데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을지도.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없는 사람 마음을 알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달리 할 말은 없다. 그저 사는 게 힘들었던가보다 생각하는 것밖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일을 막을 수 있기를, 곁에 있을 때 서로 마음쓰기, 이것밖에 없다. 지나간 일을 잊어야 하는 건 아니다. 생각할 만큼 생각하고 슬퍼할 만큼 슬퍼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서 놔주기. 상대와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어떤 큰일을 겪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듯하다. 그때는 멈추어 있어야겠지.

 

책을 보는 건 자신을 보기 위해서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보기 위해서기도 한 듯하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겠다. 아이들은 책을 보고 나서 카페 숨ː에서 밑줄 그은 부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고 자기가 느낀 것을 말한다. 함께 책을 보는 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 한권은 그 책을 본 사람 수만큼 다른 이야기가 생겨난다고 한다. 네 아이는 서로 달라서 학교에서 만나도 친구가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카페 숨ː에서 만나서 친구가 되었다. 처음부터 마음이 맞고 이야기를 잘 한 건 아니다. 본래 그렇기는 하구나. 사람은 여러번 만나다보면 서로를 알게 되고 마음을 조금 알게 된다. 아니 모든 만남이 그런 건 아니다. 관계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건 왜일까. 이상하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어색한 사람 있지 않은가. 그건 자신 때문일까. 아니 어느 한쪽 때문은 아닌 듯하다. 네 아이는 처음에는 서로를 잘 몰랐지만 한달 한달 지나고 서로가 말하는 것을 듣고 저 아이한테 저런 면이 있구나 한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좋은 점을 잘 못 볼 때가 있는데, 그때는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고 말해주기도 한다. 그래, 아이들은 서로가 가진 좋은 점을 솔직하게 말한다.

 

책을 읽고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다고 무엇인가 많이 바뀌는 건 아니다. 겉은 바뀌지 않아도 마음이 바뀐다. 정영주는 싸움에서 늘 이기려고 하지 않고, 김의영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윤정환은 공부만 생각하지 않고, 박민석은 축구가 아닌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한다. 정리하고 나니 이렇게 짧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네 아이는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 넷 다 친구가 없었는데 이제는 친구가 생겼다. 책 모임은 한해만 하면 되는데 아이들은 앞으로도 만나기로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 해도 한달에 책 한권 보기 어렵지 않겠지. 현실에도 네 아이처럼 함께 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가 많으면 좋을 텐데. 아주 없는 건 아닐 거다. 나도 그런 거 해 본 적 없는데 이런 말을 했구나.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책 별로 못 봤다. 어쩌면 예전에도 책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말 들은 기억이 없다(국어 시간에 들은 건 봐야 하는 소설, 그런 거였다). 그때 내가 텔레비전을 못 봐서 그런가(지금은 아예 안 본다). 예전보다 지금 더 책을 보라고 하는 듯하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이야기할 때 주인은 별 말 안 한다. 나중에 아이들한테 메일을 보낸다. 전체 정리를 해주는 듯하다. 그것을 보면서 책을 보고 그런 식으로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했다. 나는 그런 거나 생각하다니. 아이들은 읽은 책 가운데서 내가 만난 것은 얼마 안 된다. 나는 책을 보고 이 사람도 나와 비슷하구나, 하고 느낀 적 별로 없다. 아주 조금 비슷한 것은 있지만 똑같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이것은 내가 몸소 느낀 게 얼마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책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알게 해주기도 하니 그것을 잘 느껴야겠다. 친구와 함께 같은 책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으니 책을 친구로 만나야겠다.

 

 

 

희선

 

 

 

 

☆―

 

책이 진짜 완성되는 순간은 어쩌면 누군가 그 책을 읽을 때가 아닐까,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낱말과 문장은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어쩌면 이야기도 서로 다르게 다가가겠지. 나와 박민석 책 읽기가 서로 다른 것처럼. 그러니까 책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몇천몇만 가지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고, 그때마다 새롭게 완성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읽음으로 새로운 이야기들을 저마다 세계속에 만들어가는 것이다.  (153쪽)

 

 

책 읽기의 즐거움은 그것이 별 쓸모가 없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그 자체의 즐거움에 빠져 책을 읽는 게 진짜 매력입니다.  (158쪽)

 

 

우리는 모두 외롭다. 어떤 이는 외로움을 외면할 것이고, 어떤 이는 외로움을 다른 방식으로 이겨낼 것이다. 주인장은 우리한테 외로움에 대처하는 지혜로운 방법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책은 늘 우리 곁에 있고, 우리를 늘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줄 테니까. 그게 우리한테 먹혔던 것은 주인장도 사무친 외로움을 책으로 달래고 다시 일어선 사람이기 때문이다.  (297쪽)

 

 

우리는 우리를 패배시킨 적이 누군지 이야기 나누었다. 사연은 달라도, 결국 우린 서로 비슷하다. 우리는 스스로를 매우 별볼일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기지 못하면 지는 것이라 생각했던 정영주도, 공부를 못하면 끝장이라 믿었던 윤정환도, 뚱뚱하고 못생겼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고 겁을 먹었던 김의영도 마찬가지였다. 그 생각이 우리를 망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에게 진심을 담아 말해주었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놈이라고.  (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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