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4 : 시오리코 씨와 두 얼굴
미카미 엔
만화 마징가 Z에는 다르게 생긴 얼굴 반반이 얼굴 하나인 사람이 나온다. 반은 여자, 반은 남자다. 이름이 아수라 백작이던가. 사실 어렸을 때 이 만화를 본 것 같기는 한데 어땠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두 얼굴 하니 생각이 났을 뿐이다. 이 책에 나온 것과는 조금 다른 거지만. 아수라 백작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몇 해 전에 알았다. 여자와 남자를 반씩 합쳐서 만든 괴물이었다. 괴물이라고 하다니. 누가 그렇게 하기로 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살아나면 좋을까. 만화니까 깨끗하게 붙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런 일이 있다면 좀 끔찍해 보일 것 같다. 어떤 만화에서는 두 사람이 다쳤는데 한 사람은 몸이 다 죽고 한 사람은 뇌가 죽어서 몸을 살릴 수 없는 쪽 뇌를 뇌가 죽은 쪽에 이식했다. 뇌가 모두 죽은 건 아니고 반이 죽었던가. 지금 뇌이식은 할 수 없다. 어쩌면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어떤 박사 뇌만 살려둔 것도 있었다. 몸은 없고 뇌만 살아있다니, 그것을 사람이라 할 수 있을지. 만화여서 그런 것을 생각하고 그릴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만화만 그런 건 아니다. 소설도 그렇게 쓸 수 있다. 에도가와 란포 소설은 어떨까. 아쉽게도 에도가와 란포 소설은 아직 한권도 못 보았다. 지금 생각하니 여기에 나온 책 가운데서 본 게 하나도 없다. 나쓰메 소세키 책은 조금 보았다.
이번에는 어떻게 시작할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게 있는데 그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책을 봐온 시간이다. 책을 꾸준히 봐온 건 십년이 조금 넘었다(몇 권이나 봤는지 말 안 하는 게 낫겠다.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아는 게 별로 없다. 어떤 책을 봤느냐에 따라 다를 텐데. 오래전부터 소설(동화)을 보았고 지금도 소설을 더 본다. 소설을 오래 봤으니 소설을 잘 알아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 내가 제대로 못 봐서 그런 거겠지. 책을 어떻게 보면 잘 보는 걸까. 한번 보고 재미있다 재미없다 생각할 게 아니고 여러가지를 생각해야 할까. 여러가지는 어떤 거. 시오리코는 어떻게 그렇게 책을 잘 알까. 시오리코 엄마 지에코가 가르쳐준 거라고 하는데, 지에코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시오리코, 지에코가 아는 건 책을 읽기만 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걸 알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무엇인가 하나를 잘 아는 건 대단한 일이다. 나는 잘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지에코는 십년 전에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집을 나갔다. 지에코가 시오리코한테 책을 가르쳐준 건 십년 전까지라는 거다. 십년 동안은 혼자 여러가지를 알아보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도 참 대단하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나는 십년 동안 뭘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책은 내용도 다 잊어버렸으니까. 혹시 시오리코는 한번 안 건 거의 잊어버리지 않는 건 아닐까. 시오리코는 제목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책 상태와 판형 책 두께만 보고 그게 무슨 책인지 알아맞혔다. 나중에 지에코는 책도 안 보고 말만 듣고 알아맞히고 그것과 비슷한 게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구나.
지난번에 시오리코와 아야카가 솔직하게 말할 때가 올까 했는데 아야카는 시오리코한테 시오리코가 찾는 《크라크라 일기》를 건네주었다(지에코가 남겨준 책). 거기에 적힌 메일주소로 메일을 보냈지만 연락은 없었다. 아야카는 지에코가 자기한테는 왜 책을 남겨주지 않았을까 아쉬워했다. 지에코는 아야카한테도 책을 남겨두었다. 그것은 시오리코가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알게 된 건 지에코가 집에 왔을 때다. 아야카는 자신이 책을 잘 읽지 않아서 엄마가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나 했다. 지에코는 평범한 엄마는 아니다. 십년 전에 아야카가 어리지 않았다면 지에코는 시오리코를 데리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시오리코는 지에코를 덜 원망했을까. 아야카는 십년 만에 엄마를 만나고 자기한테도 남겨준 책이 있다는 걸 알고 기뻐했다. 그런데 그런 마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야카는 아야카 나름대로 생각했다. 지에코가 쭉 연락하지 않고 얼굴도 보여주지 않으면 자신은 엄마 생각을 덜 하게 돼서 다시는 집에 오지 못하게 할거라고. 지에코가 더 늦게 나타났다면 아야카는 지에코를 만나지 않았을 거다. 아야카는 지에코한테 이제 엄마가 없어도 살 수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십년 만에 잠깐 엄마를 만나고 그렇게 말하다니, 아야카가 꽤 어른스러워 보였다. 엄마가 없어서 빨리 어른스러워진 건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잠깐 에도가와 란포를 말했는데 이번에는 에도가와 란포 특집 같은 느낌이다. 에도가와 란포 진짜 이름은 히라이 타로다. 에드거 앨런 포에서 가져온 이름이 에도가와 란포다. 란포가 추리소설을 썼는데 거기에는 환상도 있다고 한다. 란포를 아주 좋아해서 책과 잡지를 모아둔 집에 시오리코와 다이스케가 찾아간다. 처음에 일을 부탁하려고 한 사람은 시노카와 지에코였다. 문제를 풀어주면 그곳에 있는 책을 모두 비블리아 고성당에 팔겠다고 했다. 문제란 그 집에 있는 금고를 여는 거다. 금고 안에는 에도가와 란포와 관계있는 물건이 있다고 했다. 본래 그 집은 별장으로 에도가와 란포 책을 놔두려고 산 거였다. 집주인은 가야마 아키라로 교육과 관계있는 일을 했고 한해 전에 죽었다. 그 집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애인 기시로 게이코였다. 책 속에 나온 때는 2011년이다. 2011년에 일본에는 큰지진이 일어나고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있었다. 게이코는 그런 일이 일어나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 가야마가 죽고 한해가 지나서 금고를 열려고 한 까닭이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것하고는 다르고 사람이 죽으면 아무 소용없는데 왜 작은 일에 마음을 쓰고 우울해하나, 그런 생각이다. 기시로 게이코가 지에코가 아닌 시오리코한테 일을 맡기기로 한 건 시오리코가 에도가와 란포 책 제목을 맞혀서다.
금고를 열기 위해서는 열쇠가 있어야 했다. 다음에는 암호문자. 열쇠를 찾으면서 알게 되는 사람은 가야마 아키라다.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집과 바깥에서 그리고 만나는 사람에 따라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줄 거다. 그래도 아주 다르게 보지 않는다. 집안 사람이 말하는 가야마는 엄한 사람으로 에도가와 란포 소설은 읽지 않았다. 기시로 게이코가 말하는 가야마는 책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밝고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가야마 아키라한테는 아들과 딸이 있었다. 아들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준 에도가와 란포 소설 ‘소년탐정단’을 즐겨보았다. 딸도 그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딸 나오미는 아버지를 차가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시오리코가 나오미한테 아버지가 딸을 생각했다는 걸 알게 해준다. 가야마 서재 소파에 장치를 해서 ‘소년탐정단’ 책을 놔둔 건 나오미를 위해서였다고. 가야마는 그런 장난을 즐겼다. 에도가와 란포 소설에는 《스무개 얼굴을 가진 수상한 사람(괴도 20가면)》이 있다. 가야마는 소설에 나오는 사람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걸 즐긴 거다. 얼마나 소설을 좋아하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일본에는 만화에 나오는 사람과 똑같이 꾸미는(코스프레) 일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이것과는 좀 다를까. 가야마가 말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했다. 시오리코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오미는 영영 아버지 마음을 몰랐을 거다. 가야마처럼 자기 마음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사람이 한사람 더 있었다. 나오미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히토리책방 주인 이노우에다. 이 이노우에는 지에코 때문에 시오리코까지 싫어했는데 이번 일로 지에코와 시오리코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열쇠를 찾은 시오리코와 다이스케 앞에 나타난 지에코는 자신이라면 반나절 만에 암호문자를 풀 수 있다고 했다. 시오리코한테 빨리 금고를 열게 하려는 것인지, 정말 자신이 금고를 열어서 그 안에 있는 걸 보려는 건지. 결국 시오리코가 암호문자를 알아내서 금고를 열었다. 그걸로 끝났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또 다른 게 밝혀진다. 가야마 아키라는 애인 기시로 게이코를 위해 금고를 남겨둔 거였다. 아내와 자식한테는 차가운 얼굴을 보여주고 애인한테는 밝고 장난을 좋아하는 얼굴을 보여주다니, 꼭 그래야 했을까. 그렇게 한 건 정말 체면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있었겠지만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즐긴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별난 사람이 많으니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을지도. 지에코도 별난 사람이다. 책을 찾으려고 집을 나갔다고 하니 말이다. 어떤 책을 찾으려고 하는 걸까. 그것도 어떻게 보면 꿈일지도 모르겠다. 식구들한테 아무 말도 없이 나간 게 문제구나. 아니 남편, 시오리코 아버지하고는 연락을 했다고 한다. 엄마가 왜 집을 나갔는지 아이들한테 말해주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지에코는 시오리코한테 자신과 함께 가자고 한다. 시오리코가 자신과 비슷해서 같이 갈거라 생각했을까. 시오리코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관심을 갖고 볼 만한 건 시오리코와 다이스케다. 드디어 다이스케가 조금 밀어붙였다. 데이트를 하자고.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서 조금씩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는 건 재미있다. 시오리코와 다이스케가 그렇다. 아직 시오리코는 다이스케한테만 편하게 말하지만(책 이야기는 누구한테든 잘한다). 아니 지금까지 하지 않던 일을 하게 되었다. 책에 얽힌 수수께끼를 푸는 거다. 다이스케는 체질 때문에 책을 거의 읽지 못했는데, 지금은 조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에도가와 란포 단편 세편을 한번에 읽었다. 다음권에서는 좀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나중에 이 책에 나온 책을 본다면 이책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이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희선



일본에서 4권이 나왔을 때 어느 책방 한곳에 이런 공간을 만들어두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