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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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잊고 있던 일이 떠올랐다. 책을 읽기만 하고 아무것도 쓰지 않다가 어떤 책을 보고 조금 쓰면 어떨까 생각한 일이. 그때 본 책은 박범신의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다. 그 책이 나온 해에 본 것은 아니고 몇해 지난 뒤에 보았다. 책을 보고 무엇인가 쓴 것은 학교 다닐 때뿐이다. 그것도 몇번 안 했다. 이것을 글이라고 하기 어렵겠지만, 학교 다닐 때는 달리 글이라는 것을 쓰지 않고 써야 하는 것만 썼다. 그래도 일기와 편지는 썼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아무것도 안 쓴 게 아니어서 다행이구나. 그때는 책도 거의 안 읽었는데. 책을 읽고 쓰기 어려운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를 보고 쓰려고 한 것은 처음이어서 더 몰랐다. 단편집이어서 단편 하나하나에 대해 짧게 적었다. 그래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 어렵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적는 버릇을 들였다면 지금 좀더 잘 쓸지도 모르지만 한동안 책만 읽었다.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속에 있는 단편 <내 기타는 죄가 많아요, 어머니>에는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적혀 있다. 그 말은 “가짜에 감동 받는다.”다. 이 말 보니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박범신 소설을 많이 읽었다고 하기 어렵다(이름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나마스테》 《은교》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다. 정말 몇권 안 된다. 책을 보면 한 작가 책을 찾아서 보기도 하는데 박범신 소설은 그러지 않았구나. 어쩌면 한두권 더 봤을지도 모르는데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이 책 《소소한 풍경》을 보기 전에 인터넷 책방에서 책소개를 조금 보았다.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책을 잘 볼 수 있을까 걱정했다. ㄱ, ㄴ, ㄷ이라는 세 사람이 나온다고 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그런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고. 내가 생각했던 것은 소설에 나온 것과는 다르지만. 여기에 나온 것은 세 사람이 덩어리가 되는 거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세 사람이 아닌 두 사람, 두 사람인데 이것이 더 이상한가. 보통 삼각관계하고는 다른데. 사실 나는 삼각관계 안 좋아한다. 그런 것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안 좋다. 그런 것은 거의 안 보기도 한다(그러고 보니 ‘은교’도 삼각관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구나. 아니 그것도 좀 다른 삼각관계가 아닐까. 어쩌면 둘보다는 셋일 때 긴장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싫어하는 건 그것일지도). 여기에 나온 것은 삼각관계하고는 별로 상관없다. 세 사람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책을 보고 나도 이 소설처럼 어떤 낱말을 쓰고 쓸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잘 못 쓸 것 같아서. 해설 맨 앞에는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그 말은 ‘시라고 해야 할까,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다. ‘소소한 풍경’은 소설이지만 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ㄱ은 대학교 때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 보셨어요.” 한다. 선생님은 그 말에 관심을 가지고 ㄱ이 사는 소소(昭昭)에 찾아간다. 소소 시가 정말 있던가(실제로는 없는 곳이다). 선생님은 소설을 쓰는 작가다. 책을 다 보면(다 안 봐도) 이 선생님이 작가의 분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선생님뿐 아니라 ㄱ도 조금 그런 것 같다. ㄱ도 예전에 글을 쓰려고 했고, <우물>이라는 소설도 썼다(이 우물을 봤을 때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가 생각났다). 선생님은 ㄱ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쓰고 싶어한다. 이 말은 ㄱ이 했다. 소설은 ㄱ이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고 선생님이 쓴 글이기도 하다. 책을 보면 이런 것은 누구나 알겠구나. 선생님이 플롯이 없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한 말을 하려다가 이런 말을 늘어놓았다.

 

플롯을 마음 쓰지 않고 글을 쓰려고 한 사람은 박범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설이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플롯이 아주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ㄱ, ㄴ, ㄷ 저마다의 이야기는 조금 알 수 있으니까. 세 사람은 다 른 사람 이야기를 모르겠지만. 아니 나중에 알게 되는구나. 세 사람한테는 저마다 아픔이 있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슬픔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아닌가 싶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은 남은 사람한테 큰 상처가 된다. ㄱ 오빠, 어머니, 아버지는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ㄱ은 오빠가 죽은 게 자기 탓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ㄱ은 식구들의 죽음에서 달아나기 위해 대학교 때 만난 남자1과 결혼하지만 헤어진다. ㄴ 아버지와 형은 1980년 광주에서 죽임 당했다. 어머니는 실어증과 치매가 와서 요양소에 들어갔다. 그 뒤 ㄴ은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ㄷ은 조선족 처녀라고 했지만, 실제는 북한에서 빠져나온 거였다. 그때 아버지가 죽었다. 어머니는 ㄷ과 어머니를 짓밟은 남자와 살았다. ㄷ은 거기에 돈을 부쳤다. ㄱ, ㄴ, ㄷ은 식구의 죽음이 자신 탓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말은 하지 않지만 죽고 싶어하는 것 같다. 가장 죽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은 ㄴ인가. ㄴ이 파는 우물을 ㄷ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것 같다고 했다. 세 사람이 덩어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에 가까웠고 언젠가 끝날 사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큰눈도 한몫했다). 그것도 사랑일까, 일지도.

 

선인장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 ㄱ은 선인장을 길렀다. 선인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시라고 한다. 이런 말도 했구나, 아픈 기억은 가시가 된다는. 세 사람은 다 가시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소설에 나온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한테 있는 것이겠다. 그게 누군가를 찌르지 않게 해야겠지. 언젠가 끝날 사이라는 말을 생각했을 때, 인터넷 안의 사람관계가 떠올랐다. 나는 끝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언제나 내 마음과는 다르다. 아니 어떤 관계든 언젠가는 끝이 찾아오겠지, 그게 빠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는 것뿐일지도. ㄴ이 일한 곳에서 일어난 사고(건물 기계실에서 냉매가스로 대학생이 질식해 죽은 사고, 철강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쇳물통에 빠져 죽은 사고)는 실제 있었던 일일 것이다(1980년 광주 일도 그렇구나). 그런 일을 왜 집어넣었을까 잠깐 생각했다. 잊지 않게 하려고,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한사람과 한사람의 관계는 숨막힐까. ㄱ 아버지는 밀짚모자에 숨구멍을 뚫었다고 했다. ㄴ은 죽었지만, ㄱ과 ㄷ은 살아간다. 어쩌면 ㄴ이 두 사람의 죽음까지 가지고 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살라고. ㄱ, ㄴ, ㄷ의 모습은 풍경이다. 풍경은 그저 바라보면 된다. 책을 다 보았을 때는 꿈을 꾼 것 같기도 했다. 꿈처럼 이야기는 여기저기 자유롭게 옮겨간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만나도 괜찮을 것 같다.

 

 

 

*더하는 말

 

글을 쓰는 사람은 앞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게 자기 일일지 다른 사람 일이지 아니면 세상 일일지. 책을 많이 보다보면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렴풋이 아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을 생각했을 때 그 사람 소식을 들을 때나, 생각한 작은 일이 일어날 때도 있지 않은가. 이것은 조금 다른가. 그래도 누구나 그런 경험 있을 것 같다. 나도 ‘우물’을 한순간 ‘우울’이라 보기도 했다.

 

 

 

 

리 없이 쌓인 눈은 세상 모든

리를 덮었다

겨울 아침 멈추어버린

경은

건하다

 

 

 

소한 나날이

리 없이 흘러가는

편에선

랑이

고한다

 

 

 

희선

 

 

 

 

☆―

 

“아침노을은 오전 내내 이어지지 않고

 폭우도 하루 종일 이어지지 않습니다.

 내 사랑도 예고 없이 당신을 떠나는 것 같지만

 언제나 그런 식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모든 것은 죽게 마련입니다.

 저녁노을은 저녁 내내 이어지지 않고

 마음만이 저 먹구름을 날려 보낼 수 있습니다.”

 

 - 비틀즈, All Things Must Pass, 1970  (125쪽)

(책 속에는 비틀스라고 적혀 있지만 비틀즈라고 하고 싶다)

 

 

사랑이라는 말이 가진 폭력성을 나는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갖고 싶은 욕망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천연스럽게 상대편을 장난감처럼 자주 다루면서, 그것에 대한 아무런 깊은 성찰도 갖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부서지지 않는 장난감은 본 적이 없어요.

 

그러므로 사랑은, 두려워요.  (179쪽)

 

 

“…… 내 귓속에 곰팡이가 살아.”

.

.

.

 

“너를 만나고 나서야 깨달았구나. 얘들이, 내 몸속 가시라는 것. 소설이라는 게, 사람들 몸뚱어리 속에 박인 가시들에 대한 세밀한 보고서와 진배없다는 것.”  (316~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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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0 0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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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1 0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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