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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오월까지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 우리나라에 많이 나왔군요. 그 안에서는 아니고 올해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 책을 두권 보았습니다. 《비정근》 《질풍론도》예요(《한여름의 방정식》은 곧 볼 겁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야베 미유키와 함께 알게 된 작가입니다. 글이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한데 같이 알다니 신기하군요. 아니 저는 두 사람이 쓰는 글 아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책은 나온 지 얼마 안 된 게 우리말로 나오기도 하고 좀 오래전 책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번에 본 《몽환화》는 우리나라에 빨리 나온 편이군요. 일본과 많이 차이 나지 않게 나온 책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습니다. 더 빨리 나온 것도 있을지 몰라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찾아보니 ‘질풍론도’는 일본과 한달 조금 넘게 차이 나더군요. 처음부터 문고로 나와서 그런 건지). 그런데 제가 히가시노 게이고 책 가운에서 무엇을 가장 처음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이런 말을 하는데 몇 해 전에는 추리소설을 거의 안 봤거든요.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으면서 잘 몰랐던 것 같아요(상도 받은 건데 그랬습니다). 제가 잘 모르고 본 게 이것만은 아니군요(이 말 자주 하는군요). 추리소설을 본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누가 사람을 죽였을까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사람이 맞으면 어쩐지 기분 좋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거기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여전히 생각하기도 하고, 왜 죽였을까 알고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책을 보다보니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더군요. 여전히 제대로 못 보지만 이제는 여러가지를 보려고 합니다.
책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나팔꽃이 나온 것을 보니 오래전에 본 《충현이의 나팔꽃 일기》(이충현)가 생각나더군요. 나팔꽃 씨 심어서 싹틔우는 거 본 적 있습니까. 저는 없습니다. 콩을 심어본 적은 있지만. 초등학교 다닐 때는 관찰일기라는 것을 쓰기도 하잖아요. 지금은 그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군요. 그 책이 생각나서 한번 볼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만두었습니다. 다행하게도 그때 제가 그 책을 보고 써둔 게 있어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참 짧더군요. 글 쓰는 게 늘지 않아 가끔 우울해지기도 하는데 오래전에 쓴 것을 보고, 그때보다는 조금 나아졌다고 느꼈습니다. 그때보다 길게 쓰는 것을 늘었다고 말하기 어렵겠지만. 글쓰기도 재능이 있는 걸까요. 누군가는 시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쓰지만, 소설은 애쓰면 쓸 수 있다고 하더군요. 맞는 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요. 자기가 쓰고 싶은 걸 솔직하게 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 쓰고 기뻐하는 걸로 끝나면 좋겠지만, 사람은 남한테 인정받고 싶어하기도 하죠. 저도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이 마음을 넘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팔꽃에서 이상한 곳으로 흘렀습니다.
무엇이든 하면 보통사람보다 잘하는 사람 있잖아요. 그런 사람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더군요. 그때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나 찾아서 잘하려고 애쓰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쉽지 않은 일이죠. 하다보면 언젠가 벽에 부딪치니까요. 그것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벽은 뛰어넘는 게 아니고 옆으로 지나가는 거다 하는 말도 있더군요. 그런데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좋아할까요, 그 사람한테는 아무 걱정이 없을까요. 처음 할 때는 자신이 그것을 잘해서 좋아했지만, 둘레 사람들 기대 때문에 그것을 못하게 되기도 하더군요. 마음의 문제 때문에 수영을 못하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키야마 리노예요. 리노의 고종사촌 도리이 나오토는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무엇이든 보통사람보다 잘했는데, 나오토는 밴드에서 키보드를 치고 음악을 하려고 했습니다. 얼마 뒤에는 리노 할아버지가 누군가한테 죽임을 당합니다. 경찰은 그냥 돈 때문에 죽임 당한 것으로 보았지만 리노는 할아버지가 꽃을 피운 ‘이름 모르는 노란 꽃’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키야마 리노와 함께 노란 꽃, 그러니까 환상의 꽃 노란 나팔꽃을 알아보는 사람은 가모 소타예요. 리노가 먼저 만난 것은 소타 형인 요스케지만요. 소타는 형하고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형은 아버지처럼 경찰이 되어 관료가 되었는데 리노한테는 식물학과 관계있는 일을 한다고 했거든요. 소타는 형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알기 위해 리노와 함께 움직입니다.
이번에는 책 내용을 거의 쓰지 않으면 어떨까 하고 두번째 문단을 쓰고 생각했는데(다른 것은 생각나지도 않는데 이런 생각을), 세번째 문단에서 바로 쓰고 말았군요. 그것도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소타 이야기를 더 한다면, 소타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두번째 부인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안 좋았던 것은 아니고, 아버지와 나이 차이 많은 형이 소타한테 숨기는 게 있어서 소타는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중학생 때 만난 여자친구하고도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었거든요. 그때 저는 그 여자아이 집안에 큰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는가 했습니다. 소타는 집에서 멀어지려고 대학을 도쿄가 아닌 오사카에서 다녔습니다. 소타가 공부한 것은 원자력공학이에요. 2011년 일본에서 일어난 큰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때문에 이렇게 설정했겠지요. 지금 말하면 잘 모르겠지만, 노란 나팔꽃과 원자력발전소 비슷한 거군요. 주요인물에 한사람 더 있습니다. 리노 할아버지 사건을 맡은 형사 하야세 료스케예요. 하야세는 죽임 당한 리노 할아버지한테 신세를 졌습니다. 정확하게는 아들 유타가 도움을 받았군요. 하야세는 바람을 피워서 부인과 아들하고 따로 살고 있었습니다. 리노 할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잡아서 은혜도 갚고 유타한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어떤 일을 모르게 하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좋은 일일 수도 있고 안 좋은 일일 수도 있겠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어떤 일에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 세상이 끝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타는 진로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노란 나팔꽃 일 때문에 원자력공학을 앞으로도 하기로 합니다. 돈은 많이 못 벌어도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전에는 원자력공학이 앞날이 있어 보였지만 큰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뒤에는 아주 안 좋아졌습니다. 그게 없어진다고 해도 뒤처리를 잘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리노도 소타와 비슷했습니다. 수영을 하지 않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리노는 사촌 나오토가 리노가 가진 재능을 부러워했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고, 다시 수영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자신이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더 잘 볼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것을 더 잘하기 위해 안 좋은 방법을 쓰는 건 안 좋은 듯합니다. 그런 것은 언젠가 바닥이 드러나지 않을지. 그러고 보니 무엇인가를 잘하기 위해 악마와 계약하는 그런 이야기도 있군요. 어쩌면 악마가 약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서는 원자력발전소 이야기를 했지만, 이것을 다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일, 일본과 중국하고 일도.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는 일도 일본 사람이 물려받아야 하는 빚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보다 역사를 사실과 다르게 비트는 사람들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리는군요(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도). 저는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역사를 생각했군요. 일본사람도 이 책을 보고 여러가지를 생각하면 좋을 텐데요.
*미처하지못한말
어떤 게 생각났을 때 썼다면 좀더 나았을 텐데 그러지 않고 나중에 썼더니 이상하게 됐습니다. 하지 않아야 하는 말은 한 것 같고, 해야 할 말은 안 한 것 같습니다. 소타 집안에는 삼대째 이어져온 일이 있습니다. 그런 일도 장남만이 물려받는군요. 꼭 장남한테만 잇게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형은 어렸을 때 그런 일을 알고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소타 엄마가 아버지 두번째 부인이어도 별일 없었다고 했는데, 어쩌면 소타는 그것 때문에 아버지와 형한테 따돌림 받는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소타를 위해 그 일을 말하지 않기로 했지만 소타는 그것을 섭섭하게 여겼습니다. 그런 것은 말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일이 반대로 그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무엇인가를 잘하는 사람을 응원하는 게 좋을까요, 그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게 좋을까요. 이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응원해주어서 그 힘으로 잘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관심을 부담으로 여겨서 잘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사람은 참 어렵습니다. 그냥 그 사람이 잘하는 것이 있든 없든 그 사람을 대하면 좋겠군요. 그리고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다’ 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앞에서는 잘하는 게 있는 사람을 말하고 뒤에서는 다르게 말했군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좋은 걸까요, 안 좋은 걸까요. 이것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없으면 만든다 하는 말이 좋은 것 같지만, 자연을 거스르는 일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나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었을 때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좀더 조심스러워지지 않을까요. 늘 조심하면 아무것도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파란 장미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저는 씨 없는 수박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을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지만. 갑자기 씨 없는 수박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모든 생물은 자손을 남기려는 본능이 있잖아요. 씨 없는 수박은 자손을 남길 수 없어서 슬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수박은 어떻게 만드는 건지. 그것도 씨에서 나오는 것일 텐데. 씨 없는 수박 이야기를 쓰면 재미있을 것 같군요. 잠깐 생각했는데 수박을 키우는 곳에는 수박만 있어서 다른 식물한테 말하기 어려워서 이야기가 안 될 듯하더군요. 수박 둘레에 무엇인가 있다고 한다면, 수박은 둘레에 있는 식물한테 자신한테 씨가 없는 것을 자랑합니다. 얼마 뒤 씨 없는 수박은 자신이 자손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슬퍼하다가 어느 순간 씨를 하나 갖게 됩니다, 하면 어떨까 했습니다. 조개가 아픔을 참고 진주를 만드는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그냥 잠깐 해본 생각입니다.
희선
☆―
“답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결론을 빨리 내려고 하지 마라. 어떤 길을 가든 나는 네 편이란다. 언제나 응원할게.” (38쪽)
“사람은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어울리기가 힘들어. 그런데 꽃은 거짓말을 안 하지. 마음을 담아 기르면 꼭 거기에 응해주거든.” (43쪽)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고 하고 싶은 공부를 아직 못 찾은 것뿐이다.”
“그럴까요. 저한테도 그런 게 있을까요.”
“없는 사람이 없단다. 다만 찾아내는 게 좀 어려울 뿐.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단다.” (46쪽)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소타가 말했다. “그냥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420쪽)

메꽃(나팔꽃은 메꽃과 한해살이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