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1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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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김빠질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쓴 제목과 같다. 그 말밖에는 못하겠다. 엄청난 비로 불어난 물속에 잠기는 것은 진짜 범인이라고 해야겠다. 그렇다고 범인이 죽는 건 아니고 여기에서 일어난 일이 묻힌다는 뜻이다. ‘왜’ 사람을 죽인 것인지는 도조 겐야가 말한 것이 맞는 듯하다. 사실 이 ‘왜’도 알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것은 도조 겐야가 괴상사 편집자 소후에 시노가 말한 것과 다르게 명탐정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명탐정이든 아니든 쉽게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명탐정이 아니다’는 말을 했느냐 하면, 이 말을 도조 겐야가 했기 때문이다. 잠시 도조 겐야가 자기 아버지를 떠올렸는데 도조 겐야 아버지는 명탐정이었을까. 도조 겐야는 방랑 환상소설가다. 이런 말도 있고, 말이 조금 바뀐 괴기환상소설을 쓴다는 말도 있다. 하나 더, 변격탐정소설도 쓴다. 도조 겐야는 괴상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모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방랑’이 붙은 거겠지. 이 소설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은 이 소설속 인물 도조 겐야가 경험한 것이기도 하고 쓴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쓰다 신조. 결국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은 미쓰다 신조다. 이렇게 말하면 도조 겐야가 뭐라고 할까. 어쩐지 미쓰다 신조는 소설속 인물이 멋대로 움직였다고 할 것 같기도 하다.

 

미쓰다 신조의 호러 미스터리는 무섭다는 말을 들었는데, 솔직히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가만히 광속에 있던 것을 생각하면 무서울지도(소후에와 남자아이가 갇힌 광). 그게 아주 잠깐밖에 나오지 않아서 말이다. 진흙여자나 팽것은 이 소설에 나온 배경과 같은 곳에 가면 무서울 것 같다. 요즘은 논을 보기 어려워서. 진흙여자는 시어머니한테 미움받은 며느리가 혼자서 하루종일 모내기를 하고 죽어서 된 거고, 팽것은 물에 빠져 죽은 사람 몸이 부푼 것이다. 그렇다고 실제 사람은 아니고 귀신이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힘을 가진 사람도 나온다. 그런 힘을 물려받는 집안이 정말 있을지, 없을지. 과학이 발달한 지금 시대에 이런 미신 같은 이야기라니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미쓰다 신조가 쓰는 시대는 좀 옛날이다. 그렇다고 아주 옛날은 아니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다. 일본에는 많은 신이 있고 의식 같은 것을 한 적도 있다. 아마 지금은 그런 일이 많이 사라졌겠지. 잔치 같은 것은 아직도 남아있지만.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의식이 많이 남아있고 했을 것이다.

 

신이나 요괴를 좀더 쉽게 나오게 하려면 아주 옛날 에도시대나 센고쿠시대를 배경으로 하면 나을 것이다. 하지만 꼭 에도시대, 센고쿠시대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시대에도 사람과 요괴(신)를 함께 나오게 하는 이야기도 있다. 교고쿠 나쓰히코가 쓰는 요괴이야기도 전쟁이 끝난 뒤가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 요괴라기보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지금이 배경일 때는 요괴나 신을 보고 믿는 사람이 한두 사람일 뿐이지만, 전쟁이 끝난 뒤는 더 많은 사람이 그것을 믿고 홀리게 할 수 있다. 그냥 시대를 왜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로 했을까를 나 나름대로 생각한 거다. 요코미조 세이시는 전쟁이 끝난 뒤를 살고 그것을 소설로 썼다. 그래서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에서는 그 시대를 좀더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왜 요코미조 세이시가 나왔느냐 하면, 별뜻 없다. 어디에선가 미쓰다 신조가 요코미조 세이시를 잇는다는 말을 본 것 같은데, 진짜 봤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아는 척하고 말할 만한 게 못 된다. 나는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뿐 아니라 미쓰다 신조 소설도 많이 못 봤으니까. 미쓰다 신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쓰다 신조는 도조 겐야 이야기뿐 아니라 자기 이름과 같은 미쓰다 신조가 나오는 ‘작가’ 시리즈도 쓴다.

 

괴기환상소설가 도조 겐야와 괴상사 편집자 소후에 시노는 재야 민속학자 아부쿠마가와 가라스가 들려준 나라 깊은 산골 하미 땅에서 하는 기우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하미 땅에는 네 마을 사요 촌, 모노다네 촌, 사호 촌, 아오타 촌이 있다. 네 마을에는 저마다 신사가 있고, 기우제는 돌아가면서 했다. 그런데 스물세 해 전과 열세 해 전 의식 때 신남이 죽었다. 사요 촌 미즈시 신사에는 외눈 광이 있는데 보통 사람은 찾기 어렵다고 했다. 네 마을이 믿는 신은 물의 신 미즈치다. 무엇인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도조 겐야는 이런 것을 아주 좋아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소후에 시노와 하미 땅에 간다. 아부쿠마가와도 같이 가고 싶어했는데 다른 일이 있어서 못 갔다. 아부쿠마가와는 도조 겐야가 명탐정이라는 말을 듣는 것을 부러워했다. 자신도 어떤 일이 일어나면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도조 겐야와 소후에 시노가 함께 간 곳에서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일을 도조 겐야가 푼다고 하던데, 하미 땅에 갔을 때도 일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그곳에 비가 오지 않아서 비를 내려달라는 의식을 하려 했다. 그 일을 사요 촌의 미즈시 신사에서 맡았다. 도조 겐야와 소후에 시노는 의식을 치르는 전날 그곳에 갔다. 다음날 의식이 이뤄졌는데 공물을 호수에 던진 신남이 누군가한테 죽임을 당했다. 호수 위, 물속은 밀실이 되었다. 의식이 끝난 뒤에는 비가 내렸다. 이 비는 하미 땅까지 밀실로 만든 듯하다. 끊이지 않고 내리는 비를 상상하면 그곳 분위기가 어땠을지 조금 알 수 있을리라. 죽임을 당한 것은 신남만이 아니었다. 다른 신사 신관이 차례로 죽임을 당하고 마지막에는 미즈시 신사의 미즈시 류지가 죽임을 당한다. 그때 도조 겐야는 신남과 신관을 누가 죽였는지 말했는데, 그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진짜 범인은 따로 있었다. 그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렇게 바로 어떻게 해야겠다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일을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인가를 너무 믿으면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게 될까, 아니면 그저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비가 끊이지 않고 내린 것은 그 일에 대한 벌이었을까. 옛날에는 사람을 재물로 바치기도 했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중국 만리장성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묻혀 있을지.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바로 산 사람을 재물로 바치는 일이다(이 말 안 해야 하는 것인가). 그나마 다행한 일은 그런 일을 생각한 사람이 한사람뿐이라는 거다. 네 마을 신사의 신관이 모두 그랬다면 더 무서웠을지도. 좋은 것은 물려받아도 안 좋은 것은 바꾸어가야 한다. 전통은 그런 게 아닐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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