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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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2013년) 이 책을 알게 되고 언젠가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해 보게 되었다. 읽기 전에도 내가 이 책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했는데, 말 그대로 글자만 읽고 뜻을 다 알지는 못했다.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제목 때문에 모터사이클 책이 있는 곳에 꽂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2010년에 교고쿠 나쓰히코의 《철서의 우리》를 보았다. 거기에 선禪에 대한 게 조금 나온다. 추젠지 아키히코(작가 이름에는 여름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 이름에는 가을이 들어있구나, 이제야 알았다)가 선禪에 대한 말을 길게 했다. 그것 때문에 선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때도 제대로 몰랐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더 모른다. 그래도 예전에 써둔 것을 보고 그렇구나 했다. 선禪은 말로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선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그게 끝이 아니고 그 뒤에도 수행을 해야 한다고. 여기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질Quality은 정의할 수 없다고. 질과 가치는 같은 말이라 할 수 있을까. ‘가치에 대한 탐구’라는 말도 있으니까.

 

이 소설(소설 같지 않은 제목이지만 소설이다, 철학도 담겨 있다)은 아버지와 아들이 여름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떠나 몬태나 주의 보즈먼을 거쳐 캘리포니아 주의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이야기다. 두 사람과 친구 부부도 함께 간다. 하지만 친구 부부는 몬태나 주까지만 가고 먼저 돌아간다. 처음에 ‘나’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면 차를 타고 다닐 때와는 다르게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모터사이클도 그렇게 느린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차보다는 여러가지를 보고 느낄 수 있겠지. 어쩌면 질을 여기에서 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면서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이 사람은 몇 해 전에 정신병 때문에 병원에서 전기충격치료를 받고 기억이 없어졌다. 아들과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면서 기억을 조금씩 찾는다. 그런 자신을 ‘나’는 고대 희랍 수사학자와 같은 이름인 파이드로스라고 한다. 파이드로스의 이야기는 ‘나’의 지난날 이야기다. 파이드로스의 생각을 따라가기는 어렵다. 내가 철학을 잘 모르기도 해서 말이다. 파이드로스는 과학, 서양철학,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과학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철학에서 찾으려 했다.

 

파이드로스는 세계는 정신과 물질 그리고 질이라는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질은 정신의 한 부분도 물질의 한 부분과 관계없는 제3의 실체라 했다. 나는 정신과 물질이 조화를 이룬 게 질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잘 모르겠다. 이것은 감정과 이성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정신의 느낌과 기계공학의 생각이라고 했으니). 수행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한 가지를 마음을 다해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게 여기에서는 모터사이클 관리겠지. 모터사이클을 관리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잘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비사가 ‘나’의 모터사이클 상태를 나쁘게 만든 일은 조금 웃기기도 했다. 정비사는 모터사이클을 보는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 까닭을 ‘나’는 시끄러운 라디오 소리 때문이라고 했다. 제대로 안 보고 빨리빨리 일을 해버리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좀더 많이. 이것은 1970년대 일만은 아니다. 지금은 그게 더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는 거겠지. 나는 지난해 알고 올해 보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번이라도 본 것을 좋게 여기고 싶다.

 

질Quality은 정신과 물질에서 정신(영혼)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질이 좋은 물건에 둘러싸여 살아도 마음이 비어 있으면 그것은 질 좋은 삶이 아닐 테니 말이다. 어떤 것을 보다가 생각났다. 그것은 의사가 환자를 낫게 하는 일보다 병원 안의 권력에만 마음을 두면 안 되겠다는 것이다(권력에는 물질도 따라온다). 어떤 게 더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가진 가치관은 다르다. 그것을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정신이 아닌 물질을 좇으면 어느 순간 덧없어지지 않을까. 그런 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런 생각과는 조금 다른 것인가.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사람은 여러가지를 공부한 듯하다. 그래서 얻은 게 많았다. 책을 다 볼 때쯤 나는 철학을 언젠가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했다. 어쩐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깊이 알지 못할 것 같다. 이것은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온 아들 크리스는 1979년 11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흑인한테 죽임 당했다고 한다. 아주 똑같지는 않을지라도 크리스가 열한살일 때 모습이 책 속에 있어서 다행이다.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선禪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곳은 ‘후기’인 듯하다. 그것은 선禪이라기보다 이어짐일지도 모르겠다. 피어시그는 크리스가 자신의 딸로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불교의 느낌이 드는 생각이다.

 

파이드로스의 생각을 다 알기는 어렵지만 질, 가치를 생각하고 살아가야겠다. 책을 보는 일도 그런 일 가운데 하나겠지.

 

 

 

희선

 

 

 

 

☆―

 

무엇을 말할 것인가와 무엇을 먼저 말할 것인가를 같은 때 한꺼번에 생각하려고 하면, 일이 너무 어려워진다. 그러니 이 둘을 따로 떼어놓아라. 먼저 네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어떤 차례로든 상관없으니 열거해놓아라. 그리고 뒤에 가서 적당한 차례를 생각하도록 해라.  (4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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