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파과(破果) : 흠집 난 과실.

파과(破瓜) : 파과지년(破瓜之年) 1. 여자 나이 16세를 이르는 말.

                                                         2. 남자 나이 64세를 이르는 말.

 

 

 

이 작가 구병모가 여성이라는 것을 안 것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이름 때문에 저는 남성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위저드 베리커리》 《아가미》 이렇게 두권을 봤는데 작가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요. 작가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을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그런대로 읽었는데, 《아가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그게 어땠는지 거의 생각나지 않습니다. 떠오르는 게 아주 없지는 않지만. 여기까지 쓰고 나니 처음에 다른 말로 시작하려 했다는 게 생각났습니다. 왜 처음이 바뀐 것일까요. 그것은 어떻게 쓰면 좋을까가 바로 떠오르지 않아서인 것 같습니다. 이 책 《파과》를 읽으면서도 다른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눈은 글자를 보고 있는데 머릿속은 다른 것을 어떻게 쓸까를 자꾸 생각하는 거예요. 이 책이 아닌 다른 책 이야기를(생각만 하고 못 썼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면 책 읽기도 쓰기도 제대로 못하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으면 지금 보는 이야기와 관계있는 것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보고 있는 이야기와 아주 다른 게 생각날 때도 많습니다. 지금 보는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아서일까요.

 

우리나라에도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화에는 나이를 먹어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그 일을 잘하는 어르신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만화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하는 일에 따라 나이와 상관있는 것이 있고 없는 걸까요. 이 사람 죽이는 일은 나이가 아주 많지 않을 때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조각은 예순다섯 살에 게다가 여성입니다. 일을 아주 많이 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현역입니다. 그냥 회사도 일을 그만뒀을 때이기도 한데. 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니 예순다섯이라 해도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 다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각은 실수를 하고 다치기도 했습니다. 그 일은 조각의 마음에 틈을 만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마음의 틈은 조각이 나이 든 개 무용을 데리고 왔을 때 벌써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강 박사는 그 틈을 더 벌린 것이겠지요. 저는 다른 사람이 조각한테 ‘어머니’라고 했을 때 아주 싫어한 마음 알 것 같습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모두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더군다나 조각은 평범하게 살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 조각은 가난한 집에서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언니와 동생 넷이 있는 집으로 막내는 남자아이였습니다. 조각은 잘사는 친척집에 식모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런대로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잘못해서 조각은 그 집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고 만난 사람이 류입니다. 그때 조각 나이는 열다섯 살이었습니다. 조각은 류가 소개해줘서 클럽 부엌일을 하게 되었는데, 조각의 삶을 크게 바꾸는 일이 또 일어납니다. 혹시 류는 알아본 것일까요. 조각이 어떤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것을. 아주 조금은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각은 류한테서 사람 죽이는 방법을 많이 배웁니다. 그렇게 해서 조각은 ‘방역’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사람 죽이는 일을 ‘방역’이라 합니다. 벌레를 죽이는 일이라는 듯. 어쩌면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보다 벌레를 죽인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마음의 무게를 줄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그저 제 생각일 뿐입니다. 조각의 삶이 우연에 휩쓸려 간 듯한데 꼭 그렇기만 할까요. 조각은 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결국 조각이 ‘방역’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고 보니 조각이 류를 원망한 적은 없었군요. 서로 지킬 것은 만들지 말자고 말한 류는 조각을 지키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각은 류를 따라가는 날을 기다리며 방역일을 해왔습니다.

 

누군가와 관계 맺는 것을 하지 않던 조각이 자신을 살려준 강 박사를 만나고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조각이 죽일 사람이 폐휴지가 쌓인 리어카를 끄는 노인과 부딪쳐서 폐휴지가 리어카에서 모두 쏟아지자 조각은 그곳을 바로 떠나지 못했습니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사람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다음에 죽일 사람은 강 박사 아버지였습니다. 이것은 투우가 꾸민 일이었을까요. 투우는 조각과 같은 에이전시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투우는 오래전에 조각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조각은 잊어버렸지만. 투우는 조각을 만나기 위해 이 세계에 들어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투우가 오래전에 맡은 죽음의 냄새는 자신을 황홀하게 만들었거든요. 강 박사에서 투우 이야기도 옮겨갔군요. 강 박사를 보는 조각의 마음, 조각을 보는 투우의 마음을 무엇이라 하면 좋을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그리움.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끝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강 박사는 자기 딸 해니가 사라졌을 때 조각을 아주 다르게 대했습니다. 그런 모습 처음 보는 것은 아닌데 조금 실망했습니다. 아니, 사람은 다 그렇게 되는 것이겠지요. 투우의 그리움도 조각은 몰랐습니다. 조각 자신이 죽인 사람이나 그때 만났던 사람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이런 애매한 말을 하다니.

 

조각이 투우와 한 싸움은 어쩌면 지난날의 조각 자신과 한 싸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끊는다고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방역일을 하면서 지금 멈춤형이었던 조각의 삶이 그 일을 그만둠으로 지금 진행형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예순다섯 살인 조각한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음이 싹틉니다. 아니, 예전에 한번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린 것이군요. 누군가 보여줄 사람이 없다 해도 조각은 남아 있는 오른손 소톱을 예쁘게 꾸밉니다. 이것은 조각의 네번째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요. 무엇인가 아주 좋은 일이 없다 해도 조각은 지금 자신을 받아들이고 잘 살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희선

 

 

 

 

☆―

 

사라진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가지게 된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332~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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