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밟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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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옛날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준 사람은 없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런 이야기(소설)를 좋아하게 된 걸까. 어렸을 때는 책 별로 읽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냥 책을 읽다보니 재미있게 여긴 게 아닐까 싶다. 무엇을 가장 처음 보고 좋아했는지 기억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생각나지 않는다. 책으로는 아니어도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을 먼저 좋아한 것 같다. 텔레비전 방송으로 해준 것들 말이다. 책하고는 조금 다를까. 지금은 어린이 방송이 그렇게 많이 안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것뿐이고 괜찮은 방송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렇다면 좋을 텐데. 《그림자밟기》는 에도시대 이야기에서 열세번째라고 한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이야기가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은 시대가 옛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도 옛날이야기를 보고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옛이야기에서 우리는 지금을 보기도 한다. 여기에 나온 이야기도 옛날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도 하다. 모습은 조금 달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다르지 않으니까. 그래도 옛날에는 지금보다 사람 사이에 정이 더 두텁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이 세상(사람 세상) 것이 아닌 것에도 마음을 주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그런 이야기가 여섯편 담겨 있다.

 

<스님의 항아리>는 족자에 담긴 힘을 이어받는 것으로, 그 힘에는 ‘성가신 것’도 딸려있었다. 족자 그림에 있는 항아리뿐 아니라 승려까지 볼 수 있어야 고승의 힘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그 힘은 역병에서 족자를 물려받은 사람을 지켜주고 역병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준다. 그저 그림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 힘을 이어받아야 한다니. 이것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성가신 것’이 있어서 말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괜찮은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족자가 다음 사람을 고른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곧은 사람으로. <그림자밟기>에는 반가운 사람이 나온다. 마사고로는 생각나지 않았는데 짱구 신타로는 생각났다. 짱구는 기억력이 아주 좋은 아이다. 《얼간이》 《하루살이》 《진상》에 나온다. 어린이가 학대받고 죽었는데, 죽은 어린이는 저세상에 갔지만 그림자는 이 세상에 남아있었다. 여러 사람이 그 그림자를 어린이가 있는 곳에 보낸다. 그림자는 아이를 잘 찾아갔을까.

 

<바쿠치간>은 도박안(도박눈, 일본말에서 도박은 바쿠치博打라 하고 도박안은 바쿠치간博打眼이라 한다)이다. 바쿠치간은 사람 50명으로 만든 것으로 이불처럼 생겼고 거기에 눈이 50개 돋아 있다. 본래는 100개여야 하지만 하나는 뭉갰다고 한다. 사람으로 요괴를 만들다니, 누가 생각한 것일까. 바쿠치간과 계약을 하면 도박을 아주 잘하게 된다. 그저 돈을 따게만 해준다면 좋겠지만 이런 힘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도박에서 이기고 싶다는 마음, 진 사람의 화난 마음을 바쿠치간은 먹었다. 바쿠치간한테는 사람에 대한 원한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억울하게 죽어서 요괴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자신과 계약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도박에서 이기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도박에서 딴 돈을 빨리 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바쿠치간의 나쁜 기운이 계약한 사람한테 흘러들어간다. 다행하게도 사람한테 도움을 받아서 사람을 도와주려는 신도 있었다. 사람을 미워하는 요괴, 사람을 도와주려는 신. 어디에든 이렇게 어둠과 밝음이 있다. 바쿠치간을 신의 도움으로 물리쳤다. 그리고 한해 동안 바쿠치간 재료가 된 사람들을 공양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는 종소리를 좋게 하려고 종을 만들 때 아기를 넣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금 다르지만, 사람을 많이 죽게 하지 않아서 다행인지도.

 

 

“사람이 살아있을 때 누군가한테 무언가를 빌려주고─거의 모두 돈이겠지만─그것을 돌려받지 못해 원한을 품은 채 죽으면 그 망집 때문에 귀신이 됩니다. 그러한 귀신은 빌린 사람 아이로 다시 태어나, 병을 자주 앓아 비싼 약값을 치르게 한다거나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며, 빌려준 것과 똑같은 만큼의 돈을 쓰게 하여 원한을 푼다는 것입니다. 이를 ‘토채귀’라고 한다더군요.” (190쪽)

 

 

<토채귀>는 여기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가장 길고 재미있기도 하다. 또한 《안주》 속에 있는 <안주>에 나온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진코 학원의 작은선생 아오노 리이치로, 그리고 스승 가도 신자에몬. <안주>에서 구로스케를 만나는 사람이 바로 가도 신자에몬과 아내다. 삼총사는 여기에서도 개구쟁이였다. 가짜 중 교넨보도 있다. 이 이야기가 <안주>보다 먼저가 아닐까 싶다. 자신이 잘못한 일인데도 그것에 대해서는 하나도 뉘우치지 않고, 자기 아들까지 죽이려고 하다니. 게다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싶어하고 자기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그냥 놓아버리면 편해지기도 할 텐데, 그게 쉽지 않기는 하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중에 아오노 리이치로와 흑백방에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오치카 사이에 무엇인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떨까. 리이치로한테는 옛날에 슬픈 일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리이치로만은 아니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미시마야 변조괴담 세번째가 나왔다. 우리나라에는 언제쯤 나올까. 다른 것보다 이것을 말하다니.

 

사람은 넓은 세상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게 누구한테나 좋을까. 언제나 한곳에 있다가 넓은 세상을 보고 자기 자신이 아주 작다는 것을 배운다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일을 알게 되어 욕심이 생긴다면 넓은 세상을 안 본 것만 못하지 않을까. 남자는 데릴사위로 한 여자만 알고, 여자가 제멋대로여도 자신을 좋아한다면 그걸로 괜찮았다. 그런데 밖에서 보니 그 여자의 그런 모습이 싫었다. 우연히 같은 여관방에서 자게 된 사람이 남자한테 죽은 사람의 영혼을 산 사람한테 옮기는 ‘반바 빙의’에 대한 말을 해주었다. 그게 속임수에 그저 주술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남자는 꿈꾼다. 좀 더 착한 여자 혼을 여자한테 옮기는 일을(<반바 빙의>). 사람은 사람한테 도움을 주는 연장으로 나쁜 일을 하기도 한다. 요물이 된 나무망치는 사람이 자신으로 어린이를 죽였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마음이 부서졌다. 그래도 만능 해결사 야사이 겐고로에몬이 나무망치를 성불하게 해주었다(<노즈치의 무덤>).

 

조금 무서운 꿈을 꾸는 남자도 있지만, 다른 것은 끝이 좋다.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남자의 아내도 나이를 먹고 아이를 갖는다면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때는 남자도 ‘반바 빙의’를 생각하지 않을지도. 여기에 여러 번 나오는 것은 사람은 자신이 한대로 받는다, 다. 나쁜 사람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서로 돕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더 많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싶다.

 

 

 

희선

 

 

 

 

☆―

 

“‘반바 빙의’는 우리가 다 함께 꾸고 있던 꿈─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꿈이 이루어 낸 것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오요시는 어디까지나 오요시고, 그저 ‘반바 빙의’ 라는 수단에 넘어가 본인도 그런 기분이 들어서 야에 씨가 되었을 뿐인지도 모르지요.”  (332쪽)

 

 

이렇게 건강하고 밝고 씩씩하고, 시끄럽지만 재미있는 어린이라는 생물.

그것을 해치는 어른이 있다.

죽임을 당하는 어린이도 있다.

그 죄에 가담해야 하는 연장이 있다.

그 연장이 요물이 되고 말 때가 있다.

요물이 되어 더욱 그 마음이 부서질 때가 있다.  (397쪽)

 

 

오쿠리비 연기가 흘러간다. 우란분이 끝난다. 저세상 사람들은 돌아가고, 이 세상 사람들은 남는다. 헤어지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죽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나고,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 되니까.         (4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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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08: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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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1 0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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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 2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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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7 0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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