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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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라디오 두번째, 세번째에 힘입어 첫번째가 다시 나왔군요. 첫번째를 제가 언제 읽어보았는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 잊어버렸으니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그런데 읽다보니 언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글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여기에 실렸던 글을 몇 해 전에 나온 《잡문집》에 넣은 것 같습니다. ‘잡문집’도 본 지 몇 해 지났지만, 이것보다는 덜 됐으니 다 잊어버리지는 않았겠지요. 이 책을 보고 나중에 ‘잡문집’을 보시는 분은 이 글 어디에선가 본 것인데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글이 다른 책에 실릴 때도 있지만, 언젠가 한번 한 이야기를 또 할 때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에서도 그런 것을 본 것 같기도 한데. 순서는 바뀌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여기에서 먼저 하고 다른 데서 또 한 거죠. 이런 일은 작가만 하는 것은 아니기도 하지요. 저도 이런 것을 쓰다가 예전에 쓴 것 같은데 할 때 많습니다. 많으면 안 되는데……. 언젠가 한 적 있는 말일지라도 그때 떠오른다면 또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지난번에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읽고는 잠깐 자고 일어났는데, 이번에도 잠깐 자고 일어났습니다. 책을 다 읽고 어떻게 쓸까 생각하다보니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처럼 또 책을 읽는 꿈을 꾸지는 않았습니다. 이럴 때도 있는 거죠. 사실 저는 잠으로 달아날 때 많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우울할 때는 잡니다. 가끔은 너무 많이 자서 진짜 자야 할 때 못 자기도 합니다. 한동안은 잠들 때까지 시간 많이 걸리기도 했는데, 요새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이런 말하고 나면 다시 못 자기도 하는데 괜히 했나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름을 다 말하니까 지루하군요. 친구는 아니지만 그냥 하루키라고만 해야겠어요. 하루키는 자신이 소설가이기 때문에 이상한, 조금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것을 보니까 저도 자주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는 게 떠올랐는데 아쉽게도 그게 어떤 거였는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라도 생각났다면 지금 말했을 텐데. 그래도 쓸데없는 생각에 대해 말할 때 있어요. 그것은 바로 편지입니다. 편지에 쓴 말은 처음에는 조금 기억하는데 많이 쓰다보면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전에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합니다. 앞에서도 이런 말을 했는데, 편지에도 한 말을 또 하기도 한다는 말이 하고 싶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편지에 말하는 쓸데없는 생각 다른 데 적어둘까 하는 생각을 지금 했습니다. 아니요, 그러지 않을까 합니다. 편지 받는 사람만 알고 있는 게 낫겠습니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아요.

 

이 책에 실린 글과 같은 쓰려면 어떻게 할까요. 무엇인가 하나가 떠오르면 술술 쓸 수 있을까요. 하루키는 아주 조금은 적어두기도 하겠지요. 전에도 쓸거리를 적어둔다고 했으니까요. 하루키뿐 아니라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지요. 어딘가에서 본 낱말이나 짧은 글 때문에 소설을 썼다는. 그런 말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아주 조금에서 많은 것을 보는 것이니까요. 그만큼 그것에 대한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한 다음에 글을 쓰기 때문이겠지요. 저도 아주 가끔 그럴 때 있어요. 제가 쓰는 것은 편지지만요.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지 않아도 쓰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편지지 두장은 채운다는 겁니다(한장만 쓸 때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내가 편지만 너무 많이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편지를 많이 썼던 것은 그것이라도 써서 ‘글을 썼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였습니다. 편지도 잘 쓰면 좋은 글이 되겠지요. 지금은 이렇게 책을 읽고 쓰는 글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편지를 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편지만은 언제나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편지를 쓸 사람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저는 편지를 쓰지만 하루키는 편지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아니, 하루키가 쓰는 글이 바로 사람들한테 보내는 편지군요. 저도 그런 편지도 쓰고 싶군요. 언제가.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제가 전문가가 될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것도 있고 마음 편하게 쓰고 싶어서요.

 

전에 잡문집을 보고 썼던 말일지도 모르겠는데 저도 예전에 한번 하루키와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제가 정말 했는지 안 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실제로는 없는 책에 대해 쓴 것입니다. 하루키는 서평을 써달라는 말을 듣고, 이 세상에 없는 책에 대해 썼다고 하더군요. 재미있게도 그것에 대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이 이야기는 여기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잡문집에서 본 것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분명 본 적 있는데). 저는 고등학생 때 그랬던 것 같아요. 여름방학과제에 독후감 쓰기가 있었지요. 제가 그때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편지는 가끔 썼습니다(또 편지). 책을 많이 읽어서 글을 잘 쓰기도 하겠지만, 평소에 일기와 편지를 써도 어느 정도는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글을 잘 썼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 일기와 편지쓰기는 좋아했지만 다른 글 쓰는 것은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는 것도요. 여기에는 선생님도 들어갑니다. 저는 인터넷 때문에 제가 쓴 글을 다른 사람한테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창피하지만. 쓰다보니 다른 말을 늘어놓았네요. 저도 고등학교 때 읽지 않고 실제는 없는 책 독후감을 썼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했던 까닭은 책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때는 세상에 대해 몰라서 도서관이 있는지도 몰랐고 학교에도 도서실은 없었습니다. 지금도 세상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이런 말을 하니 조금 부끄럽군요. 하루키는 저와는 다르게 어릴 때부터 책 많이 읽었답니다. 혼자서 하는 일을 좋아했거든요.

 

하루키가 쓴 무라카미 라디오가 재미있다고 느낀 것은 두번째를 봤을 때입니다. 이 말 또 하는 것 같군요(미안합니다). 첫번째와 두번째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첫번째에도 하루키만의 유머가 있더군요. 옛날에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사카모토 큐 노래에 대해 말하고 난 뒤 한 그다음이야기 웃깁니다. 미국에서 빌보드 1위를 한 노래 <위를 보고 걷자>가 본래 제목과는 다르게 <스키야키(일본전골)>라는 제목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노래 때문에 다른 사람, 스즈키 쇼지의 노래 <플라타너스 길>은 <스시(초밥)>라는 제목으로 미국에 내놓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 안 됐답니다. 그 뒤에 하루키는 아쉽다면서 <덴푸라(튀김)> <사시미(회)> 라는 제목으로 노래가 나오고 잘됐다면 좋았겠다고 했습니다. 책으로 보면 재미있는데 이렇게 쓰니 제가 느낀 재미가 반으로 줄어들었군요. 반도 안 된다구요. 컴퓨터 부팅이 되기를 기다리며 동화책을 읽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저는 그냥 기다립니다. 가끔 쓰던 것을 끝까지 쓰기도 하는군요. 여러분은 무엇을 하십니까. 컴퓨터가 켜지기를 기다리며 이 책을 읽는 것도 괜찮겠네요. 여기 실린 글 한 편은 그리 길지 않으니까요.

 

 

 

희선

 

 

 

 

☆―

 

삶에는 감동도 수없이 많지만 부끄러운 일도 딱 그만큼 많다. 그래도 뭐, 삶에 감동만 있다면 아마 피곤할 테죠.  (103쪽)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깊은 상처가 되는가 하면, 잘못된 칭찬을 받는 것일 터다. 벌써 많은 부분 확신하는 바이다. 그런 칭찬을 받다가 망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사람이란 칭찬에 대답하고자 힘쓰게 마련이고, 그러면서 본래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니까 누군가한테 까닭 없는(혹은 까닭 있는) 험담을 듣고 상처를 입더라도, “아, 잘됐어. 칭찬받지 않아서 다행인걸. 하하하” 하고 넘겨보시길. 물론 그렇게 생각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지만.  (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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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2 12: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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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4 0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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