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세상에서
루타 서페티스 지음, 오숙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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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소련은 발트해 연안의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를 점령했습니다. 얼마 뒤 크렘린은 반 소비에트 인사들의 명단을 만들고, 그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보내거나 시베리아로 보내 강제로 일을 시키기로 결정했지요. 의사, 변호사, 교사, 군인, 작가, 사업가, 음악가, 심지어 도서관 사서들까지 반 소비에트로 보이는 사람들을 모두 추리면서 없애버릴 사람들 명단은 점점 더 늘어났습니다. 첫번째 강제 내쫓김은 1941년 6월 14일에 일어났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471쪽

 

 

제2차 세계전쟁(얼마 전에 우리나라는 왜 세계대전이라 할까 하는 말을 들었다. 세계전쟁, 세계전 더 쉽게 세계싸움이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은 1939년 9월 1일에서 1945년 8월 15일까지로 연합국과 독일·일본·이탈리아 동맹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이것은 나한테 있는 오래된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것인데, 독일·일본은 그렇다 치고 이탈리아가 이쪽이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독일이나 일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 책 속에 나온 소비에트(스탈린)가 한 일은 거의 몰랐다(나만 잘 모르는 것인지도). 1991년 발트해 세 나라(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가 오십 년 동안의 소비에트 점령에서 벗어난 뒤에 알려졌을까. 1991년은 제2차 세계전쟁이 끝나고도 한참 뒤다. 그러고 보니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비슷한 때 알려진 것 같다. 1980년대 말인가 1990년대 초였던 듯. 사실 나도 확실히는 모른다. 어떤 것은 알아보기도 해야 하는데……. 마지막에 ‘남은 말(에필로그)’에 나온 때는 1995년 4월 25일이다.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땅을 파던 일꾼은 땅속에서 나무상자를 꺼냈다. 그것은 리나와 동생 요나스가 1954년에 십이 년 동안 갇혀있던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돌아와 묻은 것으로 글과 그림이 들어있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리나 빌카스로 열여섯 살 여자아이다. 리나를 보니 독일에서 숨어 지내던 여자아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안네 프랑크. 리나와 식구들은 리투아니아에 살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고 했을 때 NKVD(소련의 내무위원회를 줄인 말)가 리나와 엄마 그리고 동생 요나스를 끌고 갔다. 아빠는 집에 돌아오지 않은 채였다. 리나가 아빠를 만난 곳은 화물열차를 타러간 역이었다. 리나 아빠는 남자들과 다른 곳으로 끌려가고 리나, 요나스 그리고 엄마는 알타이 강제노동수용소에 끌려갔다. 세 사람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끌려갔다. 소비에트에서는 사람들을 범죄자로 여겼다. 그리고 사람들한테 범죄자인 것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서류에 이름을 쓰라고 했다. 그런 것을 보면서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정하지 않아도 무서워서 이름을 썼을지도. 그래도 여기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름을 쓰면 안 된다고. 그런 일을 시키는 것은 사람들 마음을 꺾기 위한 것이라고. NKVD는 서류에 이름을 쓰지 않은 사람들을 이틀에 하루는 못 자게 했다. 그런 것에 못 이겨 이름을 쓰는 사람이 늘어갔다.

 

사람한테 일을 시키려면 어느 정도 시설이 갖춰져야 하는데 사람들이 끌려간 곳은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먹을 게 적었다. 리나는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찾아먹기도 했다. 리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사람들은 희망을 갖고 살아갔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모두 모여서 축하하기도 하고, 리나 생일에도 많은 사람이 모여서 축하해주었다. 리나는 그림을 잘 그렸다. 그림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리나는 자신이 겪는 일, 보는 일을 쓰고 그렸다. 그것은 NKVD한테 들키면 안 되는 거였다. 그때 리나처럼 글이나 그림으로 남긴 사람이 많았겠지. NKVD라고 해서 모두 나쁘지는 않았다. 끌려온 사람들을 도와준 사람도 있었다. 리나가 NKVD 지휘관 초상화를 그리게 해준 것은 NKVD 대원 니콜라이 크레츠스키다. 리나는 지휘관의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렸다. 그리고 음식을 받았다. NKVD들이 음식을 거칠게 던져주었지만. 리나는 크레츠스키를 나쁘게 생각했는데, 나는 크레츠스키가 일부러 나쁘게 행동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더 심하게 괴롭히지 못하게 하려고. 리나는 크레스츠스키가 엄마를 도와준 일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리나와 요나스 그리고 엄마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리나는 안드리우스한테 지금까지 쓴 글과 그림을 맡겼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바라며. 리나네 식구들과 사람들이 끌려간 곳은 북극 트로피모프스크였다. 그곳은 아주 추웠다. 그곳에 갔을 때 엄마가 제대로 걷지 못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조금 걱정했는데 리나 엄마는 죽는다. 어쩌면 엄마는 아빠가 총살당했다는 말 때문에 살아갈 힘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병으로 죽어갈 때 그곳에 의사가 나타났다. 요나스도 괴혈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치료를 받았다. 그곳을 의사한테 알려준 사람은 니콜라이 크레츠스키였다고 했다. 여기에는 한해가 조금 넘는 시간이 나왔지만, 사람들이 시베리아 수용소에 갇혀있었던 것은 십이 년이다. 살아서 자기 나라에 돌아간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서도 편하게 살지 못했다. 소비에트는 자기들이 한 일을 숨기려고 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났다. 시베리아 수용소.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끌려가서 갇혀있었다는 것이. 시베리아라는 말 봤을 때 바로 떠올려야 했는데. 그렇지만 발트해 세 나라 사람들에 대한 일은 훨씬 나중에 알려졌을 것이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그런 데 끌려간 일은 진짜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그런 일을 잊지 않고, 또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형편에 있다 해도 희망을 버리면 안 된다.

 

 

 

희선

 

 

 

 

☆―

 

“안드리우스, 나…… 무서워.”

 

그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안 돼. 두려워하지마. 저들한테 어떤 것도 내주어선 안 돼, 리나. 두려움조차도 보이면 안 돼.”  (334쪽)

 

 

“날 봐.” 안드리우스가 가까이 다가서며 소곤거렸다. “난 너를 찾아낼 거야. 그것만 생각해. 내가 네 그림들을 가지고 찾아간다는 생각만 해. 그걸 그려. 왜냐하면 내가 갈 거니까.”  (3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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