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IN 레드 문 클럽 Red Moon Club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살림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책을 다 읽고서 어떻게 쓰면 좋을까 생각했지만, 떠오르는 것은 아주 조금이고 그것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했다. 한번 더 읽어보면 뭔가 잡히지 않을까 싶었다. 책을 다시 보기 전에 잠시 라디오를 들었더니, 누군가가 ‘착한 사람이다’는 말이 나왔다. 그 말 듣고 ‘착한 소설은 아닌’이라고 제목을 정했다. 솔직히 말하면 제목하고 내가 쓴 게 따로따로일 때도 많다. 그럴 때는 바꾸기도 해야 할 텐데 그러지 않는다. 아니,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말이 나오다니, 그리고 아직 한번 더 읽지 않았다. 다시 읽기 전에 이 말 쓰고 싶어서 먼저 썼다. 이렇게 하기는 나도 처음이다. 책 앞쪽 날개에 기리노 나쓰오 홈페이지 주소 있어서 찾아보려고 했는데 책 읽기 전에 못 찾아봤다. 그게 조금 아쉽다. 두번 읽어도 잘 못 쓰면 어쩌지.

 

 

국가나 공동체에 대해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보잘 것 없는 하루하루 생활속에서 뚜렷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게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계몽 이야기도 싫고, 주인공이 자라가는 이야기도 싫다. 나는 사회파도 아니고 정치적이지도 않다. 그냥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모습을 그릴 뿐이다.  -기리노 나쓰오, 381쪽

 

 

두번 읽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쓰지는 않았지만 전에도 몇 번 있었습니다. 그때는 얇은 책이기는 했군요. 이 책도 그렇게 두껍지는 않지만, 빨리 읽기는 어렵기도 합니다.(제가 본래 책을 빨리 읽는 편은 아닙니다) 두번 읽었다고 잘 아느냐 하면 거의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 볼 때 못 봤던 것을 보기도 하지만, 처음에 봤던 것을 놓치기도 합니다. 앞부분을 볼 때는 조금 집중했는데 뒤로 가면서 흐트러졌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군요. 소설가 스즈키 다마키는 미도리카와 미키오가 쓴 《무쿠비토》에 나온 ○코를 주인공으로 해서 연애의 말살이라는 주제로 ‘인(淫)’을 쓰려고 합니다. 《무쿠비토》는 미도리카와 미키오가 아내한테 애인이 있다는 것을 들켜서 가정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입니다. 소설인데 미도리카와 미키오와 아내 그리고 아이는 모두 진짜 이름을 썼습니다. 가정을 부순 여자만이 ‘○코’로 나옵니다. 지금도 있지만 예전에 일본에서는 ‘~코(子)’라고 하는 이름을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어설프게 숨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반대로 ‘○코’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다마키는 이 ‘○코’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연애의 말살은 대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일까요.

 

다마키도 예전에 자신의 담당 편집자 아베 세이지와 사귄 적이 있었습니다. 가정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귀는 것도 연애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속에는 불륜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더군요. 그것도 연애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사귀다 헤어질 때 좋게 헤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주 안 좋게 헤어지는 사람도 있겠죠. 다마키와 세이지는 아주 안 좋았습니다. 미도리카와 미키오가 쓴 《무쿠비토》에 나온 사람 또한 그랬습니다. ○코만이 나쁘다는 쪽이 되었거든요. 책을 읽어가면서 남자와 여자가 헤어졌을 때 마음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 이것은 사귈 때도 그렇겠군요. 남자는 헤어지면 예전에 그런 일 있었나 하고(가정으로 돌아가서 그런 것인지도), 여자는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생각하려 한다는 겁니다. 아니, 이것은 상대를 용서했을 때 그럴까요. 남자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사귀어도 그때뿐이고 자기 가정을 버릴 마음은 없더군요. 이런 모습은 다른 데서도 봤는데,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보니 아내가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것을 알아도 좋아해버리는 사람이 있겠지만요.

 

이 책은 이렇게 가정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서 진흙탕 싸움을 하는 모습만 보여줄까요. 옮긴이 말에도 있듯이 《IN》은 소설에 대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이것에 대해 잘 말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말입니다. 다마키는 《무쿠비토》가 여러 사람한테 영향을 주었다고 하고, 자신이 쓰는 ‘인’이 여러 사람을 끌어들였다는 말을 했습니다. 소설이 허구의 탈을 쓴 사실일 수도 있고 아주 가짜일 수도 있겠죠. 그래도 소설가는 모두 꾸며낸 이야기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소설과 관계있는 사람과 그 소설에 빠진 사람은 아무렇지 않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했는데 다음 말을 이을 수가 없군요. 조금은 소설가의 변명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소설은 소설로만 봐달라는. 이것은 어느 순간 잠깐 느낀 것입니다. 이 말을 끝까지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에서는 세이지가 죽어서 말의 세계에 혼자 남게 되었다고 다마키가 말합니다. 소설가는 언제나 말의 세계에 혼자 남는다일 수도 있겠죠. 억지스러운 말인지도.

 

미도리카와 미키오가 쓴 《무쿠비토》에서 무쿠비토(無垢人)는 때가 묻지 않고 깨끗한, 꾸밈없이 순박한 사람을 말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 ‘무쿠비토’가 대체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미우라 유미가 했더군요. 미우라 유미는 ‘무쿠비토’를 죽어가는 사람으로 미도리카와 미키오한테는 죽은 아들 요헤이와 죽어가는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거기에 더 보태서, ○코가 지운 아이도 ‘무쿠비토’가 아닐까 싶습니다.

 

기리노 나쓰오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 아무 말하지 않습니다. 본래 작가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기는 하군요. 판단은 책을 읽는 사람 몫이죠. 하지만 가끔 불륜도 꽤 괜찮게 그리는 사람도 있더군요. 결국에는 깨어져버리기도 하지만. 어쩌면 여기에 나온 것처럼 아주 안 좋게 끝나버리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것에도 꽤 힘이 필요할 텐데. 앞에 말을 썼는데 쓸데없는 말을 썼습니다. 기리노 나쓰오 소설은 꽤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예전에 다른 책을 보면서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쩌면 제가 모르는 척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기리노 나쓰오는 사람 마음속에 있는 어두운 면을 잘 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점은 여전했습니다.

 

 

 

희선

 

 

 

 

☆―

 

“진실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소설에 쓰는 바로 그때 그건 픽션이 됩니다. 그걸 알고 있는 작가는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매력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만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로 착각할 픽션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작품은 모두 픽션입니다.”  (313쪽)

 

 

(줄임) 소설이 끌어들이는 이상한 사람들.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가 소설에 나오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안절부절못하는 형편으로 몰아넣어 남몰래 삶의 시계바늘을 고장 나게 만드는 소설이라는 것. (줄임)  (326쪽)

 

 

 

 

(나중에 생각하니 앞뒤가 안 맞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고쳐야 하나 했는데,

그냥 두렵니다 쓰다보니 그렇게 흘러가버린 걸 어떡합니까

생각했던대로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자주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마는군요

소설을 소설로 보라는 것은 작가와 연관해서 보지 마라는 말이 아닐지,

그리고 기리노 나쓰오는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고 말해주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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