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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흰 깃발을 던졌다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모두 풀려났지만,
후쿠오카 형무소 간수부 간수병인 와타나베 유이치는 갇혔다
하급 전범으로
와타나베 유이치는 말한다
자신한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가 있다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막지 못했고, 전쟁을 멈추게 하지도 못했으며,
죄가 없거나 아주 작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어이없이 죽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다시 와타나베는 말한다
자신이 쓰는 글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기를 바라고,
우리 영혼을 구해주기를 바란다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만난 한 시인과 한 검열관의 이야기
히라누마 도주와 스기야마 도잔, 아니 윤동주와 스기야마 도잔
1944년 스기야마 도잔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누군가한테 죽임 당했다
사람들은 스기야마를 악마라 했다
죄수들을 죽기 바로 전까지 때리고 엄격한 검열관이었기에
그런 스기야마 주머니에는 시가 적힌 종이가 있었다
스기야마 도잔은 겉으로 보이는 대로 악마였을까
스기야마에 대해 새롭게 드러나는 사실
음악을 들을 줄 알고, 시인이었다고
스기야마의 마음을 흔든 것은 윤동주의 시였다
거친 스기야마한테는 시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었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세계를 만난 스기야마
그러나 모두가 스기야마와 같지는 않았다
조선말로 시를 쓴 동주는 15일 동안 독방에 갇힌다
간수장은 동주가 쓴 시들을 스기야마한테 태우게 한다
동주가 쓴 시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 스기야마였지만,
자기 손으로 시들을 불태웠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꼈다
시를 쓰지 않게 된 동주한테 시를 쓰라고 하는 스기야마
자신만이 동주가 쓴 시를 되살릴 수 있다며 종이에 적어 주머니 깊숙이 숨겼다
자신의 시가 어딘가에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동주
정말 그렇다면 시를 불태운 죄책감을 덜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스기야마
나라와 말을 잃고 더욱 절망에 빠져버린 동주한테
스기야마는 어두운 밤이면 별이 떠오르는 것처럼
삶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고 확인하게 해주었다
그 밤 동주가 읊은 <별 헤는 밤>을 스기야마는 받아적었다.
2
차갑고 어두운 밤을 밝혀주었던 당신의 시는
지금도 누군가를 위로해 줄 것입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