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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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해진은 단편을 장편으로 쓰기도 한다는 게 생각났다. 예전에도 한번 그런 적 있지 않나. 두번째로 단편을 장편으로 썼다 생각했는데, 두 가지 말고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해진 소설을 다 읽지 못해서 더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른다. 어쨌든 ‘빛과 멜로디’는 단편 <빛의 호위>를 장편으로 쓴 거다. 단편을 쓸 때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장편을 쓸 때 일어났겠다. 아니 그 일이 일어나서 단편을 장편으로 쓴 걸지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일찍 끝나겠지 했는데. 그 뒤에 시리아나 이슬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은 더 심해지기도 했다. 부끄럽게도 그런 일 자세하게 모른다. 시리아는 내전이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건가.


 어디든 전쟁이 끝나면 좋을 텐데, 그런 소식은 쉽게 전해지지 않는다. 전쟁은 이기든 지든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건데 말이다. 독일이 일으킨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만 피해자는 아니겠지. 독일 군인도 나름 피해자겠다. 군인이기에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이 한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다, 있었겠지.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는 별로 못 본 것 같다. 가해자 시점으로 쓰인 소설이 있을지도 모를 텐데 본 기억은 없다. 거의 피해자 시점으로 쓰인 것밖에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내가 소설을 읽기는 했지만, 아주 많이 본 건 아니구나.


 난민은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유럽이나 미국에 가는 걸로만 생각했다. 지리로는 그쪽이 가까워서겠다. 한국으로 오는 난민도 아주 조금 있을지도 모를 텐데. 언젠가 난민을 한국에 받아들이는 이야기 나오기도 했는데,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오래전에 한국 사람도 난민으로 다른 나라에 간 적이 있는데 말이다. 지구촌이다 하는데, 같은 나라 사람 좁게는 자기 식구만 괜찮으면 된다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나도 그렇게 다르지 않구나. 생각으로만 힘든 사람을 도와야 한다 하는 걸지도. 그런 생각이라도 해서 다행이다 여기고 싶은데. 이 소설에서 민영은 남편 승준이 전쟁이 일어나고 언제 죽을지 모를 우크라이나 여성과 인터뷰한다는 말을 듣고 집에서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기를 바랐다. 딸인 지유가 슬프고 힘든 걸 모르기를 바라서였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좋은 것만 알기를 바라기도 하겠지. 민영이 그런 말을 한번 했지만, 끝까지 그러지 않고 승준이 인터뷰하는 나스차한테 관심을 가졌다.


 권은은 우연히 갖게 된 카메라 때문에 분쟁 지역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었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에서. 그런 곳에서 사진을 찍다가 다리를 다쳤다.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사람을 먼저 살려야지 하는 말을 듣고 상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있지 않던가. 어떤 곳 참상을 알리는 데는 글보다 사진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분쟁 지역 모습을 알리려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겠지만, 특종이나 돈벌이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어쩐지 슬프구나. 지금은 전쟁이 일어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기도 하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실제 겪는 일이 아니고 화면 너머로 봐서 실감하지 못하기도 할 거다. 그런 걸 게임이나 영화처럼 보기도 한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죽기도 하는데.


 난민이나 어딘가에서 굶어죽는 아이가 있다고 도와달라고 하면 한국에서 굶어죽는 아이를 도와야지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굶는 아이도 도와야지. 다른 나라에서 굶는 아이를 돕는 것도 좋지 않을까. 영국에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권은이 만난 난민 살마를 영국 사람 애나가 도왔다. 그 일은 살마가 우크라이나 여성 나스차를 돕는 일로 이어졌다. 누군가한테 도움받은 적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를 돕기도 한다. 이 책 《빛과 멜로디》에는 그런 이야기가 담겼다. 자신을 살려준 누군가가 있고, 도움받은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살리는. 자기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 대단하다.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살리거나 돕는 일도 있겠다. 어린 승준이 그랬나. 난 그러지 못하겠다.


 여기 담긴 이야기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 같은 느낌이 든다.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단 한사람을 구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희선





☆―


 “장이 작곡한 그 악보들은 지하 창고에서 날마다 죽음만을 생각하던 내게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해준 빛이었어요. 그러니 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 악보들이 날 살렸다고 말이에요.”  (127쪽)



 “카메라는 나도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물이었죠.”


 승준이 굳이 분쟁 지역 사람들을 찍는 까닭을 물었을 때는 이렇게 대답하기도 했다.


 “사람을 살리는 사진을 찍고 싶으니까요. 죽음만을 생각하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잊히지 않게 하는 사진을 찍는 거, 그게 내가 사는 까닭이에요.”  (128쪽)



 숱하게 찍어온 사진들이 과연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의미 있는 말을 걸었는지,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형벌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는지, 낯선 사람의 손가락이라도 힘껏 잡을 수밖에 없었던 아기의 절박함을 기억하게 해주었는지…….


 알 수 없어서 그는 새벽까지 뒤척였다.  (178쪽)



 나는……


 그는 다시 여자 쪽을 보고 울먹이듯 중얼 거렸다.


 “나는, 나도……”


 “……”


 “사람을 죽이려고 태어나지 않았지.”  (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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