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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ㅣ 창비시선 485
유수연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평점 :
이 시집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는 라디오 방송 듣고 한번 볼까 했어요. 그날 방송은 본방송에 저녁에 재방송, 주말에 재방송 두번 더 했어요. 같은 방송이 모두 네번 나온 거예요. 네번에서 한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듣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여러 번 듣다보니 유수연 시인이나 시집에 관심이 갔습니다. 그때는 그랬는데. 막상 시집을 펼치고 보니……. 여전히 저는 모자랍니다. 시를 보기는 해도 제대로 못 봅니다. 유수연 시인 시집은 이번이 첫번째예요. 한번 죽 보고 한번 더 봤지만 뭐가 뭔지. 슬프군요. 시가 사람을 좌절하게 만들다니(시만 그런 건 아니군요). 두번 보고 알 만한 시는 아닌가 봅니다. 어떤 시든 그렇겠네요.
앞에서 라디오 방송 여러 번 들었다고 했는데, 라디오 방송이 어땠는지는 하나도 말하지 않았네요. 시간이 흘러서 그때 방송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하나 생각나는 건 유수연 시인이 그날 읽은 시예요. 맨 처음에는 <감자가 있는 부엌>일 거예요. 마지막엔 <개평>이었던가. 시가 어땠는지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시인이 감자를 시에 잘 쓴다고 한 건 생각납니다. 그건 유수연 시인이 아니고 라디오 방송 진행자(윤고은)가 한 말이었을지도. 누군지는 잊어버렸지만, 감자가 들어간 시를 쓴 시인이 여럿인 듯합니다. 감자라. 어두운 곳에 두어야 하는 감자. 밝은 곳에 감자를 두면 싹이 날까요. 감자 싹엔 솔라닌이라는 독성분이 있어서 먹으면 안 되죠.
시집에 담긴 시를 보다 보니 제목에 ‘생각’이라는 말이 들어간 시가 여러 편이더군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입니다. 제가 편지 쓸 때 자주 쓰는 말이 ‘생각’입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제목에 생각이 들어가지 않아도 시에 생각이라는 게 없지는 않겠습니다. 이 말을 쓰지 않을 뿐이겠지요. 생각, 생강. 조금 쓸데없는 말을.
잠시 녹았을 때 다 흐르지 못했다
가만히 있었다
도망치지 못한 내가
사람은 제일 아팠던 말을 잊지 않아
꼭 그 말로 다른 이를 찌르고 싶어 해
너는 녹을 때까지 안아보자 했다
서로를 깊숙이 찌르며
온몸이 젖을 때까지
괜찮지? 웃으며 바라보는데
내 손엔 아직 들린 것이 있었다
더 아픈 줄 알았는데 나만 녹지 못했다
-<고드름>, 91쪽
뭔가 알아서 시를 옮긴 건 아니예요. ‘사람은 제일 아팠던 말을 잊지 않아/꼭 그 말로 다른 이를 찌르고 싶어 해’ 가 눈에 띄네요. 천천히 시를 보면, 시에 담긴 말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까요. 여기엔 그런 게 많을 듯합니다. 그게 뭔지 뚜렷하게 말 못하고, 어떤 건지 짐작도 안 돼요. 자신이 모르는 게 시에 들어가기도 하네요.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기도 한데, 시는 이해하기보다 느끼는 거겠지요. 느끼는 것도 쉽지 않은 거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