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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3 ㅣ 소설 보다
김기태.성해나.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평점 :
책이 얇아도 읽으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소설 보다’다.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보는구나. 이번 《소설 보다 : 겨울 2023》에는 2023년에 나온 ‘소설 보다’에서 두번째로 보는 작가 소설이 두편이나 실렸다. 지난 ‘소설 보다 봄’에서는 예소연 소설을 보고, 지난 ‘소설 보다 여름’에선 김기태 소설을 만났다. 어떤 소설이었던가 하고 그때 읽고 쓴 걸 찾아보고 알았다. 단편은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작가 이름이라도 기억하면 다행일지도. 한국 단편소설은 여전히 읽기 어렵다. 이게 쉬워질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첫번째 김기태 소설 <보편 교양>을 보면서, 지금 고등학생은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과목을 고르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꼭 해야 하는 것도 있겠지. 모든 건 자신이 고르는 건 아니겠지. 고등학교 3학년은 예전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였다. 중요한 과목은 공부를 열심히 해도 수능과 상관없는 선택 과목 시간에는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학생한테 다른 말 안 했다. 요즘은 선생님이 학생 눈치 보던가.
곽은 고등학교 3학년 아이한테 ‘고전읽기’를 가르치게 됐다. 그걸 맡게 됐을 때 곽은 기대했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을 고르려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거나 자기 돈으로 책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고전읽기’ 시간에 잠을 자거나 다른 걸 했다. 한 아이 은재만은 달랐다. 그 은재 아버지가 교장한테 전화를 했다고 한다. 곽은 은재 아버지와 여러 말을 하고 싶었을까. 자신한테 전화하기를 기다린 것 같기도 하다. 은재 아버지는 은재가 마르크스 책 《자본론》을 보는 걸 알고 걱정돼서 학교에 전화한 거였다. 곽은 그 일에 변명 같은 말을 하려고 준비 했는데. 그건 《자본론》이 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말로 보였다.
은재는 고전읽기 시간을 좋아했다. 그런 은재가 서울대에 붙었다. 그 일로 학교에서는 은재가 공부한 것을 알아보고 고전읽기를 다시 보게 되었다. 고전읽기반을 늘린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서울대에 하나라도 더 들어가면 좋아하겠지. 다음해에는 곽이 가르치는 ‘고전읽기’ 좋아하는 아이가 하나라도 더 늘기를 바란다. 내가 고등학생 때 그런 게 있었다면 했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은 괜찮아 보이지만 고등학생 때는 몰랐겠다.
신내림 받기 전에 몸이 아프고 안 좋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일까. 그런 일이 아주 없다고 할 수 없을지도. 신이 왔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할지. 어떤 힘이 있다가 나이를 먹고 약해지거나 사라지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건 만화에서 봤구나. <혼모노>(성해나)에는 박수무당 문수가 나온다. 제목 봤을 때는 일본말이네 했는데, 무당이 이런 말을 하기도 하나. 신인 장수 할멈이 하는 말인가 보다. 장수 할멈은 일제 강점기를 살았나. 혼모노는 진짜라는 뜻이다. 가짜는 일본말로 ‘にせもの(니세모노)’라 쓰고 니시모노라 읽었다. 이것도 장수 할멈 말버릇이겠지. 혹시 이거 잘못 인쇄한(오자) 건가.
문수는 서른해 동안 장수 할멈과 여러 신을 모셨는데, 어느 날 사라졌다. 바로 앞집에 신내림을 받고 얼마 안 된 스무살쯤 된 신애기가 온다. 신애기는 장수 할멈이 자기한테 왔다고 한다. 서른해나 무당으로 살다가 다른 일 하려면 어려울지도. 아니 그만둬도 괜찮지 않나. 어떤 일이든 젊은 사람이 더 괜찮을까. 문수는 무형문화재가 되고 싶은 야심도 있었는데, 신애기를 보고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걸 안타깝게 여기기도 했다. 자신이 그랬으니. 문수는 자신이 이제 진짜가 아니다 해도 진짜처럼 보이려 한다. 그런 걸 안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마지막에는 예소연 소설 <우리는 계절마다>가 실렸다. 이건 앞에 이야기가 있기도 한가 보다. 미정과 희조가 초등학생 때 이야기. 희조와 미정은 중학생이다. 예소연은 나중에 고등학생이 된 희조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한다. 희조는 가난이 싫고 부모가 멋대로 정하는 게 싫은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때 동생이 생기면 좋을지 안 좋을지. 미정이 엄마는 예전과 달라지고 다른 부모와 달라 보였다. 그런 사람도 있는 거 아닌가. 희조한테 그게 숨을 트이게 해주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다른 부모는 주지 않는 맥주를 미정이 엄마는 주었다. 희조를 보고 내가 중학생일 때 마음을 떠올려 보려 해도, 난 그때 별거 없었다. 사춘기랄 것도 없었다. 집안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부모가 아이한테 말하지 않고 정하는 건 안 좋기는 했다.
희조는 미정이가 초등학생 때 말한, ‘자신이 기도를 하면 누군가를 죽게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았다. 그걸 은총이라 나타냈다. 미정이 그런 말을 했다니. 그리고 미정이 할머니와 아버지가 죽었던가 보다. 그게 미정이 힘이 아니었다 해도 희조는 그걸 믿었을지도. 이제 중학생이니 그건 잊으면 좋을 텐데. 그럴 것 같기는 하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