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3 - 만적에서 배중손까지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3
KBS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이익주 감수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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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영어로 표기하면 KOREA다. 이건 고려를 알파벳으로 표기한 거다 하지. 처음엔 K가 아닌 C였다고 하는데. 알파벳 차례에서 앞에 나오는 게 더 좋은 걸까. C보다 K가 더 센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고려 흔적은 한국 영어 이름에 남은 건가 싶구나. 지금 생각하니 조선이 아닌 코리아가 된 게 신기하다. 고려가 그때 조금 더 알려진 건 아닐지. 지금은 한류다 해서 세계에 한국이 널리 알려지기는 했는데. 그런 건 문화예술이기도 하다. 본래 그런 거던가. 문화예술은 한 나라에 참 중요한 거구나. 고려 시대 하면 고려 청자가 있고 불교 미술이 있다. 고려 가요도 지금까지 알려지는 거던가.


 이 책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에 문화예술 이야기는 담기지 않았다. 그걸 아쉽게 여기기는 했다. 어느새 3권을 만났다. 네권에서 세번째니 앞으로 한권 남았다. 네권 다 본다고 고려를 다 알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책을 볼 때는 그렇구나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리니. 학교 다닐 때 배운 역사는 연도나 이름 정도뿐이다. 그것도 다 기억하지 못할지도. 역사책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기도 하겠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어떨지. 자세하게 다루기보다 겉만 보는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역사를 외워야 한다 생각해서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구나. 역사는 되풀이해서 이것저것 보다보면 머릿속에 남을 거다. 역사는 그렇게 기억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하지만 지금까지 역사책은 그렇게 많이 안 봤다.


 지난 2권에서 최충헌이 무신으로 정권을 잡았다. 최충헌은 민심을 달래려고도 했지만, 그게 두루두루 미치지 못한 건 아닐까 싶다. 고려는 지역에 따라 차별 받았다. 지역 차별이라니. 나라에 내야 하는 게 많았다. 무신은 백성을 더 힘들게 했구나. 망이, 망소이의 난 들어봤다. 그건 공주 명학소에서 일어났는데, 여기 사람뿐 아니라 둘레 지역에서도 함께 했던가 보다. 그때 고려 조정에서는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올려주었는데, 뒤에서는 망이와 망소이를 잡고 식구까지 다 잡아 갔단다. 최충헌이 힘을 가졌을 때는 만적이 난을 일으킨다. 만적도 기억하는 이름이구나. 무신 정권이 백년 이어지는 동안 민란이 일흔다섯번이나 일어났단다. 만적이 일으킨 건 신분해방운동이었다. 그 뒤에도 신분제가 그대로였으니 난은 성공하지 못한 거구나. 꼭 성공해야 하는 건 아닌가. 지금 안 되면 언젠가 된다 여기고 하는 게 중요하겠다.


 몽골이 세력을 넓혀가던 시기였다. 몽골은 중국과 서구 유럽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때는 고려가 좀 나았다. 거란군이 몽골군에 쫓겨 고려에 오고 고려가 막다가 몽골군과 함께 거란군을 물리친다. 그때 몽골과 고려가 형제 맹약을 맺는데, 몽골과 고려 생각이 달랐다. 형제다면서 몽골은 고려에 많은 걸 바랐다. 고려는 외교를 잘 하는 나라였던 것 같다. 그때는 그렇게 해도 먹혔을지도. 몽골은 고려에 여러 번 쳐들어온다. 왔다가 돌아가기는 했는데 다섯번째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몽골이 처음 고려에 쳐들어왔을 때 최충헌 아들 최우가 힘을 가졌다. 최우는 몽골과 싸우자면서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자고 한다. 최우가 나라를 생각하고 그런 것보다 자기 힘을 내려놓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하자고 한 거겠지. 그게 아주 안 좋았던 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백성을 생각하고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잔치를 벌이고 놀았다. 그런 돈은 백성이 내는 거였겠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모습 다르지 않구나. 예전 정치인 모습이 지금 정치인한테서도 보이다니. 다 그런 건 아니기를 바라고 싶다.


 첫번째로 몽골이 고려에 쳐들어왔을 때 백성과 함께 싸운 사람은 승려 김윤후였다. 몽골이 두 갈래로 내려와서 한 곳은 잘 안 됐다. 이때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던가 보다. 고려에서 만든 것에는 팔만대장경도 있구나. 김윤후는 스물한해 뒤 몽골이 다섯번째로 고려에 쳐들어왔을 때 충주에서 백성과 맞서 싸운다. 김윤후는 노비 문서를 태우고 백성한테 함께 싸우자고 한다. 이때 그 약속을 지켰단다. 다행스런 일이구나. 조선 시대 임진왜란 때 유성룡이 공이 있는 사람은 신분 해방을 해주고 관직을 주자고 했지만, 그건 잘 안 됐다. 고려는 달랐구나. 이런 건 고려가 더 앞섰다는 생각이 든다.


 원종이 태자일 때 몽골 칸을 만나러 가는데 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원종은 쿠빌라이를 만난다. 쿠빌라이도 이름 잘 알려진 사람이구나. 징키즈 칸 손자로 다음 칸이 된다. 원종이 다른 사람이 아닌 쿠빌라이를 만난 건 고려에 좋은 일이 됐다. 지금까지 고려는 몽골에 저항하고 싸웠다. 몽골은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면 그 나라를 없앴는데, 고려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고려는 당당했다. 그런 게 고려에 좋은 영향을 준 거겠다. 고려가 사라지지 않은 게 다행이고 그때 사람한테 고마워해야겠다. 전쟁하느라 힘들었겠지만. 하지만 몽골 간섭을 받게 된단다. 원종이 몽골과 이야기를 하자 무신 정권 특수부대 같았던 삼별초가 항쟁한다. 삼별초가 처음엔 그리 좋은 게 아니었구나. 이런 거 잘 몰랐다.


 삼별초만 몽골과 싸운 건 아니다. 백성도 함께 삼별초와 몽골에 저항한다.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진도로 진도에서 제주도로 밀려간다. 그런 싸움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하는 게 좋겠다. 삼별초를 물리치고 고려 왕실은 몽골 사람과 결혼하고 정치 간섭을 받게 되다니. 그것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구나. 앞으로 고려는 어떻게 될지.




희선





☆―


이익주 : 김윤후라는 이름은 단순히 두 번의 승리 때문에 기억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의 승리가 모두 처인부곡민들과 충주 산성의 관노들 같은, 보통보다 못한 사람들을 전투에 함께 참여하게 하면서 얻어 낸 승리라는 점에서 더 값진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려가 몽골 침략에 맞서 30년 동안 저항한 것을 두고 이렇게 평가합니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군인이 나와 싸웠는데, 고려는 모든 사람이 나와 싸웠다.”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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