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 문학으로 읽는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
임민경 지음 / 들녘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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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어떤 일을 거치면 스스로 죽고 싶어할까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힘든 일이고, 다음에는 우울증이나 알코올 의존증이에요. 이런저런 일을 겪어도 다시 시작해야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가 그렇게 긍정스런 생각만 하지 않아요. 이 책을 보니 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은 없지만 그전까지 간 적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9년에는 더욱 그러기는 했는데, 그때 있었던 일이나 그때가 지나서 이제는 좀 낫습니다. 하지만 다시 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안나 카레니나처럼 모든 사람한테 안 좋은 눈길을 받은 적은 없지만 오바 요조처럼 어딘가에 소속감 느끼지 못하고 차라리 내가 없으면 낫겠다 하는 생각을 한 일은 있어요. 가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도 빠집니다. 저도 베르테르처럼 덫에 빠져 죽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생각하기도 했어요. 죽으면 편하고 모든 것에서 자유롭겠구나. 그런 생각했는데도 아직 살아 있네요. 사실은 내가 왜 누군가 때문에 죽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있어서예요. 누구 좋으라고 같은. 이런 마음은 뭘지.

 

 소설을 보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나오기도 하죠. 안나 카레니나는 불륜을 저지르고 남편과 헤어지고 브론스키와 살았더군요. 잠깐은 좋았지만 그 시대가 불륜이나 이혼을 그리 좋게 여기지 않은 듯합니다. 그건 여자만 해당하겠군요. 안나는 아들과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나중에 아이를 낳고 죽을 고비를 넘겼지요. 언제가 라디오 방송에서 그 부분 들으면서 안나 괜찮을까 했어요. 안나는 앞날에 희망을 갖지 못하고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져 죽는데. 그때는 그걸 몰랐던 건지. 안나가 처음부터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많은 게 안나가 죽게 만든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다자이 오사무 소설 《인간 실격》에 나오는 오바 요조는 여러 번이나 죽으려다 나중에는 약물에 중독되고 정신병원에 끌려가고 시골에서 요양하는 걸로 끝나는군요. 예전에 한번 봤는데, 요조와 그 소설을 쓴 다자이 오사무를 함께 생각해서 요조도 죽었던가 했군요. 다자이 오사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잖아요. 다자이 오사무가 쓴 소설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이 여러 번 나온 듯해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사람은 그걸 되풀이하고 죽기도 합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을지도.

 

 오래전에 괴테는 자기 경험과 친구 경험을 섞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습니다. 괴테는 그걸 쓰고 다시 보지 않았답니다. 그럴 수가. 괴테 대신 베르테르가 죽어서 괴테는 오래 살았을까요. 그런 게 없지 않을지도. 그 소설 때문에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많았다고 하더군요. 그 책 읽게 하면 안 된다는 말도 나왔답니다. 자살 전염을 베르테르 효과라 하는군요. 그건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걸 따르듯 죽는 것이기도 하더군요. 많은 사람한테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은 힘든 일이 생기면 거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겠어요. 그 사람을 보고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죽기도 한답니다. 죽을 힘으로 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살 힘은 오래 가져야 하지만 죽을 힘은 한번이면 되기는 해요. 이런 말을 하다니. 살아서 하고 싶은 걸 생각하는 걸 보면 죽기보다 살고 싶은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예술가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많군요. 아니 약물중독이나 알코올 의존증으로 죽었다고 해야 할까요. 작가도 있지요. 여기서는 문학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마음을 보고 작가를 말합니다. 실비아 플라스는 공부 잘하고 시인이 되기도 했는데, 자신을 아주 작게 느낀 적도 있더군요. 그 충격이 꽤 컸나 봅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벨자》라 합니다. 실비아 플라스는 한번 죽을 뻔하다 살아나고 그 뒤에는 죽음에서 벗어난 듯했는데, 결혼하고 아이 낳고는 다시 우울증에 빠진 것 같아요. 남편 영향도 있었겠지요. 그러고 보니 이 말 여기에는 나오지 않았군요. 실비아 플라스는 아주 죽으려 한 건 아니었던가 봐요. 죽으려다 살아나는 걸 또 겪으려 하다니. 늘 죽으려던 사람이 다시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사고로 죽는 이야기 생각나는군요. 실비아 플라스가 좀 더 나중에 태어나고 심리치료를 받았다면 나았을지. 그건 모르겠군요.

 

 버지니아 울프는 오랫동안 양극성 장애를 겪었답니다. 이것도 정확한 건 아닐지도 모른답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글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듯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 때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 병이 다시 나타나고 낫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자신을 잘 붙들고 살기 어려운 듯합니다. 둘레 사람이 도와주면 좀 나을지. 하지만 자꾸 안 좋은 모습을 보다보면 마음이 떠날지도 모르겠군요. 양극성 장애는 아주 낫지 않는가 봅니다. 그래도 좋아진답니다. 우울증도 다르지 않군요. 지금 사람은 거의 우울증 조금은 있지 않을까요. 그런 자신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약이나 술로 그때를 벗어나려 하기보다 다른 걸 찾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술 안 좋아하고 약도 안 좋아해요. 그래서 우울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지 않는 걸지도. 저한테 약은 책밖에 없습니다. 걷기도 좋지요. 몸 움직이기. 세로토닌이 모자라도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답니다. 예전에 날마다 죽고 싶다 생각한 건 세로토닌이 모자라서였던 걸지도. 버지니아 울프는 휴식치료라고 오랫동안 누워 지내야 했답니다. 그런 걸 생각한 적도 있다니. 지금은 정신이나 심리치료 많이 좋아졌습니다. 자신이 어쩌지 못할 때는 치료 받아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사람뿐 아니라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우주 법칙이 그렇지요. 누구한테나 죽음은 찾아옵니다. 자신이 그날을 앞당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도 존중해야 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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