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마음산책 짧은 소설
백수린 지음, 주정아 그림 / 마음산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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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잊고 잃어버린 건 뭘까. 지금 생각해도 떠오르는 건 별로 없다. 그렇게 좋았던 때는 없어서. 괜찮았던 때가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 다 지나버려 생각나지 않는다. 별거 없어도 무언가를 꿈꾸던 나. 어릴 때는 거의 그러기는 하는구나. 그때도 그렇게 큰걸 바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도 별일 없이 조용히 지내고 싶다. 일찍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은 이것저것 바라는 거 많을지도 모를 텐데. 무언가를 바라면 그걸 얻으려고 애써야 한다. 난 그러기 싫어서. 몸을 많이 쓰는 것도 힘들고 마음을 많이 쓰는 것도 힘들어서. 난 좀 답답해서 무언가를 하면 그것만 한다. 일을 해도 조금 놀기도 해야 하는데, 난 그런 거 못한다. 이런 말 언젠가 했는데 또 했다. 이 책하고 상관없는 말을 한 것도 같다.

 

 여기에는 짧은 소설이 열세편 담겼다. 마음산책에서 이런 책 여러 권 나왔다. 내가 본 건 정이현 이기호가 쓴 두권이다. 이번이 세번째구나. 백수린이 쓴 짧은 소설은 쓸쓸하면서도 따스하다. 평범한 사람 이야기다. 이 소설에 나온 사람이 어딘가에 살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멋진 날>에서 여자는 결혼하고 두 아이가 있는데, 바닷가에서 낯선 남자가 자신의 발을 예쁘다고 해서 그날을 멋진 날로 기억했다. 누군가와 이야기한 것도 괜찮았겠지.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그렇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머지 이야기도 그리 다르지 않다.

 

 어릴 때는 부모가 멋지게 보이기도 하는데(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부모가 나이 들면 안 좋아질까 걱정하기도 하는구나. 아니 <완벽한 휴가>에서 주희는 공항에서 더위를 피하면서 젊은 시절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때가 그리운 건지도. <그 새벽의 온기>에서 ‘나’는 다음날 일하러 가야 하는데 쉬이 잠들지 못했다. ‘나’는 뒤척이다가 예전에는 누군가 자신과 있었는데 이젠 혼자라는 생각에 쓸쓸함을 느낀다. ‘나’가 뒤척이는데 얼마전에 길에서 데리고 온 개가 ‘나’한테 다가온다. ‘나’는 개한테서 따스함을 느꼈다. <봄날 동물원>에서는 사촌누나가 영수를 만나러 동물원에 오는데 얼마 뒤 사촌누나가 죽는다. 췌장암이었다. 사촌누나는 화가가 그린 그림은 영원히 남는다는 말을 했는데.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한 말이었나 보다. 사촌누나는 어릴 때 외로웠는데. 나중에는 괜찮았을지. 어릴 때 영수가 자신을 잘 따라서 많이 외롭지 않았을 거다.

 

 서로 좋아하고 뭐든 좋아 보이던 시절도 있었는데, 시간이 가면 왜 그런 마음이 덜할까. 사귀는 두 사람 이야기, 사귀다 결혼한 부부 이야기도 나온다. <어떤 끝>은 다시 좋아질 것 같지 않다. 제목부터 ‘어떤 끝’이구나. 그래도 <누구한테나 필요한 비치 타올>에서 부부는 아직 괜찮을 것 같다. 상준은 효진이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엄마와 딸이 프랑스에 떠나기도 한다. 딸은 엄마가 여행을 즐기기를 바라지만 그러지 않는 걸 보고 조금 화를 낸다. 새벽에 딸은 엄마와 아빠가 만난 이야기를 듣고 젊은 엄마와 아빠를 떠올리기도 한다. 잠든 엄마 얼굴을 본 딸은 마음이 풀린다. 이런 일 실제 겪은 사람 있을 듯하다. 다른 나라에 가서도 돈을 아끼려는 엄마 때문에 속상한 자식.

 

 여기 담긴 소설을 보면 슬퍼도 마음이 따스해지기도 한다. 슬픔과 따스함이 담겼다고 해야 할까. 사람이 사는 게 그런 듯하다. 슬픈 일이 있다 해도 아주 작은 일에도 마음이 따스해지지 않나. 그런 일이 있기에 사는 거겠지. 지나가는 시간이 아쉬워도.

 

 

 

희선

 

 

 

 

☆―

 

 상준은 생각했다. 이 세계는 사람들을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고 끊임없이 비참하게 만들고 남한테 잔인해지도록 종용하지만, 이런 세계에 살더라도 그가 아내한테 주고 싶은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비치 타올>에서,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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