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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사람
윤성희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평점 :
드라마를 보면 어린이도 나오지요. 연기하는 사람에는 어릴 때 한 역이 많은 사람 기억에 남아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연기를 그만두는 사람 많겠습니다. 어린이는 몇해만 지나도 많이 자라요. 그렇지 않나요. 사람은 다 그럴 텐데 그걸 잊는 것도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드라마속 아이는 언제나 그대로일 것 같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어른 연기자는 몇해가 흘러도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기도 하잖아요. 오랫동안 안 보다가 보면 달라 보일 테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고 예전에 본 드라마에 나온 아이가 어떻게 됐을까 하고 문득 떠올리는 일도 있을까요. 박형민은 서른여덟해 전에 만든 드라마 <형구네 고물상>에서 진구라는 역을 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찍은 드라마가 마지막이었어요. 그래도 배우였다고 해야겠지요. 한때는 많은 사람 사랑을 받았으니.
소설도 다르지 않지만 드라마를 보면 거기 나온 사람이 어딘가에 사는 것 같기도 하겠습니다. 옛날에는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네요. 지금도 다르지 않겠습니다. 드라마에서 진구는 가난한 집 아이로 늘 동생을 업고 다녔어요. 사람들은 그런 진구를 기특하다고 여겼어요. 진구 역을 한 형민하고는 좀 달랐습니다. 형민은 진구가 되어 동생을 업는 게 힘들었다고 해요. 그 드라마를 찍을 때 형민은 무척 춥고 동상에 걸리기도 해서 그 드라마가 끝난 뒤에 겨울에는 찍지 않고 부잣집 아이 하고 싶다고 했더니 건방지다는 소문이 돌고 더는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는 어른 배우처럼 드라마 찍기 어려울 듯합니다. 어른은 책임감을 갖고 힘들어도 자신이 맡은 역을 해 내려고 하잖아요. 어린이한테는 그런 거 바라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형민은 한동안 형민이 아닌 진구라는 이름을 들었어요. 그게 무척 싫었는데 중학생이 되고는 많은 사람이 진구를 잊었습니다.
어린이 배우로 한때 인기가 있었고 그걸 잊지 못하는 사람이 나오는 이야긴가 했는데 끝까지 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드라마에는 많은 사람이 나오는데 이 소설도 다르지 않습니다. 형민만 나오지 않고 형민이 만나는 사람 이야기도 조금씩 나와요. 형민은 그저 이 세상을 사는 한사람으로 보입니다. 이건 모든 사람이 그렇겠습니다. 형민이 인기 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건 한때고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아니 그렇게 평범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기쁜 일이 있는가 하면 슬픈 일도 많았어요. 아버지는 형민이 어릴 때 죽고 엄마도 나중에 죽고, 헤어진 아내도 죽었습니다. 딸 하영은 다른 친구를 괴롭힌 아이 일곱에서 하나였어요.
형민한테만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건 아니예요. 형민 아버지 어머니, 형민 아내 아내 어머니 아버지. 이 소설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한사람이 관계를 맺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저는 얼마 없군요. 좋은 이야기보다 슬픈 이야기가 더 많아 보여요.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슬픈 거기는 하지요. 실내화 끈이 여러 번 끊어지는 일(실내화에 끈이 있나요. 저는 끈 없는 실내화 신었는데), 자전거 브레이크가 여러 번 고장난 일. 그런 일은 앞으로 일어날 안 좋은 일을 나타내는 것 같았습니다. 형민이 나간 방송은 방송되지 않았을 듯합니다. 사회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든요. 어쩐지 그 일은 갑작스러워 보입니다. 그 사회자가 예전에 저지른 일은 뭐였을지 싶기도 하고, 하나 더 잘 알기 어려운 일이 있군요. 아내가 형민과 헤어지면서 한 말과 형민과 같은 회사에 다니던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한 말. 같은 말이었다는데. 형민은 어떤 일에 맞서기보다 피하는데 어쩌면 그런 일을 말했을지도.
자신한테 일어난 일을 잘 마주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래야 좀 나을 텐데. 저도 잘 못하는 거예요. 형민이 어떤 일을 피할 때 뭐라 하기 어려웠습니다. 형민은 딸인 하영도 잘 몰랐어요. 그건 누구나 그럴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부모도 여럿 나왔습니다. 한사람은 아들이 죽고 한사람은 딸이 사라졌어요. 자신은 열심히 산다 생각해도 그게 가까운 사람한테 전해지지 않기도 합니다. 이 소설에 나온 사람은 다 우리 둘레에 있기도 해요. 평범하고 실수하고 무언가 잘못하면 그걸 오래 끌어안고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이 상냥한 사람이 아닐지.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