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은 하얬다.

 

 책에는 제목도 지은이도 책이 나온 곳도 아무것도 없이 하얬다.

 

 사람들은 책을 보고도 그냥 지나갔다. 아무도 땅바닥에 있는 책을 밟지 않고 들어보지 않았다.

 

 거리가 어둠에 물들자 책 둘레는 부옜다. 부연빛에 이끌린 듯한 여자가 책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책을 폈다. 그러자 여자는 온데간데 없고 하얀색 책만 그 자리에 남았다.

 

 여자가 하얀색 책을 폈을 때 여자 둘레는 달라졌다. 그곳은 여자 기억속이었다. 무척 좋았지만 조금 아쉬웠던 기억속. 여자는 바로 그곳을 알아보았다. 책은 여자한테 “기억속에 가고 싶어?” 하고 물었다. 여자는 바로 “응.” 대답했다.

 

 걱정할 거 없다. 여자가 기억속에 머문 건 단 하루다. 하루가 지나고 여자는 본래 생활로 돌아갔다. 여자는 하얀색 책도 다시 좋았던 기억속에 간 일도 잊었다. 그래도 머릿속 깊숙한 곳에 그 기억이 자리해서 여자는 전보다 밝아졌다.

 

 지금 하얀색 책은 버스 정류장 의자 위에 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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