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 문학동네 시인선 122
배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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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에서 나오는 시집은 색깔이 예쁘기도 한데 검정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장례식을 떠오르게 하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다. 난 배영옥 시인을 몇달 전에 알았다. 우연히. 이 시집이 나왔을 때쯤이 아니었을지. 그때는 배영옥이 세상을 떠나고 한해가 지난 뒤였다. 배영옥 두번째 시집은 배영옥이 세상을 떠나고 1주기를 맞았을 때 나왔다. 그런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겁다. 이름이 잘 알려진 작가의 죽음은 더 많은 사람이 아는데. 2018년에 내가 몰랐던 거고 아는 사람은 알았겠구나.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죽을 텐데. 모든 사람 죽음을 알 수는 없겠다. 난 내가 죽은 걸 다른 사람이 몰랐으면 한다. 아마 알기 어려울 거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다면 ‘어쩌면…….’ 하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나중에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사람 인연은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남는 사람 얼마 없겠다.

 

 어두운 말로 시작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 시인은 세상에 없으니. 시인은 시를 남겨둬서 괜찮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여기 담긴 시를 보고 배영옥을 그리워하겠다. 배영옥와 가깝게 지낸 사람. 발문을 쓴 이영광도 배영옥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로 배영옥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전에 얼굴을 보러 갔다. 그런 시간을 가져서 좀 낫지 않았을까 싶다. 며칠 뒤 배영옥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슬펐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고 괜찮겠지 여긴 사람도 떠날 수 있다. 다 슬프겠지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게 좀 나을 것 같다. 그것도 아니다. 배영옥 어머니는 배영옥이 스무살에 죽었는데 여전히 슬퍼했다. 그런 슬픔은 평생 가겠지. 지금 배영옥은 저세상에서 어머니를 만났을지도.

 

 

 

주인공인

나만 없을 것이다

벅찬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워

일찍 떠났으므로

엉킨 실타래 같은

검은 부재의 바람이 불고

태극기 휘날리고

잿빛 비둘기만 구구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무거운 공기가

이제 진짜 안녕이라며

작별을 고할 것이다

새 없는 공중으로 검은 비가 내릴 것이다

한가한 사람들도 오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인 나만 홀로

슬플 것이다

 

-<훗날 장례식>, 50쪽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느낌은 어떨까. 예전에도 같은 말을 했는데 그럴 때 난 아무것도 안 할 것 같다. 그저 이런저런 생각에 빠질 듯. 지금도 난 못해서 아쉬운 건 없다. 아직 만나지 못한 책이 많구나. 살아 있는 동안 책 많이 보고 글도 쓰고 싶다. 이것도 욕심이구나. 다른 건 없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자신의 장례식에는 자신이 없다. 세상을 떠났으니 없겠지. 장례식은 죽은 사람보다 남은 사람을 위한 거다. 요즘은 죽기 전에 자기 장례식을 치르기도 한다던데. 이건 일본에서만 하는 건가. 죽기 전에 먼저 장례식을 치르면 언제 죽어도 괜찮다 생각할까, 남은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길까.

 

 

 

 어느 날 나는 신원 불명 변사체로 발견될 것이다 뼈만 남은 주검과 대조로 함께 발견된 벌레들은 희고 통통할 것이다 쇠파리떼가 환영한다는 듯 윙윙대며 머리통 주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닐 것이다 검시실로 옮겨지고 행방불명 이름들이 차례로 호명되어도 누구 하나 명확한 사인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함몰된 두개골에 고여 있는 마지막 눈빛 3D 영상 속에서 안면 윤곽과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 온몸의 뼈마디가 갑자기 표정을 얻더라도 내 주검은 아무런 의심도 질문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 국경 밖을 떠돌던 영혼이 실수로 불려나오더라도 아무도 추궁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나 모래도 나는 여전히 신원 불명 변사체로 남을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지워진 실종된 이름의 일부이거나 전부인 나는, 아마 벌레의 족속으로 기록될 것이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벌레의 족속>, 90쪽

 

 

 

 앞에 옮겨 쓴 시를 보니 내 죽음이 생각났다. 여름에 죽지 않아야 할 텐데 싶다. 어쩐지 이 시에서 죽은 사람은 누군가한테 죽임 당한 것 같다. 두개골이 들어갔다고 하니 말이다. 배영옥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썼을까. 신원 불명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여기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시가 여러 편 실렸다. 시를 어느 한 시기에만 쓴 것 같지는 않은데.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하리라는 걸 모를 때 쓴 시도 있을 듯하다. 배영옥은 쿠바에 갔다 오기도 했다. 그때 산문집을 내고 어머니 이야기를 했던가 보다.

 

 

 

다음에, 하고 돌아서는데

너무 많은 다음에 치인 다음이

손사래를 친다

다음이 다음을 기다리는 줄 모르고

기다리는 다음이

영영 세상을 등지는 줄도 모르고

다음에, 다음에 올게요  (<다음에>에서, 65쪽)

 

 

 

 내가 생각하는 ‘다음에’ 와 같은 뜻으로 썼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니 맞겠지. 뒤로 미루는 말 다음에. 그러고 보니 얼마전에 본 시집에는 비슷한 말이 있었다. 거기에는 ‘나중에’가 쓰여 있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다음과 나중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늦지 않아야 할 텐데. 배영옥을 난 늦게 알았구나. 더 일찍 알았다 해도 크게 다를 건 없었겠다. 정 없는 말을 했구나. 중요한 일은 다음으로 미루지 않는 게 좋겠다. 뒤로 미뤄도 괜찮은 일과 바로 해야 하는 걸 잘 알아야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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