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 신동엽 50주기 기념 신동엽문학상 역대 수상자 신작시집
고재종 외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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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엽이라 하면 사람들은 개그맨 신동엽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 시인을 떠올릴까. 개그맨은 알아도 시인 신동엽은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아니 잊어버렸을까. 신동엽 시인 하면 <껍데기는 가라>가 생각난다. 난 그걸 언제 알았을까. 고등학생 때인지 그 뒤인지. 무척 신기하게도 내가 시집과 책을 읽게 되고 한해쯤이 지나고 신동엽 시선집을 샀다. 신동엽 책은 그거 한권밖에 없다. 산 다음에 한번쯤 봤을 텐데. <껍데기는 가라>에는 사월과 동학이 나온다. 왜 내 기억속에는 동학만 있었을까. 동학을 말해서 신동엽이 옛날 시인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신동엽은 1930년 충남 부여에서 나고 1959년에 시인이 되고 1969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예전에도 이런 거 봤을 텐데 다 잊어버렸다. 신동엽이 시를 쓴 기간은 열해다. 시는 그전부터 썼을까. 시뿐 아니라 다른 글도 썼겠다.

 

 시인 이름으로 주는 상도 많겠지. 김수영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이상도 있구나. 이상문학상은 단편소설에만 주던가. 신동엽문학상도 있다. 어쩐지 이 상은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내가 잘 몰랐던 걸지도. 지난해 2018년이 38회였다. 예전에는 시 소설 상관없이 하나에만 줬는데, 제29회(2011)부터는 시집과 소설집에 주었다. 이 시집에는 신동엽문학상을 받은 시인이 쓴 시가 세편씩 실렸다. 모두 스물한사람이다. 2019년은 신동엽 시인이 죽고 쉰해가 된다. 벌써 그렇게 됐구나. 시집도 나오고 소설집도 나왔다. 그리고 《신동엽 시선집》과 《신동엽 산문전집》도 나왔다. 그 사람이 죽고 시간이 흘러도 글은 남아서 나중 사람도 그걸 볼 수 있구나. 신동엽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서기도 하겠다. 지금 세상은 무척 빨리 흐르고 빨리 잊힌다. 그야말로 껍데기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명박근혜 시절

국정원이 위법으로 관리한

문예예술인 249명 중점관리명단을 보았다

A, B, C 등급이 매겨져 있는데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A등급 스물네명에 내 이름이 올라 있었다

열심히 살아온 것을 인정해준

국정원이 고마웠다 B나 C였다면

난 국정원의 존립 이유와

그 파일의 신빙성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자존심>, 송경동, 102쪽

 

 

 

이만원 삼만원짜리

동네 재래시장표 구두만 산다

큰맘 먹고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거금 120만원을 들여

사 신었던 랜드로바

 

공교롭게도 사고 난 며칠 후

기륭전자 앞 포클레인 점거농성에 들어가

벗어두어야 했던 아까운 구두

농성 중 실족해 발뒤꿈치뼈가 부서져

다시 몇개월 병원 수납장에서

심심해야 했던 그 깜찍한 구두

퇴원해서도 한짝은 목발에

내주어야 했던 안타까운 구두

깁스 풀고 신을 만하니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지명수배 생활

슬리퍼에 발 내주고

민주노총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사무실 한쪽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먼지만 쌓여가던 서글픈 구두

다시 부산구치소 영치함에

나와 함께 갇혀 지내야 했던 억울한 구두

보석 석방의 기쁨도 잠시

다시 녹색병원 병실 수납장에서

외롭게 나를 지켜주던 구두

 

언젠가 그 구두를 반짝반짝하게 닦아주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데려다주어야지 했지

낯설고 먼 나라 구경도 시켜주고 싶었지만

늘 또다른 투쟁 현장으로만 끌려다니다

빛 한번 제대로 못 보고

낡아버린 구두 한켤레

 

-<사랑하는 구두>, 송경동, 108쪽~109쪽

 

 

 

 예전 70, 80년대에는 심의라는 게 있었는데 그건 대중음악뿐 아니라 시나 소설에도 있었겠지. 시대가 뒤로 간 적도 있었구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도 있었다니. 송경동은 A, B, C 등급에서 자신이 A등급에 올라있는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웃음이 나면서도 어쩐지 씁쓸하구나. 이제는 이런 거 없기를 바란다. 세상에는 비싼 구두 비싼 옷이 있겠지.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렇게 못한다. 송경동은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비싼 구두를 샀는데 제대로 신지 못했다. 구두 샀을 때는 앞으로 신을 걸 생각하고 기뻐했겠지. 여러 일이 일어나서 못 신고 낡아버리다니. 지금은 구두 잘 신을까. 난 비싼 거 사면 아까워서 못 신을 것 같다. 이런 난 늘 싼 운동화만 신겠구나. 그래도 괜찮다.

 

 

 

장모 떠난 빈집

부추꽃 피었다

오래 베어 먹지 않아서

부추에 꽃이 피었다

 

장모가 무쳐주던 부추겉절이

알싸하게 입안 맴도는데

장모는 먼 길 떠나고

부추꽃만 남았다

 

헝클어진 텃밭 모서리

철없이 부추꽃은 피어

하얀 꽃이 노란 꽃밥 물고

늦가을 벌 나비 부르는데

 

빈집처럼 나는 외로워

마당 헤적이는 바람처럼 외로워

가슴속엔

하얀 별꽃이 진다

 

-<부추꽃>, 윤재철, 132쪽

 

 

 

 식물은 모두 꽃을 피운다. 우리가 먹는 채소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린 꽃을 쉽게 볼 수 없다. 무 파 부추는 꽃이 피기 전에 먹는다. 부추꽃이 핀 건 언제까지고 내버려둬서다. 그걸 거둘 사람이 없어서. 시인 장모는 세상을 떠났으니. 슬프구나. 집도 비었나 보다. 사람이 살다 죽고 집이 비면 집도 쓸쓸하겠다. 부추꽃이 피고 늦가을 벌과 나비가 찾아와도. 쓸쓸한 풍경이다. 시인만 그런 풍경을 보는 건 아니다. 사람은 다 언젠가 누군가 떠난 빈 자리를 본다.

 

 스물한사람이 세편씩 썼는데 옮긴 건 얼마 안 된다. 시집 제목은 신동엽 시인이 쓴 시 제목이기도 하다. 그 시 제목은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다. 오늘 싸워야 괜찮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난 그저 밤이 길어도 아침이 온다고 생각하는구나. 난 나대로 살 수밖에. 누구나 혁명가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그게 별거 아닐지라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혁명이라 했던가. 시나 글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좀 낫겠지. 다는 못 봐도 조금은 볼 거다. 세상은 바로 좋아지지 않는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진다고 믿고 싶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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