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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18 ㅣ 소설 보다
박민정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오는 이 책 ‘소설 보다’는 처음 만났다. 소설은 네편 실렸다. 네편이어서 빨리 보고 써야지 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한국 단편소설이어서. 예전에는 단편소설 보고 아무것도 안 쓰고(다른 책 보고도 거의 안 썼구나), 몇해 전부터 단편 보고도 쓰려 했다. 쓰니까 그 소설을 생각해서 괜찮기도 했는데 여전히 힘들다. 난 언제쯤 단편소설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만난 것 가운데 괜찮았던 게 하나도 없지 않았지만 다 알아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러 사람 소설이 실린 건 《젊은작가상 작품집》만 봤다. 그래도 그걸 보고 여러 소설가 이름을 알고 몇사람 소설집도 만났다. 그렇게 아는 것도 괜찮다. 네사람 박민정 백수린 서이제 정용준 소설에서 서이제 소설은 처음 만났다. 나머지 세사람 소설도 많이 보지는 않았구나.
박민정 소설 <나의 사촌 리사>를 보니 예전에 《젊은작가상 작품집》에서 본 <세실, 주희>가 생각났다. 비슷한 이야기도 아닌데 그러다니. 일본 사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리사는 한국 사람 엄마와 일본 사람 아빠가 부모지만. 그러고 보니 세실이나 리사는 일본스럽지 않은 이름이구나. 실제 일본에는 영어식 이름 쓰는 사람 많은 듯하다. 영어 같은 이름이어도 한자로 쓸 수 있는 것도 있다. 리사는 어렸을 때는 아이돌이었다. 지현은 소설가가 되기 전부터 리사를 소설로 썼다. 그리고 또 리사를 소설로 쓰려 했다. 하지만 소설은 쓰지 못하고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인터뷰를 보니 이 소설은 박민정이 ‘왜 쓰는가’ 하는 대답이라고도 한다. 소설가인 지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잘 봤다면 좋았을까. 리사는 예전에 아이돌이었지만 지금은 평범하게 산다. 그렇게 사는 게 안 좋은 건 아니지 않은가. 리사와 함께 메가미를 한 하루미는 아이돌을 그만두고도 연예계에 남으려 했는데 안 좋은 일을 당한다. 그런 일 소설에만 나오는 건 아닐 거다. 한국에도 아이돌을 내세워 돈을 벌려는 사람 있겠다. 언젠가 노예 계약이라느니 하는 말 본 적 있다. 텔레비전 방송은 좋은 모습만 보여준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다른 나라에서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그곳에서 지내는 게 좀 낫겠지. 백수린 소설 <시간의 궤적>은 ‘나’와 언니가 프랑스에서 만나고 친하게 지내다 멀어지는 이야기다. ‘나’는 프랑스로 공부를 하러 갔고 언니는 대기업 주재원이었다. ‘나’는 프랑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수 없어 결혼한다. ‘나’가 결혼하도록 마음먹게 언니가 말했다. 어쩌면 언니는 ‘나’한테 결혼하라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자기 멋대로 받아들이기도 하니. 왜 여자는 결혼하면 친구 사이가 오래 가지 않는지. 서로가 다르게 생각해설까. 꼭 그런 건 아닐 거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잘 지내면 좋을 텐데. ‘나’가 결혼하고 언니가 결혼하지 않아서 두사람 사이가 멀어진 건 아니겠구나. ‘나’는 앞으로도 프랑스에 살아야 하고 언니는 한국으로 떠나야 해서 그렇게 된 걸지도. 멀리 살아도 친구로 지낼 수 있을 텐데. 결혼하고 남편하고 사이가 삐걱거리면 둘레에서는 아이가 생기면 괜찮을 거다 하는데 그건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이가 생기고 조금 안정 됐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 프랑스말로 자신한테 안 좋은 말을 하리라고 생각한다. ‘나’와 언니 사이는 아주 끝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서이제라는 소설가는 처음 알았다. <미신(迷信)>은 자주 보는 소설과 좀 다르다. 이 소설은 열해전 ‘선생님이 죽고, 그 애가 사라졌을 때,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87쪽)’를 생각하는 듯하다. ‘나’한테 이 군은 자신 때문에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일까. 한사람은 사라지고 한사람은 죽는 일을 겪으면 그 일을 오랫동안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해가 지고, 해가 뜬다. 또 아침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침이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침대에 누워, 가만히 창 밖을 본다. 어떻게 살아온 건지, 모르겠다. 모르면서, 살고 있다. 모르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살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고, 눈은 내리고 있는데, 정말로 시간은 흐르고 있는 걸까. 그날 이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걸까. (<미신>에서, 109쪽)
마지막은 정용준 소설 <사라지는 것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아이가 죽는다면 남은 사람은 힘들겠지. 식구는 서로 자기 탓을 하거나 상대를 탓할지도 모르겠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를 돌볼 때는 아이한테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하다. 집에서도 부모가 잠깐 눈을 떼면 먹지 않아야 하는 걸 먹거나 다치기도 하는데 바깥에는 위험한 게 많으니 더 그래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성수 엄마도 손녀 돌보기 힘들었을 거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를 돌볼 때는 별일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누구 잘못이다 말하기 어려울 거다. 하지만 아무도 탓하지 않을 수 없겠지. 아이를 잃으면 남은 식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을 탓하지 않고 서로를 탓하지도 않고 살기를 바란다. 쉽지 않겠지만. 성수 엄마가 앞으로는 힘 빼고 살았으면 한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