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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ㅣ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이즐라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몇해 전부터 철학에 조금 관심을 가지고 책을 볼까 했는데 그저 생각만 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마음 한쪽에선 그런 거 모르면 어때 하는 생각도 했겠지. 새해가 오면 소설이 아닌 다른 것도 보자 했는데 이젠 그런 생각도 안 한다. 그냥 보고 싶은 거 보자 한다. 아주 가끔 소설이 아닌 것도 보면 좋을 텐데, 어쩐지 갈수록 힘들어지는 듯도 하다. 책을 봐도 남는 게 없어서. 이런 생각으로 책을 보면 안 될 텐데. 읽으면서 잊어버린다 해도 비슷한 걸 자꾸 보다 보면 아주 조금은 남지 않을까. 철학은 단 한번만 봐서는 안 되겠다. 이 책 만화여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겠지 했는데, 기억에 남은 게 별로 없다. 철학자 이름만 기억에 남았다. 본래 이름은 많이 들어보기는 했구나. 처음 본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다.
이 책을 쓴 이즐라는 이걸 쓰려고 몇달 동안 철학책을 봤단다. 이걸 쓰기 전에도 봤겠지. 나도 이즐라처럼 어릴 때는 책을 읽지 않았다. 아니 그때는 책을 몰랐다. 이즐라는 처음부터 철학에 관심을 가졌나 보다. 난 소설과 시를 먼저 봤다. 거기에서 넓혀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재미있는 소설을 보고 나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 시도. 인문에 관심을 가진 건 몇해 전이고 어쩌다 한번 그런 걸 보기도 했다. 공부하는 책 읽기 하고 싶었는데 여전히 그러지 않는구나. 아니 시나 소설에서도 배울 건 있다. 소설로는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고 시에서는 내가 몰랐던 것을 만나기도 한다. 철학이 소설과 시와 동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학문 뿌리는 철학이구나. 철학에서 여러 가지로 갈라졌다. 아주 옛날 사람은 많은 걸 공부했다. 지금 다시 갈라진 걸 합쳐야 한다고 하는구나.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집에 책이 많으면 작가나 철학자가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은 잊어버렸고 존 스튜어트 밀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보았다. 하지만 그게 다 좋지는 않았다. 사람한테는 이성뿐 아니라 감성도 중요하다. 밀은 모자란 감성을 소설로 채웠다. 그리고 사랑. 밀은 남편이 있는 해리엇 테일러와 스무해 동안 플라토닉하게 만나고 해리엇 남편이 죽고 두해 뒤에 결혼한다. 두 사람이 함께 한 건 일곱해다. 밀은 해리엇한테 영향을 받아서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가졌다. 옛날에 그런 사람이 있었구나. 여기 나온 철학자에서 여성은 단 한사람이다. 바로 한나 아렌트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했다.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한 시몬 드 보부아르도 작가면서 철학자인데, 그저 여기 없는 거고 여성 철학자도 있겠지. 나도 잘 모르는구나. 한나 아렌트나 시몬 드 보부아르는 알지만. 알아도 이름만 안다.
사람은 생각한다. 사람만 생각하는 건 아닐지도. 바쁘게 살다보면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기도 할 거다. 그건 괜찮을까, 괜찮지 않겠지. 난 철학자와 이론을 몰라도 철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늘 의심하기다(깨어 있기라고도 하던가). 처음부터 좋은 것도 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좋은 게 좋은 게 아닐 때도 있다. 속지 않으려고 의심하라는 건 아니다. 의심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할 수도 있다. 잘못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다. 이건 공감이라 해야겠구나. 철학은 공감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 그리고 도덕이나 윤리도. 그런 걸 생각하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도 하겠지. 지식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고 진리도 바뀔 수 있다. 철학은 유연성도 갖게 하는구나. 철학을 하면 마음도 넓어질까, 그렇겠지. 가끔 무언가 모자람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걸 철학으로 채울 수 있을지. 앞으로 더 보고 싶기도 한데 그럴지 나도 모르겠다.
희선
☆―
소크라테스에서 데리다에 이르기까지, 결국 철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맞다고 기대하는 것이 정말 타당한가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이다. (3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