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기원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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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기 전에 여기에서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말을 보았다. 몇해 사이 죽음이라는 것을 다른 때보다 더 생각했지만, 그것을 아주 가까이 느끼지 못했는데 지난해(2018)부터 그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런 일도 잇달아서 일어나는 건지. 그저 우연이 겹쳤을 뿐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 때가 사람한테는 찾아올지도. 죽음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고 말하려고 말이다. 삶의 한부분인 죽음이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겠지. 하지만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한다. 누구나 그걸 잘 대비하기는 어려울 거다. 많은 사람이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 여기고 오늘 만난 사람을 내일도 만날 수 있다 여긴다. 내일은 오지 않고 오늘밖에 없는데.

 

 내가 생각한 죽음과 이 책속에 나온 죽음이 같지는 않다. 어느 날 갑자기 많은 사람이 죽고 그게 두려웠는지 몇몇 사람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런 모임에서 만난 사람은 이름보다 알파벳 B C D E라 한다. 한사람이 목숨을 끊으면 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 이름을 기억하자고 한다. 그런 것도 뜻있는 걸까. 이름은 그 사람이 누군지 알게 하는 거겠지. 모두 죽으면 남은 사람이 없어서 죽은 사람 이름을 아무도 모를 것 같은데. 이건 <창백한 무영의 정원>이다. 바이러스가 퍼지고 살려고 어딘가로 떠나는 이야기도 있는데 여기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예언자들>은 세상이 끝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야기다. 왜 세상이 끝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 끝나는 날이 애매하게 남은 듯하다. 적지도 많지도 않달까. 그래도 그 소식은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바이올린 연주자인 여자는 여러 사람과 공연을 했다. 실제 세상이 끝난다고 할 때 마음 편하게 음악을 듣거나 연주할 사람은 얼마나 될지. 여자는 바이올린 네번째 현이 끊어져서 주문을 했는데 그건 오지 않았다. 끝이 다가오는 때 그런 게 잘 올 리 없을 것 같다. 여자는 스스로 바이올린 현을 구하러 악기점에 갔다. 하지만 현은 구하지 못하고 어떤 남자를 만난다. 남자는 사형집행에서 죽지 않고 살았다. 그걸 기적이라 해야 할지. 남자는 시체안치소에서 깨어났다. 세상이 끝난다고 해도 사형집행을 했구나. 시체안치소에서 깨어난 남자와 바이올린 연주하는 여자는 왜 만났을까. 여자는 남자를 아는 듯했다. 여자는 남자가 죽인 사람 식구일지도 모르겠다.

 

 세번째에 나오는 <영의 기원>은 평범한 죽음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 영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집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여럿 나오는구나. 영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나’는 영이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남기고 간 걸 보고 영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영은 편지지에 ‘나’한테 무슨 말을 남기려다 그만둔 건지. ‘나’가 생각하는 영은 숫자 영이면서 죽은 영일 것 같다. 왜 영이 죽었는지 끝내 알 수 없지만. 혹시 영은 ‘나’를 좋아했을까. 갑자기 이런 말을 하다니. 영의 삼촌이 ‘나’한테 그것과 비슷한 말을 해서다. <다섯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는 효주와 선생님이 나누는 편지로 이루어졌다. 효주 엄마가 죽는 걸 선생님이 봐서 두 사람이 만났다. 효주는 엄마가 죽은 것보다 선생님이 말해서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는 말을 한다. 혼자여서 그랬겠지. 선생님은 효주 후견인이 된다. 효주는 아이를 갖고 결혼을 앞두고 엄마 이야기를 알고 싶어한다. 자신이 엄마가 돼서 그런 거겠지. 선생님이 말하는 효주 엄마 죽음은 좀 이상하다. 어쩐지 선생님이 그걸 아름답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죽기 전에 사실을 적은 편지를 남겼다는 걸 알아선가 보다. 효주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선생님과 엄마가 좋아하는 사이였고 엄마가 사고로 죽었다는 걸 알고는. 처음에는 놀라고 선생님을 원망했겠지만 다시 그걸 받아들였을 듯하다.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경멸>에서 화가는 죽지 않는 사람이었다. 미술 기자는 별난 화가 그림을 보고 화가가 죽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화가는 미술 기자한테 그림 모델이 되어달라 하고 그림을 그린다. 얼마 뒤 화가는 미술 기자한테 죽임 당한다. 그건 화가가 꾸민 일이다. 그 뒤 화가는 죽었을까. 죽은 뒤에 화가 그림은 세상에 알려졌다. 화가는 자신이 죽어야 그림이 완성된다고 생각했을지도. <화성, 스위치, 지워진 장면들>에서도 화성을 다녀온 남자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남자 혼자 아내가 화성에 다녀왔다고 믿는 거였다. 실제 아내는 화성에 다녀오지 않았고 남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떤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가 한 어떤 일 때문이겠지.

 

 남은 두 편 <신앙의 계보>와 <사이렌이 울리지 않고>는 다른 이야기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아니 꼭 그렇지는 않다. <사이렌이 울리지 않고>에서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하니 말이다. 죽이려 했다기보다 겁을 주려 한 것일지도. 사람은 다 같은데 더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못가진 사람을 자신보다 낮게 보고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그런 자리는 바뀔 수 있기도 하다. 갑과 을 말이다.

 

 

 

희선

 

 

 

 

☆―

 

 (……)희랍 시인들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벌써 태어났다면 할 수 있는 한 하루라도 빨리 죽어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니. 그러니까 꼭 불행하다고 생각할 건 없어. 그건 남은 사람 몫일 뿐일지도 몰라.  (<영의 기원>에서,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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