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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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한권 보는 데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리다니. 한주가 넘게 책을 보았다. 그건 하루에 한편이나 한편 반쯤 봐서 그런 거기는 하다. 처음에 천천히 봤는데도 집중이 잘 안 돼서 무슨 이야긴지 잘 알 수 없었다. 두번을 보려고 했는데 여섯편만 두번 봤다. 두번째 볼 때는 무슨 이야긴지 조금 알았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는 알기 어려웠다. 단편소설은 왜 한번 봤을 때 알기 어려울까. 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럴 때가 더 많다. 그것도 한국 단편소설은 말이다. 장편이라고 쉽지 않은 것도 있지만. 단편은 길지 않아서 여러 가지를 다 말할 수 없다. 아니 이야기에 따라 다른가. 단편이어도 한사람 삶을 다 담는 이야기도 있다. 그건 아주 중요한 일만 써서 그런 거겠지. 사람 삶을 단편에 다 담기는 어려울 거다. 아니 내 삶은 그럴 수 있을지도, 별일이 없어서 말이다. 이런 말을 하니 여기 담긴 <사연 없는 사람> 이야기가 떠오른다. 갑작스럽게 버스 사고가 나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다쳤다. 신원이 분명한 사람은 여러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는데, 두 팔을 잘린 남자는 지문이 없어서 이름을 알 수 없었다. 남자 옷에는 명함이 한장 있었다. 경찰은 그 명함에 적힌 사람한테 전화를 한다. 하지만 P는 남자가 누군지 모른다. P는 나중에 남자 이야기를 지어낸다. 어쩌면 이야기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한테나 이야기가 있다. 그걸 남이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겠지.

 

 맨 뒤 작가의 말에서 지금까지 구병모는 작가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했단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러 편 나온다. 작가가 나오면 그 소설을 쓴 작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는 하다.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오토포이에시스> 세편을 작가 이야기로 봐도 될지. 하나 더 <사연 없는 사람>에도 작가가 나온다. <오토포이에시스>에서 작가는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생각하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인공지능이 소설을 썼다는 말을 보았는데, 그런 일이 앞으로 더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글을 쓰는 인공지능이 나오고 생각을 하면 사람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인공지능도 나올지 모르겠다. 사람만이 생각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동물도 생각을 아주 안 하는 건 아닐 거다. 본능이 더 앞설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에서는 작가가 글만 쓰지 않고 여러 가지를 한다. 작가라고 해서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을 거다. 여성 작가는 더하겠지. 결혼했다면 아내에 아이가 있다면 엄마 노릇도 해야 한다. 글 쓰기가 일이니 다른 것도 하면서 하면 좋겠지만,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게 힘들겠지. 이상하게 작가는 평범한 사람과 다르다 생각하는 듯도 하다. 생각은 조금 다르게 한다 해도 사는 건 아주 다르지 않을 거다.

 

 공동체라고 해서 다 좋을까. 구병모는 《네 이웃의 식탁》에서 실패한 공동체 이야기를 했다.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도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고 정주 남편 이완은 시골학교로 가게 된다. 잠시 동안(네해)만 있으면 된다 생각하고 둘레에서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겠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실제 시골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거리가 아주 가깝다고 할까 가까이에 사는 사람 일을 다 알려고 한다고 할까. 그런 것에 익숙한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아이를 기르는 데 많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다 좋지만은 않을 거다. 정주가 살게 된 곳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많고 별거 아닌 말을 하기도 했다. 남편 이완은 작은 슈퍼를 하는 최씨가 안 좋은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고 정주한테 조심하라고 한다. 본래부터 살거나 그곳에서 살려고 했다면 정주가 마을 사람한테 먼저 다가갔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도 그저 환상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곳이 있다 해도 어디나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기억에 남는 소설은 <미러리즘>이다. 이건 페미니즘 소설인 듯 싶다. 주사기 테러로 남자가 여자가 된다. 실제는 호르몬제로 남자가 여자가 되는 일은 없겠지. 남자가 여자가 되고 안 좋은 일을 겪는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살고 싶지 않은 사람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은 남자라는 것만으로도 여자보다 나은 힘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여자가 그렇게 안 좋은 건 아니다. 아니겠지. 여자 남자 가르기보다 사람으로 대하면 좋을 텐데 싶다. 서로 다른 건 받아들이고. 해설을 보니 <웨이큰>을 보다보면 세월호가 생각나기도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 말을 보고 보니 정말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다른 일로 그 일을 말하기도 하다니. 그걸 알아봤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는 못했구나. 다른 이야기도 잘 보면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겠지. 여성 엄마 그리고 작가 이야기를 한다. 이것도 해설을 쓴 사람이 한 말인데, 다시 여섯 편을 보니 그런 느낌이 든다. 작가기에 여성이나 엄마라는 걸 말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싶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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