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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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게 괴로울 때가 있다. 그런 책을 많이 만난 건 아니지만. 언제 난 이 일본군 ‘위안부’ 일을 알았던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알았던 것 같다. 그걸 보면서 난 내가 그때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그때 태어났다면 나도 끌려갔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드라마에는 어떤 식으로 조선 여아아이들을 끌고 갔는지는 잘 나오지 않은 듯하다. 여자아이나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끌고 간다는 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숨거나 바라지 않는 결혼을 한 사람도 많을 거다. 잘 피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숨었다 들키면 더 안 좋았겠지. 예전에는 일본군 ‘위안부’라기보다 ‘정신대’라고 알았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고 조선 여자아이들을 끌고 간 곳은 위안소도 있고 공장도 있었다. 피해를 입은 건 조선 여자아이만이 아니다. 일본은 여전히 사과하지 않는구나.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한테 진심으로 사과할 날은 올지. 꼭 와야 한다.

 

 일본이 조선 여자아이를 일본군 ‘위안부’로 삼아야겠다 생각한 것도 나쁘지만, 같은 조선 사람으로 자기 딸 같은 여자아이를 끌고 가거나 속인 건 더 나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그런 사람은 일본에 붙어서 편하게 산 사람이었겠지. 물결 위에 편지를 쓰는 금자도 공 씨한테 속았다. 공 씨는 열세살인 금자한테 비단 짜는 공장에 가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곳에 가서 돈을 벌고 집에도 보내주면 좋지 않느냐고. 금자는 그 말을 들은 밤에 어머니한테 비단 짜는 공장에 가고 싶다고 한다. 어머니는 조금 내키지 않았지만 보낸다. 어머니가 끝까지 보낼 수 없다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머니가 알고 그곳에 보낸 건 아니지만, 금자는 위안소에서 그때 일을 떠올리고 어머니가 왜 자신을 보냈을까 한다. 그래도 어머니를 아주 많이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곳(위안소)에 온 걸까 할 뿐이다.

 

 금자는 어머니 이름도 모르고 집주소도 모르고 글도 모른다. 그래도 물결 위에는 글을 쓸 수 있었다. 끝순은 못으로 흙에 편지를 썼다. 소설이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 있었을 것 같다. 금자가 있는 곳은 ‘낙원위안소’다. 지옥 같은 곳 이름이 낙원이라니. 그런 이름은 그곳 주인인 할아버지가 지었을까. 금자가 처음 간 곳은 ‘세계위안소’였다. 그곳 주인은 자신을 오카상, 어머니라 했다. 진짜 어머니라면 자기 딸한테 일본 군인을 받는 일을 시키지 않을 텐데. 돈 때문에 딸을 판 부모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금자가 낙원위안소에서 만난 여아자이들은 다 속고 그곳에 왔다. 군복 만드는 공장, 고무 만드는 공장, 식모 살러 간다고. 가난하지 않았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지 않았을까. 그렇구나, 가난하지 않은 집안 아이들은 일본군 ‘위안부’는 되지 않았겠다. 여자아이를 속인 사람 딸도. 지금 세상이라고 그런 일이 없는 건 아니구나. 자기 딸은 귀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 딸은 그저 자기 욕망을 채우는 걸로 여기기도 한다. 아이한테 부끄러운 부모가 된다는 건 생각도 못하다니.

 

 일본군 ‘위안부’에는 아이를 갖는 사람도 있었다. 죽은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고, 아이를 가지면 억지로 떼기도 했다. 주인은 여자아이한테 다시는 아이를 갖지 못하게 자궁을 드러내는 수술을 시키기도 했다. 제대로 된 의사한테 수술받지도 못했을 거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잔인하다. 금자도 아이를 가졌다. 금자는 남한테 그 일을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물결 위에 편지를 썼다. 어머니가 그걸 받아볼 수 있기를 바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해도 금자는 어머니가 그 편지를 받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겠지. 금자는 누군가한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거다. 실제로는 남한테 위안소 일을 말하기 어려울 거다. 용기를 갖고 말한 분이 있어서 그때 일을 우리가 아는구나. 그때도 힘들었겠지만 그 말을 할 때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그 분들은 잘못한 게 없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고도 편하게 살지 못했다.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분도 많다.

 

 아기는 하늘이 주는 축복일까. 위안소에서 아이를 갖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여자는 사람도 아니었다. 금자는 아이가 죽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총알이 날아다니는 곳에서는 죽고 싶지 않다 했다. 사람은 본래 그렇구나. 무척 힘들어서 죽고 싶다가도 정말 그런 일이 닥치면 살고 싶어한다. 금자는 아이를 낳았을 것 같다. 그 뒤에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겠지만. 악순 언니처럼 아이를 버렸을지도. 악순 언니는 아이를 버리고 죄책감을 느꼈다. 바라지 않는 아이였다 해도 어머니 마음이 있었겠지. 아이를 빼앗긴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예전에 일어난 일이라 해도 지금과 상관없지 않다.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고 하잖는가. 잊으면 같은 일이 또 일어날 거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있는 나라가 마음을 합쳐서 일본한테 사과를 받으면 좋을 텐데 싶다. 시간은 흘러가고 피해자 분들은 이제 몇분 남지 않았다. 사과를 받는다고 괴로움이나 아픔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다. 아무 말도 못 듣는 것보다는 조금 낫겠지. 시간이 흐른다고 안 좋은 일을 다 흘려보내면 안 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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