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의 작은 부엌칼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문기업 옮김 / 재승출판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을 때는 따스한 이야기다 했다. 다 읽고 나서는 이런 일은 현실에는 없겠지 했다. 오래 여운을 되새기지 못하고 바로 소설일 뿐이야 하다니. 내가 모를 뿐이고 실제로 있을 수도 있겠지. 식구를 생각하는 사람은 많으니까.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고 한 일이 때로는 안 좋게 비칠 수도 있겠지. 부모는 자식한테 억지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하기보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걸 하면 낫지 않을까. 에밀리 엄마가 에밀리 아빠와 헤어지고 여러 사람을 만난 건 에밀리한테 부모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일이었다. 에밀리는 그런 엄마를 그저 남자를 밝히는 사람으로 여겼다. 에밀리는 엄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일하던 곳에서 에밀리는 상사와 불륜을 저지르고 일을 그만두고 우울증에 걸렸을 때 엄마가 아닌 열다섯해나 만나지 않은 외할아버지 집에 간다. 그건 미국에 사는 오빠가 그러면 어떻겠느냐고 해서였다.

 

 불륜을 저질렀을 때 일을 그만두고 욕을 먹는 건 언제나 여자 쪽이다. 에밀리가 사귀던 사람이 결혼했다는 걸 알았을 때 바로 헤어졌다면 좋았겠지만, 에밀리와 사귄 남자는 에밀리한테 아내와 헤어질 테니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그건 거짓말이다. 좋은 말에 속으면 안 되는데. 에밀리가 현실을 제대로 봤다면 많이 힘들지 않았을 거다. 그래도 그 남자 나쁘다. 남자는 왜 그럴까. 아내가 있으면서 다른 여자를 사귀고 아내와 헤어질 생각도 없으면서 곧 헤어질 거다 하다니. 그런 이야기 몇 번 봤다. 실제로도 그런 사람이 있어서 소설에도 나오는 거겠지. 거의 일본소설에서 봤는데 한국은 어떨까. 한국도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같은 곳에서 일하면 여자만 일을 그만두고 욕 먹는 것도 같겠지. 어쩌다가 이 말로 흘렀는지 모르겠다. 부모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자식이 보면 좀더 나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모습 보고 자란 사람이 다 잘 산다고 말할 수 없다.

 

 도쿄에서 일하던 스물다섯살 에밀리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바닷가 마을 다쓰우라에 사는 외할아버지 집으로 오고 함께 산다. 외할아버지 다이조는 에밀리한테 사정은 묻지 않고 에밀리가 온 그날 에밀리와 낚시를 하러 간다. 외할아버지는 에밀리와 함께 잡은 물고기로 에밀리한테 음식을 해준다. 외할아버지가 해준 음식은 에밀리 몸을 따듯하게 해주고 마음도 감싸준다. 그런 음식 아직 난 먹어본 적 없다. 모리사와 아키오는 《무지개곶 찻집》에서 음악과 음식 이야기를 한 걸로 안다. 책은 읽어보지 못했다. 다는 아니지만 모리사와 아키오가 음식 이야기 자주 하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 본 소설에서 엄마가 늘 아이와 있지 않아도 먹을거리를 해주면 아이가 엇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부모가 음식을 잘 해준다고 아이가 다 엇나가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엇나가지 않는 사람이 더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에밀리 엄마도 다른 아빠가 있는 가정을 만들려고 하기보다 에밀리나 에밀리 오빠와 단란하게 살려 했다면 더 좋았을 거다. 바깥에서 보는 난 이렇게 생각해도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은 그걸 깨닫지 못할지도. 그렇다고 에밀리가 아주 안 좋았던 건 아니다.

 

 사람은 왜 남의 말을 하는 걸까.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보이고 들리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어떻다 말하다니. 난 남의 안 좋은 말 하는 거 별로다. 에밀리가 함께 일한 사람 사야는 그런 걸 잘했다. 여자만 남 이야기 잘할까. 그런 식으로 말한 부분이 있어서. 사야는 여름 휴가를 에밀리가 있는 다쓰우라로 오고 에밀리 마음을 안 좋게 만든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사야는 에밀리가 다쓰우라에 온 까닭을 말했다. 다쓰우라는 좁은 곳이다. 그곳 사람도 에밀리 이야기를 하다니. 외할아버지는 그런 말을 듣고도 에밀리한테 별 말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자신은 자신으로 살면 된다 한다. 외할아버지는 오래 살아서 그런 걸 잘 아는구나. 일찍 다른 사람 말에 휩쓸리지 않고 평정심을 지키고 자기 삶을 자기 속도대로 살면 좋을 텐데. 사람은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아니 그걸 알았을 때부터 그렇게 살려고 하면 조금 괜찮을까.

 

 외할아버지와 두 달 정도를 함께 보내고 에밀리는 도쿄로 간다. 외할아버지가 쓰던 부엌칼을 받고. 그건 무척 오래 써서 작아졌다. 근데 칼은 날마다 갈아야 할까. 생선 손질을 해야 해서 그런 건지도. 지금 외할아버지는 풍경 만드는 일을 한다. 음식을 잘해서 잠시 음식점에서 일하기도 한다. 외할아버지는 에밀리가 부엌칼로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기를 바란 걸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려고 음식을 만들 수도 있지만, 먼저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에밀리는 살면서 또 다른 시련에 부딪치기도 하겠지만, 여름 동안 다쓰우라에서 외할아버지와 낚시를 하고 음식을 만들고 외할아버지와 마주앉아 밥을 먹은 기억이 있어서 괜찮을 거다. 언젠가 엄마 마음을 알게 되는 날도 오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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