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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평점 :
난 서울에 살지 않고 서울에 가 본 것도 겨우 두세번이다. 어쩌면 진짜 서울에 간 건 한번이고 두번은 차를 타려고 들른 것일 뿐일지도. 서울에 사는 사람은 서울은 복잡하고 사람이 많은 곳이다 생각해도 지방에 사는 사람은 서울을 구경 가는 곳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난 제대로 못 봤지만. 이건 어디나 비슷할까. 자신이 사는 곳은 별로로 생각하고 다른 곳을 멋지게 여기는 것. 서울은 집값도 비싸고 차가 많아서 살기에 힘들어도 서울에 사는 사람 조금 부럽다. 조금만 힘내면 좋은 것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건 내가 서울에 살지 않아서 이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꼭 그렇지는 않다. 서울에서는 문화행사도 많고 갈 만한 곳도 많다. 그렇지 않은가. 서울에 살아서 좋다 여기는 사람도 많을 거다.
강진 · 해남을 시작해서 일본에도 갔다가 서울로 온 문화유산답사기. 어느 지방이나 우리 문화유산은 남아 있다. 그런 걸 잘 지켜야 할 텐데. 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힘들었던 건 전쟁이 일어났을 때겠지. 한국은 일본 지배를 받은 적도 있다. 그때는 우리 문화유산이 더 몸살을 앓았다. 힘들 때 문화유산을 지키려고 애쓴 사람도 있고 그걸로 돈을 번 사람도 있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 예전에 나라와 백성을 생각한 사람이 많아서 지금 한국이 있고 문화유산도 남아 있겠다. 오래전 것이 지금 남아 있기도 한데 지금 것에서 남을 건 얼마나 될까.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사라지고 불탄 걸 다시 살린 것도 많다. 그건 기록이 있어서 할 수 있겠다. 기록은 정말 중요하다. 조선은 기록을 잘 남겼다.
서울은 조선시대부터 수도였다. 처음에 수도로 삼았다가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다시 서울(한양)을 수도로 삼았다 한다. 언젠가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말도 있었는데 여전히 한국 수도는 서울이다. 서울에 양반이나 평민도 많았겠지만 왕과 왕 식구가 살았다. 왕이 살아서 궁궐을 지었다. 궁궐보다 종묘를 먼저 지었던가. 종묘는 조선 역대 왕과 왕비 혼을 모신 사당이다. 예전에 드라마에서 종묘사직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종묘는 조상을 생각하는 것이고 사직은 백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종묘는 모실 왕이 늘어날 때마다 늘였다고 한다. 겉뿐 아니라 안도 보여주면 더 좋을 텐데 그건 좀 어렵겠지. 옛날에는 보통 사람은 아예 못 봤겠다. 종묘제례도 중요한 것이다. 세종은 예악을 정립하고 <보태평>과 <정대업>을 작곡했단다. 지금도 종묘제례를 볼 수 있다. 5월 첫째주 일요일과 11월 첫째주 토요일에 한다. 그런 말 보면서 조선시대에도 며칠 동안 연습하고 그날 했을까 했다. 연습하고 했겠지. 그거 연습하는 거 즐거웠을지 하기 싫었을지. 사람마다 달랐겠다.
궁궐은 아주 넓다. 궁궐에는 왕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살아서 그랬겠지. 궁궐에 한번 들어가면 죽을 때가 아니면 나올 수 없기도 하다. 이건 궁녀가 그렇던가. 왕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왕은 궁궐에서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그곳에만 있어야 한다. 왕 아들이나 딸로 태어나는 게 그리 좋은 건 아닌 듯하다. 둘레 사람들 힘싸움에 자기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할 테니 말이다. 자기 신분을 어렸을 때부터 받아들이고 백성을 생각하고 살아야겠다 한 사람도 있었겠지. 조선에는 백성을 힘들게 한 왕도 있지만 백성을 많이 생각한 왕도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구나.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가도 있고 자신이 앉을 자리를 지키려는 정치가도 있다. 서울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있다. 다섯 곳이나 있다니. 궁이 옛날 모습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지금도 있어서 다행이다. 유홍준은 서울에 있는 궁을 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올리지 못한 걸 아쉽게 여겼다.
여러 왕이 좋아한 궁은 창덕궁이라 한다. 경복궁은 중국식을 많이 따랐지만 창덕궁은 조선에 맞게 지었다. 창덕궁에는 후원도 있다. 그건 정원이다. 건물 이름은 하나 하나 지었는데 정원은 이름을 짓지 않았구나. 궁에 지은 문이나 건물은 다 이름이 있다. 그러고 보니 연못이나 개천도 이름이 있다. 조선 정원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 해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 창덕궁 건물은 거의 그렇다고 한다. 지금과 아주 다르구나. 조선시대 건축가가 더 건물을 잘 지은 것 같기도 하다. 그때 건축가 이름도 많이 남아 있으면 좋을 텐데 별로 남지 않았겠지. 창덕궁은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가야 한단다. 그건 별로일 듯하다.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때도 있다. 날씨 좋은 가을에 맞춰서 가면 괜찮겠다. 궁에만 사는 왕한테는 정자나 여러 건물이 기분을 바꿔줬을 것 같다.
여기에서 돌아보는 곳은 종묘 창덕궁 창덕궁 후원 그리고 창경궁이다. 창경궁은 일제강점기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되기도 했다. 궁을 그런 식으로 바꾸다니. 그런데 한국전쟁이 끝나고 그곳에 간 사람이 많다고 한다. 동물원과 식물원이었을 때 기억을 가진 사람도 많겠다. 한국전쟁 때 동물을 그냥 두고 갔다니 너무 했다. 제2차 세계전쟁이 일어났을 때 동물을 지킨 사람도 있는데. 창경궁에 많이 심은 벚나무는 여의도로 옮겨 심었다. 창경궁이 수난을 많이 겪었구나. 그래선지 몰라도 창경궁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단다. 예전 그대로가 아니어설까. 아니다, 사람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고궁 공원이 있는 거 괜찮지 않나 싶다. 창경궁 가까운 데 사는 사람 부럽다. 서울대 병원 옥상에서는 창경궁을 내려다 볼 수 있단다. 거기도 참 괜찮겠다.
왕이 사는 궁은 평범한 사람과는 참 먼 곳이다. 지금은 누구나 갈 수 있어서 좋기도 하다. 하지만 왕족 마지막을 생각하면 안 됐다 싶다. 왕으로 힘을 잃었다 해도 조선을 이끌어 오기도 했는데. 정치가는 자기 자리를 빼앗길 것이 무서웠던 걸까. 무엇이든 끝이 난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도 중요하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