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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 토니오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아쉽다. 내가 책을 보면서 어디에서 무엇을 떠올렸는지 잘 몰라서. 이 책을 보기 전에 다른 책을 볼까 한 게 두권 있다. 두권에서 한권은 생텍쥐페리가 쓴 《인간의 대지》다. 사두고 아직 읽지 않아서 이제는 봐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어린 왕자》가 떠오르고 우편 비행사라는 말을 보면 생텍쥐페리가 떠오른다. 어린 왕자를 먼저 떠올렸는지 생텍쥐페리를 먼저 떠올렸는지. 토니오 이름을 다 알파벳으로 썼을 때도 난 그걸 제대로 읽지 못했다. 거기에서 바로 알아본 사람도 있겠구나. 시몬과 데쓰로가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다 했을 때, 그 사람이구나 했겠다. 콘수엘로도 알았겠지. 난 생텍쥐페리는 조금 알았지만 콘수엘로는 잘 몰랐다. 내가 그렇지. 정말 신기하지 않나. 《인간의 대지》를 만나볼까 잠깐 생각했는데 다른 책에서 생텍쥐페리를 만나다니 말이다(이 말 하면 안 될까). 《인간의 대지》 곧 만날 수 있을까.
인터넷 책방에서 정용준 소설 《프롬 토니오》가 나왔다는 걸 봤을 때 조금 관심이 갔다. 그건 책 겉에 있는 고래 때문이었을지도. 고래 배 속에 사람이 든 모습이다. 고래 배 속 하면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트가 생각난다. 제페트는 고래 배 속에 있기도 했다. 자세한 건 잘 모른다. 피노키오는 만화영화와 영화만 보고 책은 읽지 않았다. 나무 인형이었던 피노키오가 진짜 사람이 되는 감동스런 이야기지만. 그 동화를 쓴 시대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썼다고 한다. 어린이한테 거짓말 하면 안 된다고 말하려고 했겠지. 그것만 담긴 게 아니어서 지금도 읽히겠다. 잠깐 다른 말을. 이 책 ‘프롬 토니오’를 읽다가 왜 이때가 1997년 12월인지 조금 깨달았다. 지금이었다면 토니오는 흰수염고래 룸 안에서 나오고 금세 죽었을지도. 2016년 2017년이었다면 생텍쥐페리는 백살이 훨씬 넘는다. 아흔일곱살은 몸이 힘들긴 해도 살아있기는 하겠지. 이런 재미없는 생각을 하다니. 자주 그러는 건 아니다.
포르투갈 화산섬 마데이라 남쪽 바닷가 포르투노브에는 많은 게 떠밀려온다. 어느 날 그곳에 파일럿고래 스물여섯마리와 흰수염고래가 밀려온다. 그 모습을 보던 미국인 화산학자 시몬 엘리엇은 흰수염고래 안에서 무언가 나와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건 사람 같기도 하고 사람을 닮은 생물 같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자 그건 조금씩 사람 모습으로 바뀌고 말도 한다. 나이도 아주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맞다, 그게 바로 토니오다. 토니오Tonnio는 n을 두개 써야 한다. 이걸 봤을 때 n이 두개인 Anne앤이 생각났다(그러고 보니 앤은 e가 붙는 Anne이라고 하는구나). 별로 상관없는 걸 떠올리다니. 토니오가 흰수염고래 룸에서 얼마 안 됐을 때는 물속에 들어갔다 돌아오지 않은 시몬 애인 앨런을 깊은 바닷속에서 만나고 온다. 토니오는 앨런 영혼은 죽지 않고 깊은 바닷속에 있다고 말한다.
시몬은 앨런이 죽지 않았다고 믿고 반년이나 찾아다녔다. 앨런이 깊은 바닷속에서 죽었다는 말을 봤을 때는 그렇게 죽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죽은 몸은 바닷속으로 사라질 테니까. 그러면 누군가 그 사람 장례식을 치르거나 무덤을 만들지 않아도 되겠지. 또 조금 엉뚱한 생각을. 장례식이라는 건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시몬도 죽은 앨런을 보지 못해서 아직 살아있다 여긴 거겠지. 시몬 영혼은 밤마다 앨런을 찾아다녔다.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한 토니오는 바다 깊은 곳에서 앨런을 만나고 앨런이 한 말을 시몬한테 전한다. 시몬은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앨런 목걸이를 보고 토니오가 한 말을 되새기고 믿는다. 영혼이 다른 곳에서 다르게 산다는 것을. 영혼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이어지지 못하겠지만 정말 영혼만이 사는 곳이 있다면 괜찮을 듯하다. 지구에는 아주아주 오래전 것도 여전히 있다. 모습은 다르지만. 사람이 죽어도 모두 사라지지 않고 이 지구에 남는다.
어딘가에 죽은 사람 영혼이 있다는 말도 중요하지만, 토니오가 비행을 하다 바다로 떨어지고 고래를 만나고 유토라는 곳에 다녀오는 이야기도 중요하다. 유토는 신이 만든 곳 같기도 하다. 유토에서 사람은 아주 다른 모습이 되고 자유롭게 산다. 유토는 바다 밑 바다에 있다. 이건 <원피스>에서 본 어인섬을 생각나게 했다. 유토와 어인섬은 다르지만. 유토라는 곳이 자유롭고 좋아 보이지만 그곳에 오래 있다 보면 심심할 것 같다. 우주 법칙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거다. 유토라는 곳도 언젠가는 사라지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달랐다. 사람이 살면서 이런저런 일을 걱정하거나 힘든 일을 겪으면 괴로워도 그런 시련이 살아갈 힘을 줄 거다. 유토에는 번뇌가 없다(유토는 유토피안가). 그곳이 무척 쓸쓸해서 유토에서 우토로 넘어가는 것도 있었다. 토니오도 그저 멈추는 우토에 갔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콘수엘로를 떠올리고 유토로 오고 다시 룸과 함께 세상으로 돌아온다.
아흔일곱살 몸이 된 토니오는 프랑스 그라스로 가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콘수엘로를 만나려고. 더는 이 세상에 없는 콘수엘로지만 토니오가 만났기를 바란다. 난 영혼과 영혼은 만날 수 있을 테니 그때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영혼이라고 해서 여기저기 다니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영혼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토니오는 아직 자신이 살아있을 때 콘수엘로 영혼을 찾으려 한 건 아닐까.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좋겠다 생각했다. 토니오가 콘수엘로를 쓸쓸하게 만들었다고 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을 거다. 콘수엘로는 토니오가 있어서 살아갈 힘을 얻었을 거다. 좋아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해주지 않아도 그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겠지.
희선
☆―
“죽음이 없는 세계는, 끝이 없는 삶은 끔찍한 거야.” (232쪽)
“우리들에게 죽음이 두려운 까닭은 뭘까? 죽는 순간의 아픔? 더 살 수 없다는 아쉬움? 아니야.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혼자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지. 떠나는 자도 남은 자도 같은 까닭으로 두려워하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죽음 저 너머로 떠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속에 데리고 간다네. 남은 자들은 반대로 죽은 자들을 떠나보내지 않고 기억속에 담아 함께 살아가지. 데쓰로 자네처럼 말일세. 그것이 기억이고 추억이야. 그것은 환상이나 환영 같은 것이 아니야. 영혼은 바로 그곳에 머문다네. 그리고 절대 사라지지 않아. 내가 앨런을 만나고 온 것처럼. 만날 수 있지. 아니, 반드시 만나게 되네.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누군가 간절히 찾는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어.” (2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