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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멋진 세상에 태어나 - 일본 문학 ㅣ 다림세계문학 20
후쿠다 다카히로 지음, 이경옥 옮김, 이토 치즈루 그림 / 다림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남한테 말 잘 못하고 친구도 잘 사귀지 못하지만 난 귀도 들리고 눈도 보여. 내 마음대로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어. 그래도 난 내가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건 내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걸까. 나보다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이 많아설까. 이거겠어.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이 많아. 난 한가지도 잘 못하는데,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를 잘해. 그런 게 부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난 하나만 잘해도 좋겠어. 뭐든 잘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잘하든 못하든 해 봐서 잘하기도 하는 걸지도.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도 그걸 처음 했을 때는 잘 못했겠지. 가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야.
듣고 보고 말하기 어렵지 않은 사람은 세상을 배우는 것도 빠르겠지. 듣지 못하거나 못 보는 사람은 세상을 알기 어려울 거야. 아니 비장애인과는 다르게 세상을 받아들이겠어. 난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비장애인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해. 아니 이건 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어. 앞을 못 보거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도 들어. 듣고 보는 사람은 못 듣고 못 보는 사람한테 그걸 보여주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좋은 건 세상에 많잖아. 비장애인이라고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까. 놓치고 사는 거 많겠지. 자신이 제대로 못 보는 것이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싶어.
귀가 들리지 않는 사토미는 듣지 못하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다니고 수화를 하면서도 입으로 말하기도 해. 입으로 말한다고 해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발음이 좋지 않아. 사토미는 자신이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잘 알아듣지 못해서 말하기 싫어해. 그런 사토미가 좋아하는 게 있어. 그건 도서관에서 책읽기야. 사토미가 읽는 책 《죽음 골짜기 여왕》이 책 속에 나오기도 해. 액자식 이야기지. 사토미는 도서관에서 휠체어 탄 할머니를 만나고 책을 소리 내서 읽어. 할머니가 읽어달라고 해서. 사토미는 책읽기 자신 없었지만 할머니한테 책을 읽어드려. 그렇다고 사토미가 바로 자신을 갖지는 않아. 사토미는 집에서 엄마와 언니가 즐겁게 이야기하면 따돌림 당한 느낌을 받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친구 유코가 일반 학교로 가고 꿈을 찾은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기도 해.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거지.
사토미가 읽는 책 《죽음 골짜기 여왕》에는 아픈 엄마가 낫기를 바라고 어쩔 수 없이 죽음 골짜기로 가는 여자아이가 나와. 사토미는 여자아이와 자신이 비슷하다고 생각해. 여자아이는 자신이 죽음 골짜기에 간 걸 집에서 가장 쓸모없어서였다는 말을 들어. 그건 여자아이 마음을 꺾으려는 말이지. 여자아이는 죽음 골짜기에서 여왕을 만나고 용기를 내서 여왕을 구해. 여왕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 잃을까 걱정하고 그걸 가두었어. 사랑은 가두는 게 아니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거다는 말이 생각나는군. 다음은 사토미가 용기를 내야겠지. 사토미 둘레 사람(식구)은 사토미를 많이 생각해. 엄마 아빠 언니가 수화를 하고 사토미와 말하려 해. 그렇다 해도 자신이 모자라다는 걸 느끼는 사람은 그런 걸 잘 못 보기도 해. 사토미는 자신이 듣지 못한다는 것에만 사로잡혔던가봐. 슬픈 일이 있으면 자기 슬픔만 보이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기도 하잖아.
사람은 다른 사람이나 책을 만나고 자라기도 해. 사토미도 책과 휠체어 탄 할머니 그리고 도서관에서 일하는 수염난 아저씨를 만나고 마음을 알게 돼. 도서관에서 일하는 수염난 아저씨는 사토미가 껄끄럽게 여겼는데 실제로는 괜찮은 사람이었어. 멀리에서 보면 어쩐지 사귀기 어려운 사람도 가까이에서 보면 다르기도 하지. 휠체어 탄 할머니한테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딸이 있었어. 할머니는 딸이 어렸을 때 책을 함께 읽었대. 사토미를 보니 딸이 어렸을 때가 생각나서 사토미한테 책을 소리 내서 읽게 했던 거야. 할머니는 사토미가 자신을 갖게 하려는 거 아니었을까. 사토미는 꿈을 갖게 돼. 사서가 돼서 자신처럼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이들한테 책이 주는 힘과 즐거움을 전하고 싶다는. 책은 누구한테나 힘과 즐거움을 주지. 언젠가 사토미는 도서관에서 일하겠지. 벌써 하고 있을까.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