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 수집가의 기이한 책 이야기
가지야마 도시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책은 마물이에요.

 

 여기에 홀리면……. 그래요, 책벌레라고 하나요. 이놈이 들러붙으면 절대로 헤어날 길이 없지요.

 

 나처럼 책 한권 찾으려고 방방곡곡 돌아다니는 바보도 있고, 책 한권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자도 있어요.

 

 이는 절대로 활자의 매력이니 뭐니 하는 것 때문이 아닙니다. 책이에요. 종이책이라고요.

 

 그런데 책을 모으는 사람이 있고, 사도 씨처럼 장정하는 낙으로 사는 사람도 있어요.

 

 이거 재미있지 않습니까?

 

 뭐, 마니아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심리겠지요.  (270~271쪽)

 

 

 어쩌다 보니 책읽기를 좋아하게 됐다. 어렸을 때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책이 가까운 곳에 없어서 책을 몰랐다. 지금도 책이 많지는 않다. 책을 사고 읽은 다음 없어도 괜찮겠다 싶은 책은 바로 파는 사람도 있던데, 그것도 괜찮은 듯하다. 난 책이 얼마 없어서 팔지도 버리지도 못한다. 책은 누군가 읽어야 책이 될 텐데. 내가 다 읽은 책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구나.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오래둔다고 책값이 훌쩍 오를 일 없는 책뿐이다. 그것보다 난 세상에 얼마 안 되는 책이나 오래된 책에는 별로 관심없다. 새책이든 헌책이든 읽기만 하면 된다. 책을 좋아하면 책을 많이 사고 좋은 책을 갖고 있기도 하다는데, 난 그런 쪽은 아니다. 난 대체 뭐지. 앞에서 말했듯 그저 읽는 사람이다. 이제는 읽고 쓴다고 해야겠다. 잘 못 쓰지만.

 

 한국에도 오래된 책이나 세상에 얼마 안 되는 책을 모으는 사람 있을까. 아주 없지 않겠지. 책을 좋아하다 책을 모으게 된 사람도 있고 무언가를 연구하다 오래된 책을 보고 거기에 빠져들기도 하겠지. 책 내용을 무척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다. 이 소설에 나오는 세도리 남작 가사이 기쿠야는 책을 보는 것보다 책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헌책방에서 산 미술전집과 책 바보 가산도를 만나고부터다. 처음에는 책 읽는 것도 좋아했는데 조금 다른 쪽으로 빠져들다니. 그럴 수도 있겠지. 세도리 남작이 어렸을 때 헌책방에서 산 미술전집 속에는 가늘고 긴 머리카락이 있었다. 나라면 그런 거 싫었을 텐데 세도리 남작은 남자여서 그걸 보고 다른 상상을 한 걸까. 고서를 잘 아는 가산도한테서 고서지식이나 우키요에나 니시키에를 배웠다. 세도리 남작은 책을 애인으로 여겼다.

 

 이 소설은 소설가 ‘나’가 세도리 남작 가사이 기쿠야를 만나고, 세도리 남작이 겪은 일을 듣는 형식이다. ‘세도리 남작’이라는 말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서 보았다. 그 책을 쓴 미카미 엔은 이 책을 보고 고서 이야기를 쓰려 했단다. 세도리는 새로 문 연 고서점에 가서 알짜배기 고서만 골라 사는 사람을 말한다. 싸게 산 책을 다른 곳에 비싸게 판다. 가사이 기쿠야는 그걸 잘하고 고서점도 했다. 고서점 하니 교고쿠도도 생각난다. 거기에서는 책 이야기보다 요괴 이야기를 더 많이 하지만. 교고쿠도가 음양사여서 그렇겠다. 가사이 기쿠야가 처음에 찾으려고 한 《요곡백번》 이야기를 보니 그런 일 한국에도 있었겠다 생각했다. 아주 중요한 책인지 모르고 불쏘시개나 휴지로 쓴 일. 그렇게 사라진 책 많겠다.

 

 세도리 남작이 우연히 만난 《프랑스 이야기》에는 뒤에 그 책을 가진 사람이 세 아들한테 남긴 말이 있었다. 금을 어딘가에 묻어두었다는. 세도리 남작은 다른 두 권을 찾았지만 금은 찾지 못했다. 금을 묻었다는 곳에 아파트가 있었다. 아파트 지을 때 다른 사람이 찾았을까. 그 이야기를 보니 부자 아버지가 세 아들한테 포도밭을 물려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세 아들이 사이좋게 포도밭을 일구고 살기를 바라고 포도밭에 보물을 묻어두었다고 한 것 같은데. 이런 이야기였던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이야기 같은 <봄꽃 만개 십삼불탑>. 여기에는 셰익스피어 책 《퍼스트 폴리오》가 나온다. 그 책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서 봐서 조금 반가웠다.

 

 책에 미치고 홀리면 사람을 죽이기도 할까. 오래전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책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게 아니다는 걸 알면 다른 책을 없애기도 한단다. 책이 아닌 책 장정에 미친 사람도 있었다. 뭔가 하나에 미치는 게 나쁘지 않지만 사람은 죽이지 않아야 할 텐데. 재미있으면서도 이상한 이야기다. 이 소설을 쓴 가지야마 도시유키가 일제 강점기에 조선 경성에서 태어나고 중학교까지 다녀선지 여기 실린 소설 한편에는 세도리 남작과 여러 사람이 한국에 고서를 찾으러 오는 이야기도 있다. 정말 신라 왕족이 만든 동전이 있을까.

 

 앞으로도 난 그냥 책을 읽고 쓸까 한다. 난 책이라는 물건보다 책속에 든 것을 더 좋아한다. 책을 모으는 사람도 처음에는 그랬을 텐데. 아주 지나치지 않다면 책 모으기도 즐겁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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