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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아지로소이다
이노우에 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언젠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나쓰메 소세키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보았다. 그때 잘 봤다면 좋았겠지만 잘 못 봤다. 고양이가 사람을 바라보고 이야기 하는 것인데. 그 고양이는 사람 편을 들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람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할 텐데, 고양이가 사람을 보면 그런 마음은 덜하겠지. 고양이나 동물이 사람을 보면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별거 아닌 일에 고집을 내세우고 서로가 더 많이 사지려 싸우는 모습이. 사람은 남보다 자신이 더 잘살려고 하지 않을까. 누구나 그런 건 아니지만. 가지지 못한 사람을 생각하고 조금 더 가진 사람이 자신이 가진 걸 내놓거나 돕기도 한다. 사람이 서로를 불쌍하게 여기면 세상이 좀더 좋아질 텐데.
사람이 사람을 불쌍하게 여겨서 객관성이 없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뒤에서는 그래야 세상이 좀더 괜찮아진다고 하다니. 나도 왜 그렇게 말했는지. 사람이 사람을 풍자 하는 이야기가 아주 없지 않을 거다. 그런 이야기에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느낄 수 있겠지만 동물이 사람을 보는 것과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별로 생각나지 않는데 이런 말을 하다니. 이 책 제목을 보면 나쓰메 소세키 소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본래 제목은 ‘돈 마쓰고로의 생활’이지만. 나쓰메 소세키 소설에 나오는 고양이는 이름 없지 않던가. 돈 마쓰고로는 이름이 있다. 스페인 귀족이 쓰는 ‘돈’이 붙어 있다니 재미있다. 그 이름은 돈 마쓰고로가 사는 집주인이고 소설가인 마쓰자와가 지었다. 돈 마쓰고로가 태어난 곳은 그 집이 아니고 지구과학 선생 집이다. 돈 마쓰고로 형제 둘은 기를 사람이 있었는데 돈 마쓰고로는 못생겨서 키울 사람이 없다 했다. 처음부터 이런 말이. 사람은 겉모습을 보고 동물을 고르기도 한다. 지구과학 선생 부인은 어떻게 할까 하다가 돈 마쓰고로를 나무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워 보낸다.
옛날 이야기에서 아이를 강물에 띄워보내기도 하던데. 소설가 마쓰자와 둘째딸 가즈코가 강물에서 돈 마쓰고로를 구하고 꾀를 내어 돈 마쓰고로와 함께 살게 된다. 돈 마쓰고로가 소설가 집에 간 건 아주 잘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 집에는 책이 많았다. 신기할지도 모르겠지만 돈 마쓰고로는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글도 읽었다. 돈 마쓰고로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도 가서 공부했다. 대단한 개다. 사람과 공부한 건 아니고 건물 바깥에서 몰래 들었다. 돈 마쓰고로는 아는 게 많았다. 돈 마쓰고로가 사는 소설가 집 둘레에는 경찰견을 하다 은퇴한 셰퍼드 킹과 시바개 헤이키치가 있었다. 킹하고는 벼락부자가 어떤지 이야기를 나눈다. 킹은 돈 마쓰고로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자 마음에 들어한다. 돈 마쓰고로 몸에 성흔이 있는 걸 보고 선택받은 개라 했다. 성흔이 있는 개라니 재미있구나.
돈 마쓰고로가 누드 극장에서 주인이 경찰한테 잡혀가 어찌해아 할지 모르던 푸들 오긴을 돕는 거나, 꼬리와 귀가 잘릴 처지에 놓인 불테리어 조타로를 도와주는 건 괜찮았는데, 그 뒤 일은 좀 커진다. 오긴과 조타로가 어딘가에 팔려가서 둘을 구하려고 돈 마쓰고로가 텔레비전 방송에 나가고, 돈 마쓰고로 말을 들은 개들이 찾아온다. 개 가운데는 돈 마쓰고로 만큼 재주가 있는 개가 여럿이었다. 실제 사람을 유괴한 건 아니지만 정치가 아들과 딸을 유괴했다는 편지를 보내고 몸값을 받아내려 했다. 몸값을 어디에 쓸 거냐면 병원 짓는 데 쓴다는 거다. 돈 마쓰고로와 여러 개가 생각한 건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거였다. 사람이 행복하면 개도 행복하다고. 이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기 기분이 좋으면 길을 지나가는 개를 보고도 웃지만, 화가 나면 애꿎은 개한테 화풀이를 한다. 무섭게 보이는 개한테는 그러지 않겠지만. 어쩐지 돈 마쓰고로가 생각하고 하려는 일이 어린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니 혁명가한테는 어린이 같은 면이 있지 않나 싶다. 처음부터 안 될 거야 생각하면 혁명은 일어나지 않겠다.
여기 나오는 돈 마쓰고로는 개가 잘 살게 하려고 혁명하려 한다. 아니 개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과 개가 다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실제 개는 어떨까. 말은 달라도 개가 사람 마음을 알 것 같다. 개만 그런 건 아니겠다. 동물한테도 감정이 있을 거다. 동물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면 좋겠다. 사람은 마음대로 개털을 깎고 옷을 입히고 귀나 꼬리를 자르기도 한다. 개는 그것을 싫어하지 않을까. 개가 짖지 못하게 하려고 성대 수술을 시키는 사람도 있다. 잔인한 사람이다. 사람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구는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