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빨강 모자를 쓴 아이들
김은상 지음 / 멘토프레스 / 2018년 5월
평점 :

폭력과 가난을 이겨낸 한 가족의 실제 이야기.
그것을 소설로 써낸 작가.
글이 너무 예뻤다.
내용은 예쁘지 않았지만 순간순간 나오는 글의 어감이나 느낌이 너무 예뻤다.
나도 모르게 그 글을 따라 적고 있었다.
처음 책을 펼치고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느낌으로 글을 쓸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넘겨보게 된 작가는 남자였다.
글이 여자의 섬세함과 자상함이 느껴졌기에 의외였다.
그리고 다시 책을 읽으면서 남자의 단단한 느낌도 섞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참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면서 예쁜 글을 읽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봄꽃이 보고 싶은 이유가 마지막을 예감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사랑받을 수 있는 한 때가 그리워서 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묻고 대답하는 봄의 시간, 내 삶은 늘 길게 숨을 내쉬고 깊게 숨을 들이마셔도 가파른 낭떠러지에서 흔들거리는 숨결이었기 때문입니다.
아홉 명의 자식을 낳은 여인.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
힘든 가시밭길을 몇 십 년 동안 걸어오다 이제 겨우 남들 사는 것처럼 행복을 노래하며 살아간다.
폭력.
세상에서 가장 의지하고 사랑해야할 사람이 행하는 폭력.
그리고 가난.
그 속에서 그녀는 마지막 선을 넘을까 흔들리기도 했지만 훌륭하게 버텨나갔다.
우리네 어머니의 삶.
왜 그렇게 살았냐고, 그게 나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느냐고 울부짖는 사람들도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하다며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시대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아팠고, 아무도 모르게 병들어갔습니다.
보통 그렇다.
티비 속 드라마에서도 실제 인생에서도.
처절히 숨겨왔다.
아픔.
그녀의 아픔은 가장 나중이다.
마음이 축축하게 젖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운 피부를 가진 아기와는 다르게 전혀 예쁘지 않은 채로, 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된다 느끼는 순간 죄인이 된다.
본인이 산 삶의 무게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항상 죄인이고 짐이다.
그런 모습이 싫다.
행복할까?
예뻤던 그날로 돌아가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을까?
가슴 한구석에 고이 접어 항상 간직하는 아픔.
아마 우리네 어머니의 가슴속에는 그 아픔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밖으로 토해내지 못하는 아픔.
상처.
만나야 하는 인연들은 언젠가 어떻게든 다시 만난다는 말도 있으니까.
행여 다시 만나지 못한다하더라도, 언젠가는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별이 인연의 완성이니까.
삶의 끝자락에 서있는 나와 아내처럼.....
누군가는 뒤늦게 사랑을 가장한 정을 고백해온다.
그것만으로도 살만하다.
하지만 이미 그 말을 듣고 따뜻해지는 가슴의 한구석조차 남아있지 않다.
아니, 이 말은 절대 입 밖으로 나와 귀로 들어갈 수 없다.
그저 마음으로만 느끼고 아는 것이지 실재하지 않는 존재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우리 아버지들의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저 정으로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그렇게는 살지 말라 이야기 한다.
맞는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성공한 어머니지만, 불행한 여자의 삶을 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친절한 사람이지만, 내 가정은 돌보지 않는 남편의 삶도 보았다.
그냥 가슴이 먹먹해졌다.
너무 많은 희생을 한 한 여인의 삶.
너무 많은 아픔을 가진 여인의 삶.
누군가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낸 그녀를 대단하다 칭찬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그녀에게 아이들 번듯하게 다 키우셨네요..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여자로써 그녀에게 예쁜 시절을 왜 그리 보냈느냐 물어보고 싶다.
사랑받고 예쁨 받으며 살아가시라 말하고 싶다.
빨강 모자를 쓴 아이들.
그들은 어머니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