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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구역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6월
평점 :

콜슨 화이트헤드.
익히 들어봤던 작가라 관심이 갔다.
도전적인 작가.
그의 책을 읽으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가득 펼쳐진다.
이번에 나온 책 제 1구역 역시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처음 책의 소개를 읽고 여름에 읽기 좋은 공포물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종말이후의 삶.
전염병으로 인해 감염된 사람들.
그들을 수색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담은 책.
여름이라 더 관심이 갔다.
하지만 책을 읽음과 동시에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염된 사람들과의 싸움이 주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현재의 상황을 끔직해하고, 또 다른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난 붙박이 망령들은 자기들만의 천국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았다.
그곳은 세상의 공격과 악귀들은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가능성만 존재하는 세계였다.
망령이라는 존재는 막연히 나쁘고 해치워야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다 같이 행복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친구이자 이웃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홀린 듯 한 애정, 놀라움, 실망감을 아직 안겨주지 못하고 죽어버린 사람들을 그리워했다.
수치심과 죄책감도 그립고, 멍청한 본능보다 더 고상한 어떤 것이 그의 행동을 이끌던 시대도 그리웠다.
책을 읽으면서 망령이라는 존재와 싸우는 것인지, 나 자신과 싸우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작가가 생각한 전염병은 과연 무엇일까?
좀비로 변해버린 사람들이 과연 좀비인 것일까?
내가 누구의 편에서 어떤 이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나도 좀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의 6.25가 생각이 났다.
가족이고 친구인 한민족을 죽여야 했던 전쟁.
내가 지금 처리하고 있는 좀비는 그저 나쁜 존재인 것일까?
“아이는 이미 충분히 많아.” 그녀가 말했다.
역병 이전에 그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인구과잉에 대해, 좋은 가정이 필요한 수많은 아이들에 대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지구의 자연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목소리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세상에서 무슨 정신으로 아이를 낳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지구 반대편의 오염된 지하수 통계나 질식할 지경인 생태계를 이야기하던 사람들의 말을 마크 스피츠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물음의 답은 하나였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건 괴물뿐이지.”
전염병.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간 이유.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나누는 대화나 생각은 현실과 너무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생존경쟁.
그 힘들고 외로운 싸움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전염병이 돌고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병에 전염되고, 누군가는 이겨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병들어가고, 나는 그들을 밟고 일어서야 하고.
단순히 좀비물이라 하기엔 책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이 혼란스러웠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생존경쟁을 또 다른 시각으로 보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