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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 문예중앙시선 55
임재정 지음 / 문예중앙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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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다층에서 <바누비누 이민 안내>로 우수작품상으로 선정되었을 때 내놓은 시인의 소감을 기억한다.

나는 벽을 마주하는 직업을 가졌다. 
더욱 낮은 자세로 시와 나와 세계에서 면벽! 이런 다짐으로나 갚을 밖에.
깨어 부은 두 손을 맞주무르는 아침마다 늘.

 

벽을 마주 대하여 더욱 낮은 자세로 갚겠다는 시인이어서일까.

이번에 발표된 첫 시집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에서는

눈보다 높이 고개를 들어 꾼 허황된 꿈을 발견할 수 없다.

시집에 엮인 시 중 고도가 인식되는 낱말은 헬리콥터와 십자가 혹은 사다리.

꿈에서나 촛점을 잃고 대상을 쫓아갈 뿐이다.

대신 그는 저수지이거나 지하이거나 변기와 구근이다.

모란과 동백과 참꽃으로 만든 삶의 향기를 침묵으로 흘리면서.

면벽보다는 벽이 얼마나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감정을 숨기고 있는지 

이야기해주려고 벽에 바짝 달라붙어 얼굴을 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스며들어 벽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은주*

나를 볼까 눈을 찔렀다는 너에게
손목을 잘라 보냈다
잡을까 두려웠다고 단면에 썼다
붉은 소포가 검게 얼룩져 되돌아왔다

뉘신지, 저는 눈 찌른 뒤 그 밖의 것들이 열려, 온 데가 꽃일 것 같습니다만

밤하늘엔 온통 검은 속 흰자위 하나

발바닥에 든 초승달을 품다 
떨리는 꼬리를 얻고 나머진 다 잃었던가요

반목하는, 눈 찌른 밤을 손목 자른 밤에 잇느라
뜬눈으로 가로지르던
새 한마리



* 마침내 꽃이 된 이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

 


스패너와의 저녁 식사


 모차르트와 칸트는 잘 몰라요 마구 대하면 물고 열 받
은 만큼 체온이 변할 뿐이죠 스패너 말이에요 내 손바닥엔 
그와 함께한 숱한 언덕과 골짜기로 가득해요 지친 날엔 함
께 사촌이 사는 스페인에 갈 수도, 집시로 가벼워질 수도,
공통적으로 우린 공장 얼룩 비좁은 통풍구 따위에 예민합
니다

 초대합니다 나의 반려물들과 친해져보아요 틱 증세가
있는 사출기는 덩치가 커다랗지만 사춘기고요 스패너는
날렵한 몸매에 입과 항문을 구분하지 않아요 악수할까
요? 융기와 침하를 거듭하는 진화론을 두 손 가득 담아드
리죠

 아홉 시 뉴스를 쓸어 담은 찌개가 끓어요 (패륜이란 내
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 세게
로 지문에 퇴적된 기름때를 문지릅니다 무지개를 문 거품
을 분명한 목소리로 무지개라 부릅니다

 함께 늦은 저녁을, 숟가락에서 마른 모래가 흘러내려요
건기인가 봐요 우리를 맺어준 물결은 어제처럼 흔적뿐
 몇 개의 공장 지나 강을 따라 우린 바다에 닿을까요 출
항을 꿈꾸는 침대가 삐걱댑니다 마침내 스패너는 분무하
는 고래가 되고 나는 검푸른 등을 타고 남태평양을 항해하
는 꿈, 당겨 덮습니다


 

 캐서린의 <빨강의 자서전>에서 주인공 헤라클레스가 이야기한다.

'무하마드 알리에게 콥스 씨라는 코너맨이 있었는데 라운드가 끝나면

둘이 링 로프에 웅크리고 앉아서

시를 썼지'

영화 <패터슨>에서 꼬마 시인이 마중나온 엄마에게 이야기한다.

'에밀리 디킨슨을 좋아하는 버스운전기사를 만났어요'

이야기는 얼마나 세계를 확장시키는가. 


 

'다시 태어날 땐 사물의 몸을 빌릴 것, 뭐가 좋을까?

윤활유를 쳐야하는 것이라면 뭐든!'(마리에서 로렌까지)

 

올리브 식빵을 입에 우겨넣다말고 생각한다.

음. 나도 다시 태어난다면 망치가 어떨까.

머리와 자루가 같은 소재로 된 일체형의 망치,

나는야

녹슬면 커다란 화분이나 땅에 머리를 박고

흙에 철분이나 조금씩 흘리며 연명하는 망치가 되고 싶네.

불안한 영혼따위 없이,

머리를 아무리 세게 부딪쳐도 흔들리는 생각 없이.


 

 밀물을 견디다; 달이 지구로부터 돌아앉듯 나를 피해

당신이 숨는다; 웅크린 자세로 짓는 그믐이라는 당신의

표정; 당신이 들여다본 나란 낭떠러지일 수도 있다는 생

각; 나의 어제에 볼모 잡힌 당신은 이제 어떤 날개를 얻어

불치인 꿈에서 벗어나시려는지

 

(...)

 

 우편함에 날아든 나비를 보았다 내가 지구에서 만난 가

장 눈부신 혼인색, 봄꿈이라는 당신

 나비 겹눈 속 밀물이다, 붉은 폭설이 흩날린다


                                              - 나비 중 부분


 

 

나는 즐거워

세상엔 온통 고장 난 것들뿐이니


                                                      - 시인의 말


나는 상상한다. 

일하다 짬이 날 때 공구를 오른쪽에 내려놓고 메모하는 시인을.

어쩌다 엎지른 종이컵의 커피가 새소리가 되고 전선줄에 전기를 통하게 하고 
간혹 구름을 흔들어 비가 내리게 하는 문장들이 종이에 못처럼 박혔지.

 

진흙과 얼룩과 구릿함과 발꿈치를 든 시인의 시집이다.

'어쩌다 물 냄새에 웅크린 사구의 한 움큼 모래, 밤이면 사막 한가운데 끌려가서 물기란

다 빼앗기고 쫓겨오는' 삶이지만

 지느러미 혹은 지상엔 무효한 양식인 날개로 간절히 가벼워지는 연기의 구도처럼

 가볍게 리드미컬하게 꽃잎을 헤아려 겹겹 구근을 다 알게된 듯한 자세로.

 

는 즐거워

세상은 온통 치받을 것뿐이니.

 

고장난 것은 또 고장나겠지만

결국엔 '삐걱대면서 여기를 떠난다, 안녕'이겠지만

즐겁고 우울한 고장의 세계에서 오늘도 스패너를 들고 건배.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하는 것은 패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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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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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온동물로 산다는 것에 깊은 피로를 느낄 때가 있다.

더위와 추위에 맞서는 육체뿐 아니라 감정도 그 육체의 일을 답습하니 말이다.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 채 통과하기 바쁜 생에서 계절이 '울컥'의 다름아닐 때

분명 시간은 지나갔는데 지나가지 않는 계절이 있다면 어떠할까.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바깥은 여름....의 의미는 그렇게 풀이된다.

바닥이 없는 계절에 푹푹 빠지기에 표면장력으로 세상에 닿지 않고 살아가는 소금쟁이 같은.

지난 계절에 버려져 언제 회수될 지 모르는 사람.

 

자루에 담겨 끈으로 묶인 채 나뭇잎 다 떨군 나무 옆에 덩그마니 버려진 개.

자루 아래 따뜻한 피가 서서히 흘러나와 주변을 적시는 데도 외면당하는.

피의 사연에 손을 대면 피가 전염되리라는 미신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수식어가 없는 눈물, 아프다 발설하지 못하는 통증으로 가득찬 문장들이다.

폭설과 결빙이 심장을 통과하며 흘리는 이야기들이다.

비극이 바라보는 타인의 생을 맑게 한다. 비극적이게도.

 

작가의 손가락을 따라 눈물 몇 방울 떨구다 보면 잊고 있는 타인이라는 단어가 오롯이 떠오르고

달빛이 천처럼 드리워진 테이블 앞에 앉게 된다.

작가는 말한다.

'오래 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책을 덮어도 책 속의 인물들이 가족처럼 이웃처럼 느껴져서 신경이 쓰인다.

사라진 이웃과 묽어진 가족이 그리워서일까.

훗날 이 책의 분위기를 잘 기억하기 위해 하나의 글을 요약한다.

 

          

*노찬성과 에반


찬성이는 트럭운전사였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소년.

휴게소 음식점에서 일하시는 할머니는 퇴근해서 돌아오면 담배 한 대를 물고

 

주여, 저를 용서하소서.... 읊조리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용서가 뭐야? 없던 일로 해달라는 거야? 잊어달라는 거야?

그냥 한번 봐달라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 휴게소에 묶인 채 버려진 강아지에게 얼음을 먹여준다.

손바닥에 에반의 혀가 남긴 분홍의 감촉 때문이었을까.

찬성은 할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로한(?) 강아지를 데려와 에반이라 이름 붙여준다.

이 년이라는 세월 동안 에반은 늙고 소년은 성장한다.

찬성에게 중고 핸드폰이 생기게 되고 거기에 마음을 빼앗긴 찬성은 노쇠한 에반이 예전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 병들어 투병에 가까운 삶을 이어가는 에반에게 안락사를 선물해주고 싶어서 광고전단지를 돌리며 그 비용을 마련하지만 다른 소비의 욕구에 시달린다. 핸드폰을 치장하는 데 조금씩 사용하다가 결국은 턱없이 모자라게 되는 비용.

 

찬성은 이제 자신의 욕망과 타협한다. 자신의 욕구에 찬성한다.

에반에게 안락사가 최고의 선택은 아닐 수도 있어. 나와 함께 지내다가 아프지 않게 죽을 수도 있어. 에반의 통증은 날로 깊어갔고 찬성의 욕구도 커져갔다.

 

어느 날 귀가해보니 에반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자 휴게소로 가보는 찬성.

입구에서 한 자루를 보게 되고 직감적으로 유기견을 처리한 자루임을 알지만 찬성은 생각한다.

찬성은 끈을 풀고 주머니를 열어 에반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루 아래 따뜻한 피가 서서히 흘러나와 주변을 적시고 있었지만 그런 것을 애써 확인할 이유가 없었다.

 

에반이 유기견은 아니었잖아.

식사를 마친 주유소직원들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정말이야, 그 개는 마치 죽으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뛰어든 것 같았다니까.

 


 

극은 예쁜 여인의 눈동자와 개의 코와 사자의 이빨과 뱀의 피부와 독수리의 날개를 가졌다.

얼마나 반짝이는 눈인가. 얼마나 민감한 코인가. 얼마나 빠르게 낚아채던가. 얼마나  매끈하게 날아오르던가. 비극은.

그것의 온전한 외부는 또 얼마나 높이 솟아오르던가.

 

비극에 감염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희극을 쫒아가다가 희극이 원래 비극이었다는 사실을 감지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어왔다.

그리고 늙어가고 있다. 비극이든 희극이든 오늘을 살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주문을 걸며.

소리를 내고 공중을 울리다가 사라지는 음정을 보는 것처럼 그것을 하나의 연주처럼 듣고 보고 견디며.

그러다 주인공이 되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사라진다.

사라질 때만 내가 주인공이었다는 것을 온전히 의식하면서.

희극이라 여겨다오.

가끔은 피할 수 있었던 것과 가끔은 피할 수 없었던 것과 가끔은 선택했던 것들이

하나의 계절이 되고 하나의 사람이 되고 하나의 사고로 남는다.

그 중심에 늘 나는 영문을 모른다는 얼굴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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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를 걷다 - 나를 지우고, 나를 세우는 힐링 여행 산문집
동길산 지음, 조강제 사진 / 예린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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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는 마음속 피안이기도 하며 피안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멀다면 한없이 멀고 가깝다면 한없이 가까운 마음속 포구에 오늘 또 나를 세웁니다.

수평선은 늘 봐도 모르겠습니다. 곡선인지 직선인지. 곡선과 직선을 뛰어넘은

선 너머 선인지.    

 

포구를 걷다, 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동길산 시인과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조강제 사진가 함께 만들어 낸 여행 산문집이다.

부산 포구들에 얽힌 역사와 그곳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들, 잔잔한 사유가 사진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포구를 등지고 선 가이드가 포구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듯 쉽게 읽히며 포구라는

경계의 지점에서 균형을 잡는 사진은 풍경을 돋을새김한다.

글. 동길산 + 사진. 조강제, 라는 나란함에서 알 수 있듯이 글 따로 사진 따로 보아도 포구를

걷다라는 제목은 흐려지지 않는다.

 

 

 

 

부산의 포구는 기분에 따라 쓰임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

어린 날 귀에 바닷물 들어 군인 대신 시인으로 몰아갔다는 추억의 송도 해수욕장,

자신이 미워질 때 찾게 된다는 부산 동해 끝자락 포구 월내,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비린내와 하나가 되는 대변,

들어갈수록 깊어지는 풍광 탓에 겉을 보고 판단한 성급함을 꾸짖게 만드는 공수,

성이 동가인 탓에 늘 동심이며 얼굴은 동안이라는 입심이 오십대엔 통하지 않을까봐

조형!에게 투정을 부리게 되는 월전.

푸르지 않은 것이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갈매기의 눈도 푸른, 마지막 해녀가 물질하는 청사포,

머리가 되라는 세상에 떡하니 꼬리를 내세우는 미포.

 

내가 선 자리, 포구. 포구는 경계다.

물과 뭍의 경계다. 젖음과 젖지 않음의 경계다. 나아감과 돌아옴의 경계다.

 

포구는 경계이기에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발을 뻗는 에너지가 나이먹는 것에 대한 전진같아서 두려워지고

서 있다는 것의 고됨과 먹먹함을 생각하게 된다.

꼭 필요했던 것들이 경계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몇 킬로그램까지 덜어버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포구를 걸었더니 살이 빠지더라는 말은, 왠지 몸이 가벼워졌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말일 것도 같다.

 

 

 

 

풍부한 텍스트를 가진 사진은 포구라는 공간 너머의 시간의 혼돈과 질서를 생각하게 한다.

물고기의 장례식에도 예법은 있어서 그들의 영혼이 떼지어 바다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서로 부딪치지 않게 배열한 어부의 마음과 생의 뜨거움이랄지

오로지 시각에만 집중하게 해 생선 노점도 꽃집처럼 보이게 하는 마술이랄지

고작 낚싯대를 메고 가는 사람들과 갈매기 한 마리의 소품이 고층 스카이라인을 무릉도원처럼

읽히게 하는 낯설음이 있다.

 

 

 

 

부산에는 약 70여 개의 등대가 있다 한다.

그 빛은 40킬로미터까지 뻗어나가며 빨간 등대는 빨간 불을 깜빡거리면서 입항을 유도하고

녹색 불 깜빡이는 흰 등대는 출항하는 배를 도와주는데 육지에서 보면 흰 등대는 우측에,

빨간 등대는 좌측에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다.

 

오륙도가 남해와 동해의 경계이며

해남 땅끝 마을이 남해와 서해의 경계가 된다는 것.

명지엔 바다 아래 장애물을 피해 다니라 꽂아둔 참나무 작대기가 있고

다대포엔 파래 양식에 쓰는 대나무가 꽂혀 있다는 작대기들의 의미, 그리고

정선에 있는 몰운대가 다대포에도 있으니 이른바, 해운대, 태종대, 이기대 등과

함께 부산의 절경으로 꼽힌다는 것도 덩달아 알게 된다.

 

 

 

 

미포의 새벽풍경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배가 나가는 새벽 두세시가 분주하고 배가 들어오는 새벽 여섯 시 또 한 번 분주하다'

배가 고기를 풀어 어물전 난전으로 흥청대느라 완전 분주하다.

한 접시 만 오천원!

새벽 6시에 열리는 시장은 횟집 영업시간과 겹치지 않게 오전 11시에 철시한다.

배려하고 묵인하는 신기루 같은 새벽시장.

제일 느리게 변해서, 거의 변한 것이 없어서 아름답지 아니한가 시인은 묻는다.

 

밑반찬 없이 깻잎,고추, 마늘 초장과 함께 먹는 방어와 쥐고기 회.

자갈치시장에 가면 먹을 수 있다는 4천원 짜리 고등어 구이와 시래기국 정식에 침이 고이는 걸

보니 허풍을 좀 치고 싶어진다.

책 한 권 읽고 부산 사람 다 됐다 아이가.

얼레? 부산의 모든 포구가 낯설지 않다.

 

 

 

 

구를 걷는다는 것은 제 반영을 밀어내며 끌어당기며

자신이 세상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 아닐까 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을 쓰러뜨려 놓고 한 판 질기게 씨름해 보는 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아무나 이겨도 내가 이기는, 아무나 져도 내가 지는 그런 싸움말이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이어폰을 끼고 강허달림의 <하늘과 바다>를 들어보는 것도 참 좋을 일.

나 아닌 모든 나에게,

나를 잊은 모든 나에게 말을 걸어도 좋을 일.

포구에 가고 싶다, 실없이 내뱉게 되도 참 좋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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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 김이설 소설집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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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파리채를 샀다.

마침 모기를 발견하고 채를 들이댄 순간, 퍽, 퍼퍽 불꽃이 튀었고 나는 그 진동에 한동안 멍해졌다. 공감각적으로 남은 충격에 눈과 귀와 손이 얼얼했다.

무언가의 숨통을 끊은 이 느낌. 손바닥을 부딪쳐서 잡았을 때와는 다른 이 전율.

 

잠자리에 들려는데 왜엥 소리가 나자 남편이 전자채를 퍼뜩 가져오란다.

'전율'에 대해 유심히 들었던 남편은 자기가 한 번 해보겠단다.

"나도 손맛을 느껴보고 싶어."

손도 식탐을 느낀다.

 

계형 매춘, 그럼에도 줄어들지 않는 빚,

벗어날 길 없는 가난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이 있는 환경에서 비인간적인 삶을 수용해야하는

여인들이 있다. 비루하고 출구없는 현실에서 어떤 여자는 칼을 들고, 어떤 여자는 또 다시 몸을 들고 나간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수치심이나 모욕감은 개나 줘버리라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전혀 달콤하지 않은, 하지만 마치 전자채를 쥐고 모기를 기다리는 심정이 되게하는 김이설의 소설집을 꿩의 가슴에 칼을 꽂는 한 여인의 말로부터 시작해본다.

 

살아있는 것의 마지막 몸부림은 감정을 북받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그 긴장감은 칼을 들이대자마자 급작스럽게 사라졌다.

움직임이 가라앉아 내 몸이 고요해지면 갑작스러운 공허가 달콤하게 스며들었다.

                                                                  - <순애보> 중

 

* 순애보

 

증거를 대봐, 증거를!

늦게 들어온 엄마는 아빠에게 바락바락 대들었고 아빠는 얼마 후 집을 나갔다.

엄마의 배가 난데없이 불러왔고 어느 날, 엄마와 나는 짐을 챙겨 큰 트럭을 몰고 온 아저씨의 차에 올라탔다. 엄마는 그 아저씨에게 연신 몸을 기댔고 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버려졌다.

 

나는 젖몽오리가 서는 소녀였다.

갓길에 서서 아픈 가슴을 주무르고 있을 때, 한 트럭이 멈췄다.

애야, 거기서 뭐하니.

엄마가 나를 버렸어요.

 

나는 트럭에 올라탔고 아저씨가 건네주는 만두 열 개를 먹었다.

아저씨가 내 허벅지를 지그시 눌렀다. 나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이내 만두값을 지불해야하다는 것을.

 

아빠라 부르라고 했다. 나이 차이를 보면 그게 맞았다.

그 후, 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저씨가 싣고 다니는 꿩고기를 앞장서서 팔았다.

장사는 잘 됐고 나는 가슴이 커졌고 아빠는 점점 더 많이 나를 좋아했다.

 

꿩농장을 샀다. 아빠의 바람대로 아이를 가졌다.

아빠는 여태 해오던 꿩 죽이는 일을 하지 말라고 했다.

내대신 말더듬이 청년 치우가 일을 도와주러 농장에 왔다.

 

나는 밤이면 고속도로 갓길을 자주 걸었다. 항구에 가고 싶었다.

휴게소에서 갈길이 멀다며 오줌을 누고 오라던 엄마가, 오줌을 누고 나오자 찾을 수 없던 엄마가 향하던 곳이 항구였다. 항구에는 도대체 뭐가 있길래.

트럭이 와서 멈춰섰다. 얼마야? 하고 물었다. 대답은 늘 똑같았다.

항구로 데려다줘요. 그러면 원하는 대로 해줄께요.

 

나름 고속도로에서 유명한 여자가 되어있을 무렵,

갓길에 한 트럭이 섰고 그 안엔 치우가 타고 있었다. 서로 무척 놀랐지만 나는 평상시와 같이 말했다.

항구로 데려다 줘.

 

치우는 같이 도망가자고 했다. 아빠도 치우와의 밀회를 눈치해고 있었다.

딸을 낳고 몸이 회복되자 아빠는 말했다.

성실한 아이야. 치우를 따라가.

빨리 어른이 되어 아빠를 떠나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그렇지만 이제 와서 환갑이 다 된 아빠를 떠날 수 없었다.

아니 떠날 이유가 없었다.

 

치우는 보챘다. 좀 야멸차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요, 지,금, 나,랑,같,이,가,요, 사,랑, 한, 다, 구,요, 아,이,도, 예, 뻐, 할, 께,요.

너같은 병신아빠를 두느니 차라리 혼자 키우겠어.

나,를,미.치.게.하.지.말.아.요.

 

진짜 아빠도 나를 버렸고 가짜 아빠도 나를 버리려 한다.

또 내쫓기고 내동댕이 쳐지려한다. 버림 받는 건 한 번이면 족하다.

아빠를 죽이겠어. 칼을 들었다.

쪼그리고 앉아있는 아빠의 등을 향해 돌진했다.

아빠의 팔이 스쳤다. 아빠는 울고 있었다.

 

어디선가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담긴 비명이었다.

이내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아이에게 가보니 아이가 사지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온통 피범벅이었다.

아이의 머리맡, 고인 핏물 속에 아이의 잘린 혀가 놓여있었다.

치우는 보이지 않았다.

 

* 환상통

 

서른, 칠년 연애 끝에 동갑내기 그 이와 결혼했다.

늦은 나이였기에 양쪽 집안에서는 아이를 보챘다. 하지만 나는 그리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 가보라는 시어머니의 권고를 못이겨 검진을 해본 결과 자궁암이 발견됐다.

 

첫 항암 치료를 앞둔 며칠 전, 남편 생일 선물로 구두를 선물해주었다.

결코 견딜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열 세 번의 항암치료를 조용히 묵묵히 받아들였다.

마지막 치료를 마친 퇴원 전 날, 시어머니가 오셨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 말 없이 손을 오래 잡았다가 가셨다.

아들 하나 밖에 없는 어머니의 등이 아팠다. 남편과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남편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치료 받는 동안 나는 내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고 남편을 볼 면목이 없어졌다.

나는 단호했다. 그는 계속 찾아왔다.

 

완치 판정을 받은 후 혹시나 싶어 친정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갔다.

자궁암 3기였다.

내 병간호를 하느라 치료시기를 놓쳐버렸다. 후회할 시간이 없었다.

엄마는 빠르게 피폐해져 갔다.

남편은 엄마의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지켜줬다.

 

삼우제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찻잔을 두고  앉았을 때 정적을 깨고 남편 전화기가 울렸다.

고개를 돌렸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

나는 말했다.

나 괜찮아, 어서 가봐.

 

몇 년 후,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간 날, 남편을 보았다.

반가워서 손을 들 뻔 했는데 그 옆에는 만삭의 여인이 있었다.

불룩한 배가 햇빛에 반짝였다. 눈이 부셔서 시큰했다.

남편과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빠져 나와 암병동으로 들어섰다.

어디선가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에 배가 아팠다.

 

 

름처럼 그녀는 좀 다른 이야기(異說)를 하고 싶었을까.

한 편의 이야기들이 끝날 때마다 땀이 조금씩 솟아올랐고, 딸칵, 몸 어디선가 주차브레이크를 올려지는 듯 했고 그래서 멈췄고 선풍기의 도움을 받아서 땀을 식힐 생각은 나지 않았다.

얘기가 충분히 서늘했으므로.

 

닭집 여자. 늙은 조연 뮤지컬 배우, 노숙하는 소녀, 대리모, 삶을 관리 하는 여자, 자발적 백수(유일한 남자주인공) 이야기가 있지만 이쯤 하련다. 전자채를 남편에게 쥐어준 것처럼 김이설의 '손맛'을 제대로 느껴보시라 남겨둔다.

(어쩌다 이 부분만 보신 분에게 한마디. 이거 맛집소개 아닙니다!)

그녀가 자신만의 행복추구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느껴보기 바란다.

 

행복을 추구하려해도 길이 막혀버린 사람들,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불행해지는 사람들,

어렸을 때 어른들은 번듯하지 못한 직업의 사람들을 보면 작고 은밀하게 이렇게 말했다.

공부 안하면 저렇게 된다,

도대체 어떤 공부를 안했기 때문이라는 걸까.

자신들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댓가를 요구하는 공부?

성폭력과 존엄성이 묵살되는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공부?

자본에 복종하며 실패에 젖어있는 삶에 대해 우리도 그 옛날의 어른들처럼 똑같이 말할 수 밖에 없을까.

 

어느 새 매미소리는 그치지 않는 효과음으로 집안을 파고든다.

눈을 들면 잠자리떼들이 여지없이 출몰한다.

잠자리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자 그 움직임이 커진다.

우두커니가 된다. 

당신, 이게 단지 소설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니?

과연 당신은 이런 삶에서 얼마나 멀리 있니?

 

타인의 행복추구가 보장될 때 나의 행복도 추구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을 실천하려면 얼마나 더 성숙해져야 하는 걸까. 다만 이 책을 읽는 당신들은 비루한 삶 위에 군림하며 그 삶을 등쳐먹는 야비한 '손맛'을 부디 모르는 사람이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렇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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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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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의연하지만 우선 봄의 성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봄은 구부러짐과 웅크림과 비어있음을 펴고 채워준다. 꽃이 핀다. 아름답다. 싱그러움으로 세상을 덮는다. 마음이 열리고 가벼워진다. 웃음과 감동의 시간이 많아진다.

그런 봄에 어디로 가있었길래 없었다는 것일까. 저 여자는 왜 타인의 봄에 속하지 못한 채 얼굴 없는 모습으로 표지에 도도하게 앉아있는 것일까.

 

조앤 스쿠다모어라는 중년여인이 있다. 그녀는 주(州)의 원예가협회 총무를 맡고 있고 지역 병원의 이사이고 지역단체와 걸스타우트 일도 돕고 있다. 성공한 변호사 로드니 스쿠다모어의 아내로써 또 나름 꿀리지 않는 자식들의 엄마로써 올바른 양육과 성공한 인생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자식들을 키우면서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고비를 자신의 지혜로 훌쩍 넘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큰 딸 에이버릴이 아픈 아내를 가진 스무살 연상의 의사와 내연의 관계에 있을 때도 남편과 합작하여 그들을 보기좋게 갈라놓지 않았던가. 이젠 부유하고 멋진 주식중개인과 정상적인 결혼을 했으니 안심이다. 부모로써의 사랑은 잃었지만 존경마저 잃지는 않았으니 그것으로 만족이다. 차갑고 이성적인 성격이야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들 토니 또한 성에는 안차지만 멀리 떨어진 주에서 큰 오렌지농장을 경영하고 있고 그 곳에서 결혼을 해 잘 살고 있다. 부모에게 얼굴 한 번 보이지 않은 여자와 결혼했고 부모와 교류가 없어도 상관이 없다는듯 살아가는 게 좀 못마땅하지만 잘 살고 있다니 그런데로 만족이다.

 

막내딸 바버라는 학창시절 못된 친구들과 어울리며 남자보는 눈도 지지리도 없어서 속을 썩이더니만 괜찮은 남자가 나타나자마자 그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바그다드에 살고 있다. 그것도 대충 만족이다. 한 때는 남편도 농부가 되고 싶다느니 하는 현실감각 떨어지는 소리를 해댄 적이 있으나 그녀의 단호한 잔소리로 꿋꿋하게 변호사로써의 길을 계속 걷고 있다. 다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삶이다. 무엇보다 남들도 그녀의 삶을 부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막내딸이 크게 아픈 바람에 조앤은 바그다드로 달려가 딸을 회복시키고 필요한 모든 일을 해결해주고 육 주만에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 곳에 있는 숙소에서 고교시절에 잘 나가던 동창 한 명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못알아볼 정도로 늙어보이고 형편없다. 애써 얘기를 나눠보니 이건 삶 자체가 형편없다. 남편은 벌써 몇 번이나 갈아치웠고 사랑을 위한답시고 애들도 팽개쳤다. 이런 저질인생같으니라구.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입을 놀리기는. 쯧쯧쯧

하지만 그 친구는 말한다.

"난 별로 내 삶에 후회가 없어." 그리고는 이상한 말을 던진다.

"어머, 그 귀여운 바버라가 네 막내딸이었구나. 불행한 가정에서 도망치려고 처음 청혼한 남자와 결혼해서 여기 왔다는 소문의 그 여자가. 그리고 이젠 다 지나갔으니 괜찮을꺼야."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네 남편도 시간만 나면 한 눈을 팔려고 노력했었잖니, 왜."

도저히 말을 섞을 인간이 못되는 것 같아 조앤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날씨가 좋지 않은데 아마 며칠 묶일 지도 모르겠구나. 좋은 여행 해라.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

 

입방정이었을까. 큰 비가 계속 오는 바람에 육로를 통해 가고 있던 조앤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염려했던 대로 열차가 끊겨 사막에서 며칠 머무르게 된 것이다.

 

사막은 이상하다. 동굴에서 뱀이 기어나오듯 생각들이, 평소엔 눌러두고 닫아두었던 생각들이 튀어나온다. 가져온 책은 다 읽었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고 매끼니마다 복숭아통조림과 오믈렛을 먹고 있다. 황량한 풍경을 산책하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는 이 곳에서 조앤은 자신의 가면을 벗기 시작한다. 아니 가만히 있고 싶은데 누군가 사정없이 그녀의 얼굴에서 가면을 뜯어내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인정하되 좋아하지는 않았으며 아이들은 피하고 숨으려했고 심지어 막내딸은 나로부터 도망가지 않았는가. 아들도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큰 딸은 한 번도 진심어린 미소따위 주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사랑하는 남편 로드니도 이상한 말을 많이 했다. 그것은 분명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별반 내세울 것 없는 여자를.

남편이 교도소에 가있는 동안 대신 살림을 꾸리다 병을 얻어 죽게 된 묘한 생김새의 여자.

입양해 번듯하게 키워주겠다는 넉넉한 식구들의 제안을 뿌리치고 아이들을 옆에 끼고 있던 여자.

자식들을 망치려고 작정한 그 여자말이다.

남편 로드니는 그 여자를 사랑했던 것 같다. 그 여자가 용기가 있다고 했지. 맞아, 용기만 가지고 살 수는 없지요, 했더니만 나더러 불쌍한 조앤이라고 했어. 오, 내가 잘못했던 거야.

 

로드니가 얼마나 도시의 삶을 싫어하는지, 그는 얼마나 농부가 되고 싶어했는지.

나는 그의 꿈을 짓밟았던거야. 나는 오로지 성공하는 남편을 갖기 위해, 내로라하는 자식의 부모가 되기 위해 아이들을 이해하기보다는 일방으로 가르치기만 하던 엄마였던 거야. 이제 돌아가면 로드니에게 잘못했다고 해야겠어.

용서해달라고 해야겠어. 시간이 없어. 시간이. 기차는 도대체 언제 오는거지.

 

육 주만에 돌아온 아내를 맞는 로드니의 에필로그를 우리는 새겨야한다.

"휴가는 끝났어."

로드니는 진정 행복한 육 주였다고 생각한다. 왓킨스와 밀스를 만날 수 있었고, 하그레이브 테일러와도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많지는 않지만 친구 몇몇이 모였다. 일요일이면 언덕으로 상쾌한 산책을 나갔다. 하인들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줬고, 그는 책에 음료수병을 받치고 원하는 만큼만 천천히 마셨다. 때로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일을 마무리한 다음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쓸쓸할 경우를 대비해 가상의 레슬리를 친구 삼아 의자에 앉혀두었다.                - 256p

 

소설은 진실을 알면서도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을 기만할 수도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통찰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탐정소설로 그녀의 영역을 굳힌 후,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서정소설이다. 쉽게 읽히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목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 한 일본소설의 장면이 겹친다.

너무나 맞지 않아 별거를 하게 된 한 부부가 왜 별거를 하게 되었는지 이유조차 희미해졌을 즈음, 데이트를 하게 된다. 데이트 끝에 아내는 남편의 취향대로 꾸며진 그의 집에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새로운 그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여자는 결혼하기 전 남편의 취향이 배어있던 그의 하숙방을 기억해낸다. 그의 향기로 가득했던 그 신비롭고 희열에 가득찼던 공간을.

 

내 취향대로 가구를 세팅하고 삶의 방식을 세팅하고 부부의 관계를 세팅하고 아이들의 입맛을 조종하고 교우관계를 조종하고 공부의 방식을 조종해서 얻어지는 보람은 분명히 있다. 그렇다. 그것은 보람이다. 취향의 성취이다. 하지만 분명 타자와 함께 누리는 즐거움은 아니다. 

내 취향으로 채워진다면 만족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삶의 경이로움은 실종된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때 나는 타인에게 어떤 계절이 되는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소설 속의 아내처럼 나도 돌이켜본다.

남편이 되기 전의 낯설디 낯설은 그의 취향은 내게 얼마나 떨림이었던가.

그 떨림에 진동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촉수를 세웠던가.

봄에 나는 없었다,는 나의 이야기였다. 깨닫되 인정하지 않고 있던 가면이야기였다.

그리고 고백하게 되었다.

타인의 취향이야말로 삶에 흥분을 멈추지 않게 하는 모험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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