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를 걷다 - 나를 지우고, 나를 세우는 힐링 여행 산문집
동길산 지음, 조강제 사진 / 예린원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포구는 마음속 피안이기도 하며 피안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멀다면 한없이 멀고 가깝다면 한없이 가까운 마음속 포구에 오늘 또 나를 세웁니다.

수평선은 늘 봐도 모르겠습니다. 곡선인지 직선인지. 곡선과 직선을 뛰어넘은

선 너머 선인지.    

 

포구를 걷다, 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동길산 시인과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조강제 사진가 함께 만들어 낸 여행 산문집이다.

부산 포구들에 얽힌 역사와 그곳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들, 잔잔한 사유가 사진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포구를 등지고 선 가이드가 포구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듯 쉽게 읽히며 포구라는

경계의 지점에서 균형을 잡는 사진은 풍경을 돋을새김한다.

글. 동길산 + 사진. 조강제, 라는 나란함에서 알 수 있듯이 글 따로 사진 따로 보아도 포구를

걷다라는 제목은 흐려지지 않는다.

 

 

 

 

부산의 포구는 기분에 따라 쓰임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

어린 날 귀에 바닷물 들어 군인 대신 시인으로 몰아갔다는 추억의 송도 해수욕장,

자신이 미워질 때 찾게 된다는 부산 동해 끝자락 포구 월내,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비린내와 하나가 되는 대변,

들어갈수록 깊어지는 풍광 탓에 겉을 보고 판단한 성급함을 꾸짖게 만드는 공수,

성이 동가인 탓에 늘 동심이며 얼굴은 동안이라는 입심이 오십대엔 통하지 않을까봐

조형!에게 투정을 부리게 되는 월전.

푸르지 않은 것이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갈매기의 눈도 푸른, 마지막 해녀가 물질하는 청사포,

머리가 되라는 세상에 떡하니 꼬리를 내세우는 미포.

 

내가 선 자리, 포구. 포구는 경계다.

물과 뭍의 경계다. 젖음과 젖지 않음의 경계다. 나아감과 돌아옴의 경계다.

 

포구는 경계이기에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발을 뻗는 에너지가 나이먹는 것에 대한 전진같아서 두려워지고

서 있다는 것의 고됨과 먹먹함을 생각하게 된다.

꼭 필요했던 것들이 경계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몇 킬로그램까지 덜어버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포구를 걸었더니 살이 빠지더라는 말은, 왠지 몸이 가벼워졌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말일 것도 같다.

 

 

 

 

풍부한 텍스트를 가진 사진은 포구라는 공간 너머의 시간의 혼돈과 질서를 생각하게 한다.

물고기의 장례식에도 예법은 있어서 그들의 영혼이 떼지어 바다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서로 부딪치지 않게 배열한 어부의 마음과 생의 뜨거움이랄지

오로지 시각에만 집중하게 해 생선 노점도 꽃집처럼 보이게 하는 마술이랄지

고작 낚싯대를 메고 가는 사람들과 갈매기 한 마리의 소품이 고층 스카이라인을 무릉도원처럼

읽히게 하는 낯설음이 있다.

 

 

 

 

부산에는 약 70여 개의 등대가 있다 한다.

그 빛은 40킬로미터까지 뻗어나가며 빨간 등대는 빨간 불을 깜빡거리면서 입항을 유도하고

녹색 불 깜빡이는 흰 등대는 출항하는 배를 도와주는데 육지에서 보면 흰 등대는 우측에,

빨간 등대는 좌측에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다.

 

오륙도가 남해와 동해의 경계이며

해남 땅끝 마을이 남해와 서해의 경계가 된다는 것.

명지엔 바다 아래 장애물을 피해 다니라 꽂아둔 참나무 작대기가 있고

다대포엔 파래 양식에 쓰는 대나무가 꽂혀 있다는 작대기들의 의미, 그리고

정선에 있는 몰운대가 다대포에도 있으니 이른바, 해운대, 태종대, 이기대 등과

함께 부산의 절경으로 꼽힌다는 것도 덩달아 알게 된다.

 

 

 

 

미포의 새벽풍경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배가 나가는 새벽 두세시가 분주하고 배가 들어오는 새벽 여섯 시 또 한 번 분주하다'

배가 고기를 풀어 어물전 난전으로 흥청대느라 완전 분주하다.

한 접시 만 오천원!

새벽 6시에 열리는 시장은 횟집 영업시간과 겹치지 않게 오전 11시에 철시한다.

배려하고 묵인하는 신기루 같은 새벽시장.

제일 느리게 변해서, 거의 변한 것이 없어서 아름답지 아니한가 시인은 묻는다.

 

밑반찬 없이 깻잎,고추, 마늘 초장과 함께 먹는 방어와 쥐고기 회.

자갈치시장에 가면 먹을 수 있다는 4천원 짜리 고등어 구이와 시래기국 정식에 침이 고이는 걸

보니 허풍을 좀 치고 싶어진다.

책 한 권 읽고 부산 사람 다 됐다 아이가.

얼레? 부산의 모든 포구가 낯설지 않다.

 

 

 

 

구를 걷는다는 것은 제 반영을 밀어내며 끌어당기며

자신이 세상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 아닐까 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을 쓰러뜨려 놓고 한 판 질기게 씨름해 보는 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아무나 이겨도 내가 이기는, 아무나 져도 내가 지는 그런 싸움말이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이어폰을 끼고 강허달림의 <하늘과 바다>를 들어보는 것도 참 좋을 일.

나 아닌 모든 나에게,

나를 잊은 모든 나에게 말을 걸어도 좋을 일.

포구에 가고 싶다, 실없이 내뱉게 되도 참 좋을 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