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220422
-<도덕형이상학의 기초>의 목표는 도덕성과 관련해 일반인들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신념들을 제시하는 것

- 무조건적인 선과 본래적 선
: 본래적 선은 오직 그 자체로 그것만으로 선한 것으로 도구적 선과 대조됨. 본래적 선으로는 행복, 쾌락 등이 있음. 그러나 이것들은 어떤 상황 하에서는 선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행복은 사람으로 하여금 거만, 자만에 빠지게 할 수도 있음)
: 무조건적 선은 그것의 선함을 부정할 수 있는 어떤 조건도 존재하지 않는 선. 선의지뿐임.

- 선의지는 오직 자신의 의지 작용을 통해서만 선하게 된다.

- 이성의 기능은 행복 도달에 있지 않다. 이성은 무미건조하고, 다채로운 삶을 조장하지도 않기 때문에 오히려 본능에 따르는 삶을 살 경우에 가장 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이성의 기능은 의지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실천적 능력˝이다. 즉, 이성은 최고선인 선의지에 도달하는 것을 돕기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성의 진정한 기능은 더 이상의 어떤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선한 의지를 산출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 어떠한 행위가 도덕적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반드시 의무로부터 행해져야 한다.
: 의무 경향성 충돌, 동시에 발생 가능 -> 도덕적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의무 행하고 싶은 마음 별로 없지만 의무에 따라 행하는 경우

- 도덕적 가치는 욕구 능력의 모든 대상과 무관하게 오직 행위가 수행될 경우에 작용하는 의지 작용의 원리에만 의존한다.
: 의무를 인식하고 행동할 때 등장하는 동기의 본성은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특정한 목표 성취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를 위해서는 욕구(경향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무에 따른 행위에서 동기의 본성은 목적 실현이 아니라 의지를 인도하는 원리(준칙)이다. 즉, 어떤 원리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행위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내가 의무에 따라 행위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도덕적 개인은 도덕법칙이라는 원리를 행위의 동기로 삼는,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보석 같이 빛나는 선의지를 이 세계에 드러내는 사람이다.
이성 -> 선의지(의무로 나타남, 이성에 의해 형성된 도덕원리를 의욕하는 것)

이때, 문제점: 원리가 강요하는 바를 동시에 동기로 삼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거짓말하지 말라˝라는 원리를 따르는데 그 까닭이 내가 거짓말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일 수 있다. 이건 경향성에 따르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경향성이 아닌 오로지 선의지로, 의무로 행위하기 위해서는 원리의 내용, 대상이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로지 원리의 형식만이 동기로 작용해야 한다.
-> 그 형식이 ˝네가 동시에 그것이 보편 법칙이 될 것을 의욕할 수 있는 그러한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 요거임. 이게 바로 보편 법칙의 정식

- 의무는 법칙에 대한 존경심으로부터 생겨난 행위의 필연성이다.

"내가 그것들을 더욱 자주,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항상 새롭고 더욱 높아지는 감탄과 경외로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나의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나의 안에 있는 도덕 법칙이다."

*참고: 칸트의 응보주의 <도덕철학의 기초> - 킴리카 (사형제 관련)

칸트는 이 마지막 논지를 독특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한다. 그가보기에 다른 사람을 "그가 한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데에는심오한 논리적 이유가 있다. 정언명령의 첫 번째 공식이 여기에 이용된다. 어떤 행위를 할 때 우리는 사실상 우리의 행위가 "보편적 원칙"이되게 하려는 소망을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이성적 존재가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대하기로 결정할 때, 그는 자신의 판단에 의해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대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답례로우리가 그를 똑같은 방식으로 대한다면, 우리는 단지 사람들을 어떻게대해야 하는지 그 자신이 결정한 그 방식대로 그를 대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좋지 않게 대해서, 우리도 그 사람을 그렇게 대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가 다른 사람들을 잘 대해 주고 그 답례로 우리도 그를잘 대해 줄 때에도, 우리는 역시 그의 선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자신이 어떻게 대우 받을지 스스로 결정하게 한 것이고, 그의 결정에 따라 그를 대하는 방식을 조정함으로써, 너무나 분명하게 그의 판단을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범죄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말한 것이다. "바로 자신의 악행이 처벌을 초래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이성적 존재로 대하라는 사상과 처벌을 연결시킴으로써, 칸트는 응보주의 이론에 새로운 깊이를 부여했다. 이 이론에 대한 우리의궁극적인 평가는 칸트가 제기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즉 우리가 범죄의 본질과 범죄자의 본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메닝어가 주장한 대로 범법자들이 자신들도 통제 불가능한 "야만적이고도 충동적인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무질서한 인격체들이라면 분명 치료모형이 칸트의 가혹한 태도보다 더 마음에 와 닿을 것이다. 사실, 칸트 자신도 "만약 범죄자들이 책임 있는 행위자가 아니라면, 그들의 행위에 분노하고 그것 때문에 그들을 ‘처벌’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책임 있는 사람들로 간주되고, 합리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동기가 없는데도 단순히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고자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면, 칸트의 응보주의는 계속해서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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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까지 읽었다.
메타버스가 막연히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 다양한 메타버스 산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여러 사례들을 통해 메타버스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메타버스가 고도의 과학공학기술을 사용하지 않고도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코카콜라에서 시행한 핀란드-싱가포르 텔레포트나 호주 멜버른의 아트 시리즈 호텔이 진행한 스틸 뱅크시 이벤트는 모두 기존의 기술 혹은 그보다 낮은 수준의 기술을 활용하면서 메타버스를 구현한 사례였다. 이를 보면 결국 메타버스의 핵심은 현실세계와 또 다른 가상 세계의 구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은 세계관+필요한 수준의 과학기술일 것이다.

한편 메타버스가 현실세계를 침범할 경우 생기는 문제들도 볼 수 있었다. 특히 파트2 마지막에 제시된 가상세계의 소설 한 부분은 판타지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만약 어떤 렌즈를 꼈을 때 상대방이 잘생긴 혹은 예쁜 특정 연예인으로 보이게 된다면 그 렌즈를 사용해도 되는 걸까(연예인의 허락을 받았다는 전제 하에). 그것이 허용되었을 때 과연 연예인의 허락 없이 얼굴을 사용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렌즈를 상대방이 모르게 착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윤리적으로 허용 가능할까. 소설을 처음 봤을 때는 에이 누가 그렇게까지 하겠어 싶었지만 곱씹을수록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생각보다 책이 가벼우면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해줘서 좋다.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의를 조금만 기울여도 정보를 받아들이고, 콘텐츠 제공자의 의도대로 지역과 공간을 이해하는 것, 이 상황은 자칫 인간의 고유한 능력인 상상력을 퇴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메타버스을 바탕구현에 과학, 공학적 요소가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코카콜라가 만들어낸 메타버스를 볼 때 과학, 공학적 요소가 메타버스의 전부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문학적 감수성과 철학이 담겨있지 않다면 증강현실 메타버스는 단순히 신기술의 전시장이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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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읽게 된 메타버스

경제 책이 집에 없어서 그나마 경제 산업에 가까운 책을 집어들었다.

메타버스 주변에서 많이 듣긴 했는데 정확히 뭔지 몰라서 이 기회에 좀 알아봐야겠다.

이 책은 기술 연구 단체인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의 메타버스 분류에 따라 메타버스를 설명한다.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증강 현실 - 포켓몬고 등등
2. 라이프로깅- 인스타, 페북, 나혼자산다 시청 등등
3. 거울 세계 - 팬카페 활동, 줌 회의, 에어비앤비 숙소 예약
4. 가상 세계 - 온라인 게임 등등

옆에 있는 예시는 생활 속 각각의 분류에 대한 예시이다. 이렇게 보니 메타버스는 이미 생활 속에 있는 거였다.

특히 세계 시가총액 1위부터 8위까지의 기업 중 절반이 메타버스 관련 기업이라는 사실.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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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작에서 저자는 현생 인류의 모습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살핀다.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등 디지털 미디어에 담긴 새로운 세상, 디지털화된 지구를 메타버스라 부릅니다. 메타버스는 초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 의 합성어입니다. 현실을 초월한 가상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메타버스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기에 메타버스를 하나의 고정된 개념으로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에 일상을올리는 것,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서 회원이 되고 활동하는 행위,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것, 이 모든 게 다 메타버스에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21세기는 역사상 매우 특이한 시기입니다. 굶어 죽는 사람보다 과식과 비만으로 죽는 사람이 많으며,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보다 노화로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20만 년 역사상 이런 시기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욕구와 안전을 지켜낸 인류는 보다 높은 가치를 원합니다. 바로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삶입니다. 이는 종교적 관점에서 신의 영역에 해당합니다. 아날로그 지구에서 인류가 영원한 행복과 삶을 누릴 수 있을지, 그게 언제일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꿈을 인류는 이미 메타버스속에서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메타버스에 인류는 자신들이 생각한 세계관, 생명체, 자원, 환경 조건 등을 설정해서 운영합니다. 그리고그 속에서 인간이 창조한 인공지능 캐릭터와 인간들이 함께 어울려서지냅니다. 가히 호모 데우스다운 놀이터를 메타버스에 만든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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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챕터

* 천직은 찾는 게 아니라 키워가는 것
* 당신을 묶고 있는 밧줄을 잘라내라 - 내면에 차지한 광기 찾기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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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쯤에서 이 책은 마무리할까 한다. 물론 언제든 진로 고민이 되거나 할 때 다시 꺼내 읽을 것. 워낙 메시지들이 강력해서 자극적인 핫도그를 먹은 느낌. 내가 지금 핫도그가 먹고싶나보다.

아무튼 다음에는 경제 관련 책을 읽어봐야겠다. 아 그리스인 조르바도 보고 싶어졌다. 광기 밧줄 얘기가 너무 멋있어서.

흔히 사람들은 천직이 순간적인 깨달음으로 찾게 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한다. 자리에 누워 있다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퍼뜩 알게 된다고 말이다. ‘중국 요리책을 써라!‘라는 신의 목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또는 자기성찰에 집중하다 갑자기 미래에 대한 맹목적인 통찰을 얻기도 한다. "내 인생의 목적은 수달 보존구역을 만드는 거야!"
신탁神託을 받는 것과도 비슷한 이런 발상은 그럴듯하고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에게서 책임감을 앗아갈 뿐이다. 무언가 또는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삶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22

마리 퀴리는 기적 같은 통찰의 순간을 거쳐서 방사능 물질 연구에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지 않았다. 그 목표는 쉬지 않고 과학 연구를하는 동안 서서히 그녀의 삶으로 들어왔다. 원래 그녀는 언니처럼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단강이 자성磁性을 띠는 현상에 대해 연구했다. 30세 때는 박사 학위를 위해 앙리 베크렐의 우라늄 최신 연구에 뒤이어 우라늄 광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라듐을 발견한 후 의심 많은 학계에 그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몇 년간의 후속 연구를 거쳤다. 하늘에서 큰 소리로 천직이라고 알려준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조금씩 목표에 열중해갔다. - P223

대부분 천직은 이렇게 나타난다. 간혹 폭발적인 깨달음의 순간으로 천직을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확고해진다.

결론적으로, 내가 전해줄 대단한 비결이랄 건 없다. 천직이라고 할만한 직업을 찾고 싶다면 가만히 앉아서 혜성처럼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마리 퀴리처럼 행동을 취하고 천직을 키워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의미와 몰입, 자유라는 세 가지 요소가 충족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에 헌신하면 된다. 마리 퀴리처럼 하루에 14시간씩 일하는 것은 조금 심했지만, 하지만 그조차 당신의 즐거움이라면 기꺼이 즐기시라.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하고 고무적인 목표가 서서히 싹트고 더욱 커져서 인생의 꽃이 피어날 것이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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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9 토요일 거🙂

<자유를 얻기 위한 대가 치르기>

오늘은 세 번째 질문에 대하여
3) 일에서 성공하고 싶은 야망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바람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저자는 위의 질문에 대해서 네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앞의 두 관점은 현실 진단에 가깝고 뒤의 두 관점은 관점 전환에 가깝다.

1. 당신이 아닌 사회의 딜레마다
일과 육아과의 관계 있어서 겪는 시간 부족과 심리적 긴장감은 대부분 사회와 문화적 요소가 가져온 결과. 특히 여성들이 두 마리 토끼를 붙잡기 어려운 이유. 그건 당신의 위기가 아니라 사회의 위기다.
1)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성에게 대부분의 육아를 떠넘김
2)직장 현실이 휴가를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로 이루어짐
- 아빠에게 출산휴가를 잘 주지 않음

2. 엄마에게만 맡겨진 토끼 사냥
일과 가정에서 모두 성공하는 문제를 다루는 책이나 신문기사에는 암암리에 그것이 여성의 능력(혹은 의지)문제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여성이 얼마나 추앙받는가.
남성의 역할을 간과한 채 여성에게만 초점을 맞춘다면 일과 가정 생활을 동시에 하면서 생기는 복잡한 문제에 맞춰 타협해야 하는 쪽이 아빠가 아닌 엄마라는 문화적 편견을 강화할 뿐이다. 우리는 그 문화적 관습에 맞서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도우면서 두 사람 모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 1,2번을 읽으면서 최근에 봤던 넷플 다큐가 떠올랐다. 왜 여성은 더 적게 받는지에 대한 짧은 다큐였는데 거기에서도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는 사회진출에 있어 남성과 여성의 차등적 기회부여가 아니라 양육에 대한 사회 구조적 문제에 있음을 지적했다. 자녀 출산 이후부터 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지기 시작한다는 게 많은 나라에서 연구를 진행할 때마다 데이터를 통해 얻는 결론이라는 것. 1,2번은 이러한 사회구조가 비단 임금격차뿐 아니라 삶의 질 측면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 문제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사회적 인식+제도적 문제)라는 점. 그럼 해결책은 편가르기가 아니라 부조리한 인식과 구조 타파. 근데 이게 쉽지는 않은 게 사회적 인식이 워낙 오래전부터 굳어진 거라 바뀌기 어렵고, 무엇보다 사회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들의 인식이 잘 바뀌지 않을 뿐더러(지배층은 대부분 사회구조 덕을 많이 본 사람들이니까) 이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뜨거운 관심을 왜곡시켜 사익을 얻으려는 데만 안달나있기 때문. 거기에 대중은 쉽게 놀아나기 마련이고. 대중끼리의 싸움을 보며 윗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려나.

> 그래서 더더욱 이런 부조리한 상황 때문에 아이를 안 낳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 건 선택이기에 합리적 판단에 의한 거라면 긍정하지만 이런 사회적 부조리 때문에 포기한다는 건 분노 혹은 체념에 휩쓸려 내 자율적인 선택권을 버리는 거니까.
관련해서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나서 발췌해본다.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더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이런 점에서 아이를 낳아라 라고 말만 하는 사회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받아치는 건 절망의 표시에 불과하다. 대신 사회에 던져야 하는 옳은 말을 하고 사회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똑똑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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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육아를 독립된 직업으로
육아는 하나의 직업으로도 볼 수 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는 육아와 가사와 같은 무급 노동에 담긴 엄청난 사회적 기여도와 경제적 가치를 강조한다.(영국 주부들의 집안일을 돈으로 환산하면 매년 약 3만 파운드(한화 약 4,780만원)
부모라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아이들에게 열정을 쏟는 것이 학자로서 성장할 기회를 희생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한 캐나다 출신 학자는 말한다.

4. 직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육아
육아를 하면서 또 다른 직업을 찾기도 한다.
이유식이 너무 맛없어서 맛있는 이유식을 조금씩 개발하고 그 사업을 확장시킨 사람, 아이들에게 동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주기 위해 부업으로 벌을 키우다 양봉업을 하게 된 사람 등 육아는 또 다른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 보면서 저런 관점을 갖고 아이를 키우면 참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직 경험도 없고 먼 미래라 생각해서인지 육아라고 하면 두려움이 먼저 들고 지루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지칠 때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을까. 뭐..그런 가정을 꾸려야지. 결혼을 할 수 있으려나.. 아무튼 저 두 관점 전환 방법은 만약 육아에 전념하게 된다면 마인드컨트롤에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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