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읽어가고 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도 너무 감상적으로 빠지지 않게 경계하면서 읽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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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간디처럼 싸우는 법

간디와 남성성,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 누구보다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듯한 느낌.

실제로 간디가 남성성을 중시했다는 것, 영국이 인도를 거세했다고 믿어 인도의 잃어버린 남성성을 되찾기로 결심했다는 점은 오늘날 ‘남성성’에 대한 오개념을 바로잡게 해준다. 간디가 생각한 남성적 힘은 폭력이 아닌 그 반대에서 나왔다.

간디에게 비폭력은 하나의 전략이 아닌 하나의 원칙이자 법칙이었다.

간디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설 것을 제안했다. 자신이 진실의 일부만을 지니고 있음을 잊지 말고 자기 입장을 점검할 것. 정말 인도 요리가 더 우월하다고 확신하는가? 어쩌면 이탈리아 요리에 당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장점이 있을지 모른다. 파트너를 대하는 당신의 태도도 점검해보라. 파트너를 반대자로 보는가, 적으로 보는가? 만약 적으로 본다면 그건 문제다. 간디는 "그저 반대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이 늘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간디에게는 반대자가 많았지만 적은 없었다. 간디는 사람들에게서 최고의 모습을 보려고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선량함도 보려고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지금의 모습이 아닌 앞으로 될 수 있는 모습을 보았다.
간디라면 창의력을 발휘하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인도 요리를 먹는 것이 당신에게뿐만 아니라 파트너에게도 좋을 수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자기주장을 펼쳐볼 수 있다. 어쩌면 파트너는 한동안 인도 요리를 먹지 않았을 수도 있고, 봄베이드림스레스토랑에 파트너가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요리가 있을 수도있다. 부드럽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라. 간디가 말했듯, 당신의 목표는 비난이 아니라 변화이므로.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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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꺼내든 책.
이건 언제쯤 완독할 수 있을까...

마르쿠스의 명상록에 대한 파트를 다시 읽어봤는데 중간중간 의미있는 어구들이 있어 간단히 남긴다.

- 중요한 것은 생각의 가치이지, 생각의 출처가 아니었다.
- 마르쿠스는 모든 철학이 스스로의 유약함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는 스토아철학의 교훈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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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지루해서 안 읽다가 오랜만에 펼친 책.
초반 구간을 지나니 순식간에 술술 넘어갔다.

불의의 사건으로 사랑하는 딸을 잃은 맥. 어느날 기억하기 싫은 오두막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다는 ‘파파’로부터의 우편물을 받는다.

긴가민가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한 맥은 믿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한다.

하나님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깨주는 설정, 하나님의 속성을 아주 자연스럽게 녹여 설명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썼을까 감탄스럽기도 하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일 수 있어서 기쁜 마음이 들었다.

반절 정도 읽었는데 마지막까지 쭉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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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고증을 토대로 초대교회의 모습을 그려 낸 소설. 엄청 짧고 읽기 쉬워서 몇 시간 만에 다 읽었다.
읽으면서 삶과 연결된 예배가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내용과 생각을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 삶과 연결된 예배 : 이런저런 종교와 철학이 만연하던 로마 시대, 푸블리우스는 글레멘드의 초대로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저녁 만찬 모임에 참석한다. 집에 도착해 인사를 나누고 난 후 응접실에 들어가며 푸블리우스는 “이제 예배가 시작되는 건가?” 라며 묻는다. 그러자 글레멘드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이렇게 대답한다. “집으로 들어오면서 실제로 예배는 시작되었지.“

집에서 펼쳐진 만남도 지금의 예배와는 사뭇 달랐다. 오히려 정말 이웃들을 초대한 저녁 만찬에 가까웠다. 그러나 곳곳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묻어났다. 처음 식사에 초대받은 외부인을 가장 상석에 앉히고, 노예와 자유인이 함께 앉았으며, 동일한 음식을 나눠받았다. 노예 해방을 주제로 토론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노래하였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어울려 놀았고, 어려운 상황에서는 함께 도왔다.

-
나의 일상이 예배가 되어야 하듯이 예배 또한 삶과 분리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홀로 와서 나 혼자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원들과 소통하고 교제하며 함께 예배드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 이후 (어쩌면 이전부터)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상당 부분 개인화되었다. 소모임이 줄었고, 먼저 다가가는 걸 서로 조심스러워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공동체성이 옅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여기에는 예전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공동체 분위기에 대한 반발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이런 다양한 상황들을 고려해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준이 되는 것이 초대교회일 것이다. 형식은 옅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강한 1세기 교회 예배의 모습을 통해 다시 교회가 회복되기를, 먼저 우리 청년부가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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